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항 매립지 해법은 "국가 귀속 논란 낳는 현행법 개정을… 안 되면 현물출자라도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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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혀있던 항만을 시민에게 돌려주자는 취지로 시작된 부산항 북항재개발사업은 1단계 전체 사업부지 153만 2천㎡ 중 69만 6천㎡가 공유수면 매립을 통해 생긴 매립지다. 사진은 북항 매립지 일대를 항공촬영한 모습. 강선배 기자 ksun@

국내 최초 항만 재개발사업인 부산항 북항재개발이 매립지 소유권 문제를 놓고 수년째 헛바퀴만 돌고 있다. 지난해 국감에 이어 올해 국감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지만, 해양수산부와 부산항만공사(BPA)는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결국 부산지역 시민단체가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정부가 BPA의 매립지 무상 취득을 승인하지 않을 경우 '북항재개발 땅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보 4일자 1면 보도)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2008년 사업 승인 당시
매립지 소유권 명시 않아
BPA 투자분만 권리 인정
13만 3천㎡는 정부 소유로

"북항재개발 전체로 보면
오히려 1천억 적자 사업
매립지만 보는 건 단견"
국가 귀속 부당성 지적

"해수부 역할 못한 책임 커
결자해지 차원 법 개정을"
시민단체·BPA 등
해법 찾기 정가 관심 촉구

■ 사업 승인 당시 명시조항 없어

북항재개발사업 매립지 소유권 문제의 시작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10월, 옛 국토해양부(현재 해양수산부)가 북항재개발사업 실시계획을 승인할 당시 매립지에 대한 BPA 소유분과 국가 귀속분을 명시하지 않은 것이 논란의 시작이다.

BPA는 전례가 없던 항만 재개발사업에 기존 '매립법(공유수면 관리 및 매립에 관한 법률)'을 적용하는 대신 매립으로 조성된 토지 소유권을 모두 취득하는 것을 전제로 재개발을 시작했다.

BPA 관계자는 "당시 특별법인 '항만과 그 주변지역의 개발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매립지 소유권 취득을 가능하게 하는 특례조항을 만들기로 하고 사업에 착수했다. 그런데 2009년 규제개혁 차원에서 기존 '항만법'과 특별법을 하나로 합쳐 버리면서 특례조항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현행 매립법에 따르면, BPA는 매립공사 투입 비용에 해당하는 면적만큼의 부지만 취득할 수 있다. 만약 전체 토지 감정 추정액이 매립공사 투입 비용을 넘어선다면, 차액만큼의 땅은 추가로 돈을 내고 정부로부터 사야 한다.

BPA가 사업비 총 5천71억 원을 들여 매립한 공유수면은 총 69만 6천㎡이다. 이 중 37만 8천㎡는 도로, 공원 등 공공용 토지다. 나머지 사업용지 31만 8천㎡에 대한 토지 감정액은 약 8천739억 원으로 추정된다. 매립법대로라면, BPA는 매립 비용을 초과한 3천668억 원에 해당하는 땅 13만 3천㎡를 정부로부터 매입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부산지역 시민단체는 "북항재개발에 2조 원이 넘는 사업비를 투입하고도 수 천억 원의 손실을 감수하며 매립지를 다시 사들여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정부는 부산시민에게 북항 매립지를 즉각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4일 열린 시민단체 긴급 기자회견. 강선배 기자

■ 사업 적자, 매립 흑자 '딜레마'

그러나 BPA는 북항재개발사업을 매립지 부분만 따로 떼어놓고 보아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매립지 자체만 놓고 보면 들인 돈보다 3천668억 원의 이익을 얻는 것처럼 보이지만, 북항재개발사업 전체를 놓고 보면 공공사업이 60%가 넘어 적자라는 것이다.

BPA에 따르면, BPA가 북항재개발사업에 투입해야 할 총 사업비는 약 2조 400억 원 규모다. 이 중 1조 4천200억 원가량을 분양 수익으로 얻고, 정부가 약속한 재정 지원 5천200억 원을 모두 받는다 하더라도 약 1천 억 원에 가까운 적자가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BPA 측은 "현재까지 지원받은 정부 예산은 5천200억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천224억 원 규모"라며 "만약 정부의 재정 지원이 저조할 경우 1천 억이 넘는 적자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매립지까지 돈을 주고 사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부산항을 사랑하는 시민모임'을 비롯한 시민단체는 "BPA가 1조 원의 빚을 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애써 매립해 놓은 땅을 정부가 가져가겠다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라며 "북항의 친수공간을 시민에게 돌려주기 위해 시작된 재개발 사업의 목적을 정부가 스스로 무너뜨리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법 개정 안 되면 현물출자라도"

지난 1일 끝난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지적한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사업승인을 내어주고 법령의 제·개정 권한을 가진 해수부가 착공 후 5년이 경과한 지금까지 매립지 소유권조차 정리하지 못하고 뭐 했냐"고 질타했다.

해수부는 지난 6월 '항만법'을 개정해 항만재개발사업으로 조성되는 매립지 소유권 취득에 관한 조항을 신설하려 했지만, 관계 기관 협의 과정에서 무산됐다. 기획재정부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해수부가 법 개정을 추진하다가 기재부 반대로 돌연 입장을 바꾼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윤진숙 장관이 의지를 갖고 개정법을 통과시키든 현물출자를 앞당기든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부산항 관계자는 "매립지 소유권에 대한 문제가 이렇게 몇 년째 정리되지 않고 오락가락하게 된 것은 결국 이명박 정부 때 해수부를 없애면서 정책 일관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며 "부활한 해수부가 의지를 갖고 기재부를 설득했어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BPA는 향후 매립지를 유상으로 취득해야 할 경우 전체 사업성 악화에 미치는 영향을 정밀 분석해 법령 개정 및 현물출자 방안을 정부에 지속적으로 건의한다는 계획이다. BPA와 부산지역 시민단체는 특히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지역 정치권이 힘을 보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BPA 관계자는 "정부가 현물출자를 미리 약속하고 그 시기를 최대한 앞당긴다면 분양에 미치는 악영향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해수부는 현재로선 '매립법' 적용이 정부 원칙인 만큼 BPA에만 특혜를 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공공성이 대폭 강화된 BPA의 북항재개발 사업계획 변경안이 지난 9월 새로 고시된 만큼, 전체 사업성에 대한 재검토를 진행한 뒤 대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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