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태현의 영화 속 동아시아] 22. 동방불패(東方不敗)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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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커 감독의 '동방불패 2'(1993)는 언뜻 보기에 액션 장면들이 어수선하고 스토리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트랜스젠더에 관한 주제로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등장인물이나 그들의 행동을 비유적으로 해석할 경우, 영화는 시종일관 중국(동방)의 정체성을 얘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임청하가 연기하는 여성화된 남성의 이름이 동방불패이고, 서양인의 눈에는 전통의상인 긴 치마를 두른 중국인이 여장남성 곧 여성화된 남성이므로, 결국 '동방불패=중국(인)'의 등식이 성립한다. 영화에서 중국 관리인 고장풍이나 스페인 장군, 묘족 등은 모두 중국에서 동방의 패자가 되기를 갈망한다. 이는 중국에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열강의 치열한 각축전이 전개됐던 근대의 역사적 사실을 비유한다. 즉 고장풍은 중국 왕조, 스페인 군대는 서양 열강, 사무라이 집단은 일본 제국주의, 묘족은 중국 소수민족이라는 알레고리를 갖는다.(양태은, '서극 영화에서의 '중국' 또는 '동방'')

열강 각축 역사적 사실 비유
서구·근대화된 중국이 패자


그렇다면 동방불패는 어떤 존재인가. 서양인이 쏜 총알을 손으로 받아 되돌려 공격하면서 "네게 과학이 있다면 내겐 기공(奇功)이 있다"고 일갈하는, 동양이 서양을 넘어설 수 있음을 상징하는 존재다. 하지만 여기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스페인 함선을 제압하고, 일본의 강자 무은뇌장을 죽인 뒤 일본인 장군의 복장을 하고 나타난다. 그리고 두 세력의 힘을 합쳐 중국 관군과 대결하려 한다.

양태은은 동방불패가 일본의 장군복을 차려입고 나선 것에 대해 그의 정체성이 중국적인 것으로부터 일본적인 것, 곧 근대적이고 서구적인 것으로 전이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므로 동방불패는 자본주의적이고 근대화된 중국을 의미하며, 쉬커 감독은 그러한 중국을 과거 동방의 치욕을 설욕하는 21세기 새로운 '동방'의 모습으로 그려내고자 했다는 것이다. 설욕을 위해 사방을 찾아 헤맨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설천심(雪千尋·왕조현 분)이 고장풍과 동방불패 가운데 동방불패를 선택하는 것이 이를 잘 말해 준다. 고장풍은 부패한 동료 관료를 죽인 후 스스로 동방불패를 자처한 전통 중국의 대표이고, 동방불패는 서양근대적인 것을 장악함으로써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려는 신흥 중국에 비유되기 때문이다.

고장풍과의 마지막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 동방불패가 설천심에게 "우리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양태은은 이를 새로운 역사 쓰기를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동방불패가 서양과 일본 세력을 평정한 후 진격시킨 '동서방불패(東西方不敗)'호의 출범은 결국 중국(동방)이 동서양 문화의 경계를 넘어 최종 패자가 될 것임을 천명한 자신감 넘치는 선언으로 읽힌다. 논설위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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