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영화는 인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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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석 동서대 영화과 교수

학교에서 영화를 가르치다 보면 늘 두 갈래 기로에 직면한다. 영화는 직업을 찾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학습인가 아니면 순수한 사색과 인격의 완성을 위한 교육인가? 아마도 이 시대의 교육자는 누구나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교육의 이념은 항상 사람을 보다 사람답게 만드는 방향으로 우직하게 향하고 있는 반면, 시대의 요구는 언제나 때에 따라 유행과 인기에 편승해야 하는 경제적 목적에 얽혀 돌아가기 때문이다.

학부모와의 만남이 간간이 있을 때마다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받게 되는 질문이 있다. 영화과 나오면 뭘 해서 먹고 삽니까? 우리 애가 취업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너무 많이 받은 질문이라 이제는 모범 답안을 준비해 두었을 법도 한데, 막상 마주치면 아직도 머뭇거리며 궁색한 변명을 찾으려 낯빛이 굳어진다.

사실 영화를 해서 남들처럼 잘 먹고 잘 살 수는 없다. 우리가 아는 소위 잘 나가는 감독이나 유명한 배우는 전체로 놓고 볼 때 극소수에 불과하다. 개봉을 했다 하면 천만 관객을 동원할 것처럼 떠들썩한 마케팅의 술수에 빠져 어떤 이들은 영화가 마치 손만 대면 터질 것 같은 대박 상품으로 착각한다. 연간 제작 편수 당 대박율의 비중으로 따지면 영화는 진정 섣불리 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영화과에 자녀를 보내는 분들은 확실히 일반 관객들보다 현실을 잘 아는 셈이다. 곰곰이 따져보니 먹고 살 미래가 막막한 것이다.

또 한편으로, 영화를 배우려고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은 두 부류의 성향을 보여준다. 하나는 영화를 보는 것이 좋아서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를 직접 만들고 싶어서이다. 예술을 포함한 인문학의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 남의 작품을 보거나 듣는 것이 좋으면 비평 분야의 성향이고, 직접 만들거나 쓰거나 그리거나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면 실기 분야의 성향이다.

영화도 예외가 아니어서 비평 아니면 실기 쪽의 성향으로 나눠지게 되는데, 이는 오랜 세월 동안 인문학 종사자들이 태생적으로 직면해 온 두 가지 범주에 속해 있는 것이지 영화만 홀로 갑자기 동떨어져 처해 있는 신종의 환경이 아닌 것이다. 타인의 작품을 즐기려는 입장은 일반 관객들과 다르지 않으므로 자아의 성숙과 정서의 함양 쪽으로 시선을 맞추면 된다. 다만 조금 더 깊고 넓게 사색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문학, 철학, 역사를 전공하는 학생들과 학습의 방법론에서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입장이라면 일반 예술가들과 유사하므로 일정한 수준을 넘는 완성도와 자신만의 고유한 맛이 표출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재능과 근기의 자질이 요구되므로 영화를 만들되 명작을 탄생시키기란 예삿일이 아니다. 전국 대부분의 대학에서 국문과, 영문과 등 문학 인재를 키우지만 한 해에 등단 시인과 소설가는 몇 명 되지 않는다.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도 인문학 고유의 현실적 속성에 견주어 인식되어야 한다. 감상자와 창작자는 언제나 공존해 왔으며, 감상도 창작도 공히 학습이다. 대학은 학습의 마당이므로 감상자에게도 창작자에게도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취업이 잘 되는 분야는 살리고 안 되면 없애야 하는 이 시대에도 열정으로 탐구하고 싶은 뭔가가 있고 또 그 뭔가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영화과를 나와서 뭘 먹고 사느냐는 고민은 국문과나 철학과를 나와서 뭘 먹고 사느냐는 고민과 전혀 다르지 않다. 놀랍게도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그 많은 사람들이 제 각기 다양한 분야에서 다들 먹고 살고 있다. 영화는 직업과의 함수관계가 아닌, 인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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