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 영화] 차이밍량 감독의 '떠돌이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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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없어 더 강렬한…

'떠돌이 개'는 국내에서 개봉할 것 같지 않다. 이야기가 없어도 너무 없기 때문이다. 이야기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들은 이야기가 복잡한 영화보다 이야기가 없는 영화를 더 멀게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이 영화는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출품되어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는데, 감독은 심지어 영화제의 카달로그에 감독의 변을 이렇게 적고 있다."(이 영화는) 말할 만한 이야기란 게 없다." 저 말은 설명이 아니라 실은 선언에 가깝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영화를 말하기 위해서 누가 무엇을 언제 왜 어떻게 했는지 설명하는 데 곤란함을 겪는다.

저들은 누구인가. 처음에는 잘 알 수 없다. 남자가 있고 그냥 두 아이가 있고 어떤 여자가 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난 다음에야 남자가 아이들의 부모라는 사실을 겨우 알게 된다. 그걸 알기까지 우리는 그저 그들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영화를 보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럼 그들은 무엇을 하는가. 역시나 영화가 시작한 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야 우린 알게 된다.

남자는 고급 아파트를 홍보하는 피켓맨이다. 그는 비바람이 무섭게 몰아치는 날에도 우비 하나를 달랑 입고 도심 한복판에 서 있어야만 한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들은 쇼핑몰 식품점 사이를 돌아다니며 시식 코너의 음식을 주워 먹으며 굶주린 배를 채운다. 그렇게 각자 하루를 산 뒤에야 저녁 나절에 다시 모인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은 흉물스럽기 그지없는 도심 외곽의 거대한 폐가다. 그것이 그들의 반복되는 삶일 것이다. 이제부터가 문제다. 그들이 언제, 왜 그렇게 됐고 점점 더 어떻게 되어 갈 것인지 알기란 어렵다. 영화는 이 문제를 애매하고도 의뭉스럽게 남겨 둔다.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런데도 '떠돌이 개'는 감동적이다. 그게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다. 영화란 때때로 이야기에 기대지 않고도 이렇게 흥미진진할 수 있다.

첫 장면, 잠든 아이들의 곁에서 한 여자가 아주 느린 동작으로 긴 머리칼을 빗고 있는 장면에서 이미 모든 걸 직감할 수 있다. 거기엔 귀기가 서려 있다. '떠돌이 개'는 속도의 예술이기도 한데 도대체 모든 것이 너무 느려서 정지한 것인지 움직이는 것인지 구별되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의 둔탁해진 감각을 역설적으로 자극하고 있다. 또는 인물들이 돌아다니는 저 공간은 흡사 거대한 설치미술 작품과도 같고 그 안을 돌아다니는 인물들은 유령과도 같다.

가령 그 어느 설명도 없이 차례로 등장하는 세 여인(차이밍량이 아끼는 여배우 삼인방인 양귀매, 천샹치, 류이칭이 연기한다)은 인상 깊다. 이 영화의 제목은 '떠돌이 개'다. 떠돈다는 인상, 표류한다는 느낌, 서글프다는 정서를 이처럼 강렬하게 전하는 영화는 흔치 않다. 차이밍량의 전작 '안녕 용문객잔'에서 이런 느낌을 한 번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어쩌면 '떠돌이 개'가 더 강력한지도 모르겠다. 


정한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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