한국영화의 힘으로 차세대 아시아 영화 인재들 하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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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후아힌 'FLY 2013' 동행 취재

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 태국 후아힌 거리에서 이뤄진 단편영화 촬영 현장. 부산영상위원회 제공

한국영화의 힘이 아시아에 숨을 불어넣고 있었다. 지난 11일부터 태국 후아힌에서 2주 일정으로 열린 'FLY 2013'이 아시아 14개국에서 온 젊은 영화 인재들을 친구로 엮어 주고 24일 마무리됐다. 'FLY(Film Leaders Incubator)'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 10개국과 한국 일본 대만 요르단 등 14개국에서 2명씩의 영화인재를 뽑아 영화철학과 실전기술 등을 가르치는 차세대영화인재육성사업이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였던 'FLY 2013'은 외교부의 한-ASEAN 협력기금과 부산시 지원금을 재원으로 했고, 베넥스 파운데이션과 부산의 온라인영화사이트 씨네폭스가 협찬사로 나섰다.


■졸업작품 시사·졸업식 현장

지난 23일 태국 후아힌 메이저시네플렉스 제1관. '프레임 넘어(Beyond the Frame)'와 '해피 버스데이(Happy Birthday)'라는 두 단편이 각각 상영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마다 박수와 환호가 흘러나왔다. 지난 9월부터 4개 팀으로 나눠 온라인으로 시놉시스와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간 'FLY 2013' 참가자 28명은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BIFF) 기간 부산에서 팀별 시놉시스 경연을 벌여 2개 팀을 선발했고, 지난 11일부터는 후아힌에 모여 2주 동안 대본 수정과 촬영, 후반작업에 집중적으로 매달렸다. 한국영화의 명장 배창호 감독, 태국 예술영화의 신성 아딧야 아사랏 감독이 연출 지도를 맡았고, 구재모 촬영감독과 박광일 편집감독, 김준석 음악감독 등이 촬영과 후반작업을 도왔다.

14개국 28명 다국적 학생 참여
도제식 가르침 학생들에게 큰 자신감
석 달간 단편 2편 만들고 장학금까지
"한국이 영화언어 안내 역할해 뿌듯"


석 달 동안 함께 팀을 이뤄 동고동락한 그들은 땀의 결정체가 공개되는 순간, 서로에 대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사흘 동안의 촬영, 닷새간의 살인적인 후반작업 일정을 생각하면 영화의 구체적인 스토리나 완성도를 논할 일은 아니었다.

이날 저녁 후아힌 스프링필드 리조트에서 열린 졸업식에서는 베넥스 파운데이션의 장학금(단편영화 제작지원)을 기안카를로 아브라한 4세(필리핀)와 메이 바라니(미얀마)에게 각각 5천 달러씩 수여하고, 전체 졸업생에게 졸업장과 기념품을 나눠 줬다. 지난 석 달간의 모습과 참가생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잔잔한 음악과 함께 흘러나오자 좌석에 앉아 있던 학생들과 강사진들은 뭉클한 감동을 감추지 못했다. FLY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내고 AFCNet(아시아 영상위원회 네트워크) 의장으로서 올해까지 두 차례 실행에 옮긴 오석근 부산영상위원회 위원장은 축사에서 "FLY는 특정한 결과를 목표로 시작한 일이 아닙니다. 다만 여러분이 친구가 되길 바랄 뿐입니다. 영화를 매개로 서로를 알고 이해해서 하나의 아시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밝혔다.


■멘토·멘티, 그리고 Asian

'FLY 2013'에 참여한 나라들은 언어와 풍습이 다양하다. 게다가 과거에는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눴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영화가 공통언어였고, 세계였다.

배창호 감독은 "처음엔 각자 생각하는 스토리나 구도, 촬영방식 등이 다양했지만 공동의 작품을 만들어 가면서 각자의 개성이나 언어 소통 문제가 전혀 장애가 되지 않았다"며 "도제식으로 가르치고 체험의 기회를 준 프로와 아마추어의 결합이 학생들에겐 큰 자신감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혜화, 동'을 함께 본 뒤 학생들과 이야기할 기회를 가진 민용근 감독은 "영화를 본 뒤 나오는 질문이 한국 관객들과 비슷한 것이어서 '역시 사람의 감정은 비슷하구나'하는 동질감이 들었다"고 전했다. 차승재 전 싸이더스 FNH 대표는 "한국이 아시아에 영화언어를 안내할 위치에 왔다는 느낌에 뿌듯하다"며 "FLY는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성과주의를 넘어 젊은 영화인재들을 외롭지 않게 하는 '영화적 세례'가 아닌가 싶다"고 표현했다.

ASEAN 국가들의 영화 관련 정부부처 협의체인 'FILM ASEAN'도 FLY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약속했다. 브리시오 산토스 FILM ASEAN 위원장은 "아시아 안에서도 영화산업 수준의 편차가 크고, '아시아 영화는 이런 것이다'라고 내세울 공통적 정체성이 부족했다"며 "비ASEAN 국가들까지 넓게 포용한 FLY가 아시아의 지역 정체성을 확인하고, 연대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B조에서 촬영을 맡았던 인첸하오(24·대만) 씨는 "영화를 만드는 데 집중하니 다른 언어나 개성, 문화적 차이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타이베이에서 촬영스튜디오를 1년 전 개업한 그는 혼자 하는 일에 익숙했었다고 고백하며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해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마음이 열리고, 부족함을 많이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FLY'를 거쳐 간 인재들이 가까운 장래에 자국의 독특한 문화와 정체성을 살린 영화로 사람들의 삶을 더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후아힌=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배창호 감독이 시나리오 검토 중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는 모습. 부산영상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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