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탈출] 중국 창강 유람
입력 : 2013-10-31 07:44:55 수정 : 2013-10-31 14:18:24
6천300㎞ 도도한 물결·신비로운 협곡·폭포… "넋을 놓았네"
칭강은 창강의 지류이다. 칭강에는 온갖 모양의 그림같은 폭포가 많아 '칭강화랑'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곳 폭포는 큰비가 내린 뒤 10여 개에서 100여 개로 늘어나기도 한다. 사진은 암봉에 안개가 끼어 신비로운 풍경을 자아내는 칭강변.중국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창강(長江·장강)의 물결은 도도했다. '중국의 그랜드 캐니언'으로 불리는 '언스(恩施)대협곡'은 신비 그 자체였다. '폭포의 갤러리'로 불리는 칭강(淸江·청강)은 소문처럼 화려했다. 백거이, 두보, 소동파 등 수많은 시인묵객이 이곳에서 붓을 들었다.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 유비, 제갈량, 손권 등 영웅들도 이곳을 차지하려고 피를 흘렸다. 숱한 문인과 무인이 왜 그리 치열하게 창강을 사모했을까? 강에게 물었지만 강은 아무런 대답 없이 흘렀다. 이백도 '이별의 정과 강물 중에 어느 것이 길고 짧은지를 장강에게 물어보라'고 했지만 답을 듣지 못했으니 오죽하려나.
■창강싼샤의 최고 협곡 '시링샤'
창강은 총 길이 6천300㎞로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길고 아시아에서 가장 긴 강이다. 창강은 흐르는 지역에 따라 이름을 달리 하는데 흔히 부르는 양쯔강은 창강의 하류를 뜻한다. 중국 사람들이 강이라고 하면 으레 창강을 일컫는다. 창강은 중국인에게 어머니 같은 강이다.기암협곡이 즐비한 창강싼샤(長江三峽)는 창강의 축소판이다. 충칭 시와 후베이 성을 통과하는데, 8㎞의 취탕샤(瞿唐峽), 45㎞의 우샤(巫峽), 76㎞의 시링샤(西陵峽)로 이어진다. 이 중 싼샤댐으로 연결되는 시링샤는 길이가 가장 길고 기암절벽이 많아 싼샤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지난 2009년 싼샤댐이 생기면서 사람의 발길이 더 잦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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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강싼샤'(장강삼협)에서 가장 아름다운 협곡인 시링샤. |
후베이 성 우한(武漢)에 있는 거저우(葛洲) 댐에서 배가 출발했다. 이곳은 강폭이 넓고 유속이 빨라 삼국시대 때 촉과 오나라가 서로 차지하려고 격전을 벌였다. 창강은 6~8월이 우기이지만 9~11월에도 안개가 자주 끼고 소나기가 자주 내린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안개가 낀 날엔 신비로운 분위기로 인기가 높다. 물 안개가 낀 날에는 유람선이 흰 구름 위를 떠다니는 것 같다.
협곡은 'U' 자를 그리고 있다. 20분쯤 갔을까? 오른쪽 절벽에 '싼유둥'(三游洞)'이란 붉은 글씨가 나타났다. 여기에서 물길을 따라 2㎞가량 뭍으로 더 가면 송나라 문학가인 소순, 소식, 소철의 시가 새겨진 싼유둥이 나온다.
시링샤는 싼샤 댐이 생기면서 지역에 따라 수위가 50~70m나 더 올라갔고 유속도 느려졌다. 덕분에 홍수를 막고 농업용수가 확보됐지만 1천700여 마을이 수몰됐다. 유람선 이물에 서서 시링샤가 만든 경치를 보았다. 삼국지에서 조조의 수군은 이 협곡을 지나 오나라 땅으로 진입했다. 당시 조조는 대장선에 서서 이 강의 끝을 보고 전열을 불태웠을 것이다.
2시간쯤 지나자 투자족(土家族)이 사는 싼샤런자(三峽人家)에 도착했다. 투자족은 중국 56개 소수민족 중 6번째로 많은 민족이라고 한다. 주로 후난 성, 후베이 성, 구이저우 성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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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부르는 싼샤런쟈의 투자족 여성. |
배가 정박할 즈음 투자족 여성들의 구슬픈 노래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투자족은 여자가 잘 울어야 시집 가서도 잘 산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결혼을 앞둔 여성은 우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가사는 알 수 없지만 사람의 애를 끓는 노랫가락에 잠시 발걸음이 멈춰졌다. 마을은 깎아지른 벼랑 아래에 박힌 듯 앉아 있다.
벼랑을 자세히 보면 곳곳에 길이 약 1.5~2m, 폭 40~50㎝가량의 홈이 파여 있다. 무슨 동굴 같은데, 알고 보니 투자족의 쑤언관((懸棺) 무덤이다. 투자족은 시신이 썩으면 뼈를 수습해 절벽 틈에 안치한다. 죽어서 강을 바라보면 좋은 곳으로 건너간다는 신앙 때문이다. 현관은 신분이 높을수록 높은 곳에 있다. 질긴 신분의 굴레는 죽어서도 여전히 차별을 받는다.
■폭포 전시장 '칭강화랑'…선계 비경 '언스대협곡'칭강은 언스 시 리촨(利川)에서 발원해 동쪽으로 400여㎞ 흘러 창강으로 연결되는 창강의 지류다. 투자족은 창강 대신 칭강을 '어머니 강'으로 부른다. 창강의 협곡이 웅장하고 장쾌하다면 칭강은 폭포를 즐기는 재미가 크다.
리촨의 펀수이허(汾水河) 부두를 출발한 유람선은 1시간 정도 강을 따라 흘렀다. 배가 조금 지겹다고 생각될 무렵 유람선이 시끌벅적해졌다. 높이 50~100m의 강 양쪽 석회암 절벽으로 폭포가 줄지어 나타났다. 하나의 폭포를 구경하려 하니 금방 또 다른 폭포를 놓칠 정도로 폭포는 쉼 없이 나타났다.
칭강의 폭포는 비가 적을 때 10여 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비가 사나흘만 더 내려도 폭포가 100개를 훌쩍 웃돈다. 길이 200m 절벽에서 떨어져 폭포수가 아홉 번 접혀 내린다는 '9첩폭포', 두 절벽 사이에서 봇물처럼 물줄기를 뿜어대는 '나비폭포'를 보면 할 말을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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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강 폭포 중 최고 비경을 자랑하는 나비폭포. |
언스 시에서 서북쪽으로 50㎞쯤 떨어진 곳에 '제2의 장자제'라는 '언스대협곡'이 있다. 1억 년 전 지각변동으로 생긴 카르스트 협곡이다. 10월 말 현재, 이곳을 온 방문객이 1만 명이 채 안 될 정도로 한국인에게 생소한 곳이다.
언스대협곡 매표소에서 올 초 개통한 곤돌라를 타면 해발 1천m 지점까지 오를 수 있다. 날이 좋으면 기암절벽이 빚은 협곡을 고스란히 볼 수 있고, 안개가 낀 날은 선계에 온 듯한 몽환적인 환경도 즐길 수 있다. 대협곡을 보려면 7㎞쯤 더 걸어 들어가야 한다. 계단식 코스라 걷는데 부담이 없지만, 걷기 힘들면 가마를 타도 된다. 1㎞당 60위안(약 1만 원). 산길이 끊어진 절벽에서는 수직 암벽의 중간쯤에 설치한 돌과 나무로 된 잔도를 걸어야 한다. 폭 1.5m남짓인 잔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다리가 후들거린다. 안개를 배경으로 서 있는 '일주향'과 '무지봉'의 괴석들은 조물주가 있긴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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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에 휩싸인 언스대협곡의 절벽 잔도. |
협곡 트레킹으로 지친 몸은 이색 음주(?) 체험으로 날려보내자. 언스 시내에 있는 '바만쯔'(巴蔓子·파만자) 민속촌은 술잔을 깨는 집이다. 술을 다 마신 뒤 어른 손바닥 크기의 질그릇 잔을 던져 가차없이 깨뜨려야 한단다.

유래는 흥미롭다. 투자족의 조상인 바만쯔는 전국시대 파(巴)나라의 장군. 내란이 발생하자 3개 도시를 주는 조건으로 이웃나라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승전 후 도시를 떼어주면 나라가 쪼개질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의 목을 잘라 이웃나라에 보냈다고 한다. 이후 투자족은 장군의 기백과 충의를 기려 술을 마시면 잔을 깼다. 이유야 어쨌든 후세 사람들은 소원, 걱정, 근심이 사라지길 원하며 땅에 잔을 던지고 있다.
글·사진=전대식 기자 pro@busan.com
TIP
·항공편
이달 중순까지 부산 김해국제공항에서 중국 우한국제공항으로 가는 에어부산 특별전세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운행하지 않는다.
인천국제공항으로 가야 한다. 인천~우한(2시간 40분) 직항은 주 7편 개설돼 있다. 대한항공은 화·수·금·일요일(오전 9시 15분) 4편, 남방항공은 수·금·일요일(오후 6시 45분) 3편을 정기 운항한다. 중국전문여행사 레드팡닷컴(www.redpang.com)은 인천에서 출발하는 상품을 시판하고 있다. 5박 7일 상품 80만∼90만 원. 02-6925-2569.
·음식
우한에 가면 시인 소동파가 벼슬할 때 개발한 요리인 '둥포러우'(東坡肉)를 꼭 먹어야 한다. 찐 통 삼겹살에 진간장, 향신료를 넣고 밥을 비며 먹는다. 간장의 쌉싸래한 맛과 돼지고기의 쫄깃한 맛이 묘하게 어우러졌다. 중국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둥포러우만큼은 싫어하지 않을 것 같다. 우한은 중국 6대 국수에 들어가는 '러깐미엔'(熱干面)으로도 유명한 도시다. 우한 사람들이 아침으로 즐겨 먹는 요리로, 삶아 말린 면에 중국식 자장을 얹었다. 식감은 별로이지만 맛은 달콤짭짤하다.
전대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