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태현의 영화 속 동아시아] 21. 정무문(精武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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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액션 영화계를 석권한 이는 단연 홍콩 스타 리샤오룽(1940~1973)이다. '당산대형' '정무문' '맹룡과강' '용쟁호투' 등 그가 출연한 영화들은 그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무술을 선보이며 전 세계 남성들을 열광시켰다. '정무문'에서 그가 사용한 쌍절곤은 유행을 낳았으며, 그가 내는 괴조음 등 그의 소리나 몸짓을 따라하지 않은 청소년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정무문'(감독 뤄웨이, 1972)은 '무인 곽원갑'(2005)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한 중국의 전설적 무술 영웅 훠위안자가 의문의 독살을 당한 이야기를 극화한 영화다. 영어 제목이 '분노의 주먹(Fist Of Fury)'인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리샤오룽이 훠위안자의 제자 천전 역을 맡아 스승을 죽인 일본 무인들과 고용된 러시아 무술 고수에게 철저히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그가 체포되는 과정에서 상하이 조계의 외국 경찰이 겨누는 총구 위로 날아오르며 총성이 울리는 마지막 정지 화면은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중국 영웅 죽인 일본인에 복수
남성적 힘 바탕 민족주의 구현

이 영화는 민족주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중국을 '동아병부'(東亞病夫:동아시아의 병든 사람)라고 조롱하는 일본인들을 응징하고, '개나 중국인 금지'라고 쓰인 공원 팻말을 부숴 버리는 장면들이 그러한 사실을 말해 준다. 1842년 맺어진 난징조약에 의해 개항된 상하이에는 외국인 통치 특별구역인 조계가 설정돼 약 100년간 지속됐다. 영국, 미국, 프랑스 등 서구 열강과 일본의 조차지에서는 독립적인 행정권과 치외법권이 인정됐다. 영화는 열강의 침탈이 본격화되던 20세기 초, 반(半)식민 상태의 상하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리샤오룽이 보여 준 단단한 몸의 근육과 사실적 액션의 남성적 이미지에 대해 "국제적이고 상호적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무기로써 리샤오룽의 몸의 전시는 중국, 아시아, 제3세계에서 패배자들의 승리로서 찬양되어 왔다"고 분석된다.(크리스 베리의 논문 '스타의 횡단:초국적 프레임에서 본 리샤오룽의 몸 혹은 중화주의적 남성성') 크리스 베리는 리샤오룽의 남성성은 문(文)이 아닌 무(武)적인 것이며, 그의 영화에서 회복되는 테마 중의 하나는 힘을 사용하지 않는 '문'의 전통적인 고집에 대한 역행이라고 진단한다. 복수를 위해 무예를 사용하지 말라는 도장의 규율을 깨뜨리고 사부의 복수를 위해 무자비하고 강력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그렇다. 최강을 강조하는 미국식 남성성과 코드가 닮아 있다.

1990년대 '황비홍'시리즈의 주인공인 황페이홍이 여성과 약자와 집안을 보호하는 가장의 이미지로 형상화됐다면, 리샤오룽 영화는 남성적 육체와 강인한 힘을 강조하는 남성용 영화로 읽힌다.(양태은의 논문 '민족, 중화의 자존심을 노래하라') 논설위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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