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게 드리운 '민자 · 민영화'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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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을 안내하고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역무원들이 서 있는 일본 도쿄 메트로 이케부쿠로 역 승강장 모습. 한국은 어떤가? 박흥수 제공

동해남부선, 부산에선 복선화 공사로 관심이 높은 철로다. 일부 구간은 폐선된다. 당장 오는 12월 1일부터 해운대 우동~기장 구간을 신설 노선으로 다닌다. 모두가 번듯하고 빠른 새 선로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수십 년 역사를 가진 기존 역사(驛舍)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보다 며칠 전엔 코레일(철도공사)이 동해남부선과 경전선 등 적자노선을 단계적으로 민간에 매각하겠다는 계획을 국토교통부에 보고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동해남부선은 복선 선로가 완전개통되면 이용객 증가로 적자를 탈피할 수 있는데 코레일과 국토부가 성급하게 판단했다는 비판이 지역사회에서 나왔다. 철도 같은 기반시설을 적자가 난다고 무조건 민간에 매각하는 것이 만병통치약인가?

'철도의 눈물'은 실제 기관사인 저자가 생생한 경험과 취재, 조사를 거쳐 썼다. 수서발KTX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는 국토부의 주장에 어떤 문제와 허점이 있는지, 그들의 주장대로 될 경우 한국의 철도망이 어떤 변화를 겪게 될 것인지를 세밀하게 지적해 놓았다. 나아가 현재 한국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공공부문 민영화 논리, '민자(民資)' SOC(사회간접자본)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쳤다.

기관사인 저자 체험 바탕
수서발KTX 경쟁체제 도입
문제점 적나라하게 파헤쳐


철도의 눈물 / 박흥수
저자는 철도를 망(網·네트워크)산업이자 독점산업이라고 설명한다. 초기 시설 구축에 엄청난 재원이 투입되어야 하지만 자동차와 달리 이용자가 늘수록 이익이 커진다. 철도의 교통수송 분담률이 높아지면 환경오염과 도로 정체를 줄여 사회적 이익도 함께 증대된다. 또 망 산업의 특성상 통합적인 네트워크 관리와 관제시스템이 필요해 경쟁체제를 도입하면 오히려 비효율과 사고 위험을 높인다.

수도권으로 향하는 기차의 대부분은 서울역을 종착역으로 한다. 서울 금천~서울역 구간은 이미 포화상태다. 수서발KTX는 수도권의 철도 수요를 분산시키고, 이를 계기로 선로 고속화 작업을 단계적으로 진행함으로써 한국 철도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킬 대안으로 떠올랐었다. 수익성이 높은 이 구간을 사기업의 손에 넘길 경우 철도시스템 개선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물론, 철도 산업 전체를 혼란스럽게 할 가능성이 크다고 저자는 우려한다. 동해남부선이 복선화된 뒤 민간의 손으로 넘어가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환승을 거부하거나, 요금을 훨씬 비싸게 받는다면….

IMF 구제금융사태 이후 한국에서는 효율의 탈을 쓴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줄줄이 공공부문이 사기업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후에는 '민자'사업이 SOC와 공공시설물 건설에 단골로 등장한다. 공(公)의 반대말은 사(私)인데 슬그머니 가치중립적인 백성(民)이라는 용어로 바꿔치기됐다. '사'라는 단어가 갖는 이윤추구의 음험함을 감추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저자는 이런 '사영화'가 '손실의 사회화, 이익의 사유화'를 뜻한다고 명쾌하게 진단한다. 기업에겐 특혜, 시민에겐 높은 이용료와 세금부담까지 안기는 민자사업과 민영화가 갖는 더 큰 문제점은 불특정 다수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2003년 2월 대구지하철 사고 때는 맨 앞 운전실에만 기관사가 1명 타고 있었다. 열차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지난 8월 31일 대구역 열차 사고때는 출발신호기 위치가 오인하기 딱 좋은 위치에 있었고, 승무 경험이 전혀 없던 대체 승무원이 신호를 잘못 봤다. 막상 사고 직후엔 안전을 위한 투자는 모자람이 없어야 한다고 하지만, 평소엔 안전관리를 위한 인력과 비용을 비효율로 낙인찍는다. '안전'처럼 시민에게 제공되어야 할 기본적 서비스는 공공부문이 대부분 맡는다. 이런 공공부문에 무리한 효율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지는 않을까?

저자는 "폐차할 때까지 한 번도 에어백을 쓴 적이 없으니 앞으로 구입하는 새 차에는 에어백을 달지 않고, 그만큼 비용을 절약하겠다는 것이 철도 민영화 로드맵을 밝힌 사람들의 사고 체계"라고 일갈한다. 18일 맥쿼리·현대로템 컨소시엄이 서울메트로 9호선을 약 1조 원에 신한BNP파리바와 한화자산운용으로 넘기는 매각계약을 체결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박흥수 지음/후마니타스/247쪽/1만 3천 원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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