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 우리는 너무나 작은 것들에 연연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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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적 무늬가 담긴 알 수 없는 형체가 있다. 하지만 좀 더 멀리 서서 보면 닭 볏이란 걸 알게 된다. 또 좀 멀리 서면 닭 볏을 보고 있는 아이들이 보이고 그 아이들이 있는 집이 보인다. '그림 속 그림'을 확장해 나가는 기발함이 놀랍다. 보물창고 제공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보인다. 나란 존재가 얼마나 작은지, 거대한 우주에 비춰 내가 얼마나 좁은 공간에서, 별것 아닌 일에 흥분하며 아등바등 살고 있는지.

하늘 위로 올라갈수록 사물은 점점 더 작아 보이되 생각은 커지는 것처럼, '줌, 그림 속의 그림' 또한 책장을 넘길수록 우리가 얼마나 작은 것에 연연해하며 살고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간단치 않은 책이다. 하지만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책장 넘길수록
앞의 그림 품은 더 큰 그림
기발한 상상력 놀라워

책은 붉은 바탕에 기하학적 무늬가 박힌, 도무지 뭔지 알 수 없는 그림 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뭐지?' 하고 다음 장을 넘기고서야 비로소 추상적 그림의 실체가 닭의 볏을 줌 인 했던 것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책은 점점 한 단계, 한 단계 줌 아웃을 해 나간다. 다음 장에서는 조금 더 멀리서 닭을 바라보고 있는 두 아이의 뒷모습을 보여 주고 또 다음 장에서는 아이들이 닭을 바라보고 서 있는 집이 소녀가 만지작거리는 장난감 마을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뒷걸음질 치다 보면 비로소 그림은 우주 공간의 아득한 점에 다다른다.

줌, 그림 속의 그림 / 이슈트반 바녀이
'이 그림을 담을 더 큰 그림이 있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책장을 자꾸 넘기게 되는데 작가의 상상력은 놀랍기만 하다. 버스 광고판의 그림, 이를 TV에서 보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이 담긴 우표 등으로 확장해 나가는 작가의 기발함과 사고의 깊이가 놀랍다.

더구나 이 책은 다른 그림책과 달리 그림은 있지만 글은 없는 책이다. 처음엔 두 쪽 중 그림과 마주 보는 나머지 한 쪽이 새카맣게 돼 있어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그 까만 공간에 오히려 마음껏 이야기를 채워 넣을 수 있어 아이들이 상상력을 발휘하기에도 그만이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보며 그림에 맞는 이야기를 매번 다르게 만들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은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최초 출간연도인 1995년 '뉴욕 타임스'와 '퍼블리셔스 위클리'가 꼽은 '올해의 최고 어린이책'으로 선정되는가 하면 세계 최고 권위의 그림책 상인 칼데콧 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위즈너의 '시간 상자' 등 여러 그림책들의 탄생에 강한 영감을 주기도 했다.

앞에서부터 봐도 재밌지만, 반대로 뒤에서부터 보며 줌 인을 해 들어가며 봐도 또 다른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우리가 그냥 보아 넘기는 사물들의 깊숙한 진실은 뭔지, 다 아는 양 속단하고 단정 지으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하는 '2권 짜리' 책이다. 유아부터 어른까지, 전 연령대. 이슈트반 바녀이 그림/보물창고/64쪽/1만 2천800원. 이현정 기자 yourfo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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