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수 칼럼] 부산대는 한국 최초의 □□대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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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주간

부산대 출신에게 물으면 답은 당연히 '국립'이다. 기자와 같은 비부산대인은 "서울대가 최초 아닌가" 한다. 서울대는 경성제대에서 경성대로 그리고 다시 1946년 10월 서울대로 이름을 바꿔 개교했다. 부산대는 1946년 5월 설립인가를 받았다. 그러니 부산대인들은 당연히 부산대가 대한민국 최초의 국립대학이라 주장한다.

얼마 전 부산대에서 '왜 이 시대에 윤인구인가'라는 주제로 부산대 건학정신 콘퍼런스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주제 발표자들은 부산대는 대한민국 최초의 국립이자 민립대학이라고 밝혔다. 나라에서 세웠으면 국립이지 왠 민립이냐는 의문이 들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에 대한민국 최초의 '민립'대학 부산대학교 탄생의 비화가 숨어 있다.

국립이지만 민간 모금으로 탄생한 '민립'
아무 것도 없이 '꿈'으로 만들어 꿈의 대학


윤인구는 부산대 초대 총장이다. 그의 부친 윤상은은 은행경영가, 행정관료, 교육가, 농업경영가 등 여러 분야에서 근대를 개척하고 경영했던 부산의 대표적 선각자이다. 윤인구의 외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박기종이다. 박기종은 일본 및 열강자본과 치열한 경쟁 끝에 1898년 최초의 한국 민간철도회사를 설립한 인물이다. 부산 최초의 근대학교인 부산상업학교의 전신 개성학교를 설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집안 내력 때문에 윤인구는 일찍이 일본과 영국 등에서 수학하며 근대 문명을 접할 수 있었다.

그는 해방 후 경상남도 학무과에 근무했지만 대학설립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학무과에서 일하게 된 그날 미국인 학무과장이 부산에 대학 설립을 주장하는 기성회 등이 5, 6개가 되니 이를 통합해 하나로 만들면 대학 설립이 용이할 것이고 자신들에겐 이들 단체를 통합시킬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 말에 자극돼 기존 기성회들을 한데 모이게는 했으나 각자의 생각이 달라 떨어져 나간 단체를 제외하고 남아 있던 기성회 등을 근간으로 대학 설립이 추진됐다.

당시 떨어져 나간 이들의 생각은 대학이 설립되더라도 국가에 기증해야 될지 모른다는 것과 대학을 설립하더라도 주도권 상실을 우려한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 시절 부산의 대표적 사학들이 설립된 배경이기도 하다. 교육보다 소유의 개념이 강했던 탓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윤인구가 학무과장이 돼 남은 기성회에서 마련한 돈은 160만 원뿐. 윤인구는 도청에 강력하게 건의해 도청 내에 있던 일본인 단체의 사무실 등을 처분해 400만 원을 확보했다. 이때 6·25 당시 해인사 주지를 지내기도 했던 효당 최범술이 중심이 된 불교단체로부터 전답 2만여 평을 기증받은 것이 결정적 힘이 됐다. 이 땅을 조흥은행에 팔아 500만 원을 마련, 도합 1천만 원을 문교부에 납부함으로써 1946년 5월 15일 대학 설립 인가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립이면 나라가 지어준 대학인 줄 알았더니 민간이 돈을 모아 국가에 바침으로써 대학 허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부산대가 '국립이자 민립'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다.

윤인구가 대학 설립을 위해 모금한 돈을 국가에 헌납한 것은 소유지향적이 아니라 존재지향적 삶을 반영하는 조치였다는 게 대학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지나친 물신주의로 우리 사회는 물론 대학마저 병들어 가는 오늘, 존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로 윤인구의 건학 정신이 채택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산대 측은 그날 '왜 이 시대에 윤인구인가'를 주제로 설정, 콘퍼런스를 가졌다는 설명이다.

기자는 윤인구의 업적을 다른 곳에서 찾고자 한다. 아무 것도 없던 시절, 최고의 대학을 만들고 싶다는 꿈으로 대학을 그리고, 그 꿈을 좇아 캠퍼스를 만들고, 그 대학이 세계에 큰 울림으로 울리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실제 윤인구는 부산대 장전캠퍼스의 초기 설계를 종모양으로 했다. 그 종이 크게 울려 부산대가 세계 속의 대학으로 성장하기를 바란 것으로 추측되는 대목이다.

그날 콘퍼런스 말미에 부산대 교수로 임용된 지 1년밖에 안 되는 한 교수의 질문이 있었다. "꿈을 꿔라. 좋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학생들에게 해도 될까요?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학점에 쫓기는 학생과 취업률에 허덕이는 대학 사이에서 교육자로서 가질 수 있는 당연한 질문이라 짐작된다.

꿈을 가질 수 없는 현실. 그 현실은 대학 구조조정이란 또 하나의 압력을 더한다. 부산대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지방대학일수록 더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다. 꿈을 가지도록 격려하지 못하는 교육의 현실과 오버랩된다.

부산대는 한국 최초의 꿈의 대학이다. 그 꿈은 윤인구에 의해 이미 그려져 있다. 다만 실천을 꿈꾸고 있을 뿐이다. jspar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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