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원의 시네아트] '녹색의자 2013' 박철수 감독의 타이밍 놓친 '리메이크 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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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의자 2013-러브컨셉츄얼리 씨네힐 제공

'녹색의자 2013:러브 컨셉츄얼리'는 박철수 감독의 유작이자 2003년 자신이 만들었던 '녹색의자'를 스스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리메이크라고는 하지만 '녹색의자'의 프리퀄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BIFF 박철수 감독 회고전에서 선보인 이 작품에서는 '녹색의자'에서 파격적인 만남을 선보였던 유부녀와 고교생이 만나기 전까지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기 전 서로를 향한 갈망은 어떻게 피어났는지 두 남녀의 심리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문희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입시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이혼해 주지 않는 남편과 별거하며 오랜 연인 인규와 사제지간이었던 윤 교수 사이에서 자유로운 연애를 즐긴다. 한편 그녀의 학생 중 한 명인 주원은 수업시간 내내 문희의 얼굴만 그리고 있다. 어린 시절 예식장에서 신부 문희를 보고 첫눈에 반한 주원은 그녀를 만나기 위해 미술을 시작했고 학원까지 다니고 있었던 것. 주원의 순수한 애정과 구애에 조금씩 마음을 빼앗긴 문희는 어느 날 둘만 남겨진 화실에서 금기를 넘어선 사랑을 나눈다.

올 BIFF '회고전'에서 소개
미술학원 여선생과 제자 간의 사랑
파격적 소재 시대 지나 '시들'


'녹색의자 2013'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크레딧과 함께 시작한다. 이는 단순하게는 파격적인 둘의 사랑을 강조하기 위함이고 한편으론 영화에 사실감을 부여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불행히도 영화는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성공하지 못한다. 연상의 여선생과 연하 제자 간의 사랑은 '녹색의자'를 만들 땐 다소 파격적인 소재였을지는 모르지만 뉴스에서도 수시로 비슷한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지금에 와서는 그리 충격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연출이 지나칠 정도로 느슨하고 식상하다는 점이다. 꼭 선정적인 장면이 아니더라도 긴박감을 고양시킬 장면은 충분한데 이를 살리지 못한다. 심지어 그 흔한(혹은 당연한) 관음증적 시선마저도 기계적이다.

박 감독의 파격과 실험정신은 늘 우리를 놀라게 했고 영화계에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었다. '301 302'(1995)의 실험성이나 '학생부군신위'(1996)의 통찰력은 금기를 넘어서는 예술적 감성이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지 모범을 보여 주었다. 특히 남녀 관계에 대한 세밀한 탐색은 후기 박 감독의 특기였다. 하지만 '녹색의자 2013'는 IPTV에서 크게 흥행한 전작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을 의식하고 만들어진 기획영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작품이 박 감독의 마지막으로 기억된다는 사실이 슬플 뿐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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