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개인의 경험과 기억 다채로운 소재 담아 사람· 국가·사회·사랑·모험 얘기하다
다큐멘터리와 단편을 다루는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부문은 출품작의 국적과 소재 면에서 그 어느 해보다도 풍성하고 다채롭다. 개인의 기억과 경험, 일상을 통해 국가와 사회, 민족의 역사를 돌아본다.
■다큐멘터리 경쟁·쇼케이스
우선 쇼케이스에서 눈여겨볼 작품은 최근 부산국제영화제로부터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한 리티 판 감독(캄보디아)의 '잃어버린 사진'이다. 이 작품은 올해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크메르 정권 당시 처참한 내전의 기억을 찰흙 인형과 기록영화 이미지를 섞어 편집한 독특한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기록영화의 공적인 역사와 인형이 재현하는 개인적 기억이 겹쳐져 왜곡·은폐된 역사의 뒷모습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다큐멘터리
보기 드문 불가리아 작품
'소울푸드 이야기' 눈길
단편영화
김동호 감독 데뷔작 '주리'
마흐말바프 작품과 묶어 상영
애니메이션
넘치는 상상력 독특한 화풍
스토리 전개 완성도 높아
재중 동포인 장률 감독의 '풍경'은 이주노동자의 삶을 다룬 다른 많은 다큐멘터리와 달리 이방인의 시선으로 이방인의 삶을 담았다는 점이 독특하다. 10여 명의 이주노동자에게 '한국에서 꾼 가장 기억에 남는 꿈'을 묻는 감독에게 이주노동자들은 어떻게 답할까? 우리도 잘 몰랐던 한국의 이면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불가리아의 토니슬라브 흐리스토프 감독이 연출한 '소울푸드 이야기'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불가리아 영화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민족 구성이 다양한 불가리아의 어느 마을 카페를 무대로 각기 다른 풍습과 민족성을 가졌지만 음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이야기를 담았다. 홍효숙 프로그래머는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 수 있는 화합의 원동력은 무엇인지를 지루하지 않게 제기하는 작품"이라며 "동유럽의 세련되지 못하지만 정감 있는 표현이 특징적"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연말 국내 개봉한 '아무르'는 어느 날 갑자기 반신불수가 된 아내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남편의 이야기를 다뤘다. 역경 앞에서 서로를 위해 애쓰는 80대 노부부의 사랑은 불꽃처럼 타오르다 금방 식어 버리는 풋사랑과는 차원이 다른 감동을 안겨 줬었다. 이번 비프에 피터 리슈티 감독이 내놓은 '아버지의 정원'은 '아무르'의 현실판이라고 부를 만하다. 홍 프로그래머는 "자신의 부모 이야기를 직접 촬영하면서 부분적으로는 인형극으로 상황을 재연해 드라마적인 재미도 추구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철하 감독의 '안녕?! 오케스트라'는 경기도 안산의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오케스트라 공연을 준비하면서 음악을 통해 교감을 나누는 모습을 진솔하게 다뤘다. 이방인이라는 차별의 시선을 음악으로 이겨 낸 비올리스트 용재오닐이 오케스트라 지도를 맡았는데, 이 영화의 세계 최초 상영을 축하하기 위해 다음 달 5일 부산을 찾아 해운대해수욕장 야외무대에서 공연도 펼친다.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선 한국 작품의 선전이 예상된다.
정윤석 감독의 '논픽션 다이어리'는 1994년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지존파 사건을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정 감독은 이 사건을 흔한 강력사건의 하나로 보아 넘기지 않고,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 그로 인한 계급·계층의 갈등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이를테면 한국사회의 성격 변화를 구분 짓는 지표와 같은 사건인 것이다. 또 지존파 사건이 개인적 폭력과 범죄의 문제라면, 1994~1995년 잇따라 무너진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사고, 12·12 쿠데타와 광주항쟁 유혈진압 사건은 국가권력의 폭력이다. 묵직한 주제의 이야기지만 새로운 접근 방식이 신선하다. 미술을 전공한 정 감독의 첫 장편으로, 최근 미술을 바탕으로 영화언어를 구사하는 감독이 늘어나는 추세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미디어에 비친 '팔뚝질'하는 모습으로 낯익은 노동자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노동자들의 삶에 천착해 온 김미례 감독이 이번엔 중년의 KT 노동자 이야기로 '산다'라는 작품을 내놓았다. 4명의 KT 중견 노동자들이 구조조정 프로그램 때문에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업무에 배치되지만 자존감을 잃지 않는다. 치열한 투쟁의 현장을 보여 주진 않지만 오히려 차분한 시선이 우리 형제, 아버지, 이웃이 언제든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조성봉 감독의 '구럼비-바람이 분다'는 제주 해군기지 대상지인 이곳 자체가 주인공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이자 생물권보호지역인 구럼비의 아름다운 사계와 생태를 화면 가득 담아, 왜 이곳이 자연 그대로 지켜져야 하는지를 웅변한다. 해군기지 저지투쟁을 벌이는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도 눈물겹다.
베이비 루스 빌라라마 감독의 '사랑에 빠진 재즈'는 필리핀 게이 청년 재즈의 사랑과 결혼을 둘러싼 갈등과 혼란을 다루고 있다. 상견례를 위해 재즈의 집에 독일인 약혼자가 찾아오고, 재즈를 이해하긴 하지만 동성 결혼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가족들의 심리와 재즈의 태도에 불만을 드러내는 약혼자로 인해 동요를 겪는 재즈의 사랑과 고뇌가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이 밖에 비프가 뿌린 씨앗의 수확도 풍성하다.
2007년 아시아영화펀드의 AND(아시아 다큐멘터리 네트워크) 지원을 받아 6년 만에 비프에서 상영되는 인도네시아 다니엘 지브 감독의 '거리에서', 아시아영화아카데미 1기 출신인 중국 텐진 체탄 초클리 감독의 '아버지의 땅'이다. 두 작품 모두 월드프리미어로 비프에서 첫 상영된다.
■단편 경쟁·쇼케이스
난민의 격리된 삶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묻는 루시 개피 감독의 '담장 너머'. 비프 제공 |
'에르 토스틱과 용' 비프 제공 |
'내 이름은 아닌아(AninA)'. 비프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