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성교육 어떻게 할까] 빨라진 사춘기, 미숙한 성 인식… 대화부터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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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합천자연학교에서 열린 초등학생 성교육 캠프 '소,우,주(소중한 우리 몸의 주인공)'에서 아이들이 조별로 완성한 신체 그림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늘함께청소년성문화센터 제공

최근 한 30대가 SNS를 통해 부산의 초등학생을 광주까지 꾀어서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등하굣길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고만 가르치던 부모들은 가슴이 철렁했다. 이에 앞서 초등학교 개학을 앞두고 부산의 일부 학교가 학생들의 핫팬츠 복장을 금지시킨 일도 있었다. 부모들은 대체로 반기고 일부는 반발했다.

 

두 사건과 사건을 둘러싼 논란은 초등학생의 성 문제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혼란스러운 시각을 드러낸다. 전문가들은 성폭력 예방 교육에 앞서서 성에 대한 왜곡되지 않은 인식과 올바른 생활 습관을 갖도록 하는 성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춘기와 인터넷 이용이 빨라진 요즘의 초등학생은 이와 같은 성교육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기다.

■초등학생은 누구인가

초등학생의 성교육이 중요한 것은 요즘 초등학생을 둘러싼 안팎의 변화가 너무도 급격하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전국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2년 제8차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 조사'에 따르면 남학생의 몽정 경험이 시작된 평균 연령은 만 12.6세, 여학생의 월경 경험이 시작된 평균 연령은 만 11.7세로 나타났다. 초등 고학년이라면 이미 몽정과 월경을 경험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초등 고학년 상당수 몽정·월경 경험
스마트폰·SNS 사용률 중·고생보다 높아
왜곡된 성 정보에 대책 없이 노출

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태도 필요
자위·성관계·책임감 정확히 알려줘야
컴퓨터는 가족 공동 공간에 설치

걸러지지 않은 성적인 정보에 노출되는 온라인 환경은 또 다른 변화다. 올해 한 조사에서 나타난 초등학교 4~6학년의 스마트폰 사용률은 72.7%. SNS 이용률은 초등학생이 중·고등학생을 압도한다. 통계청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만 6세 이상 초등학생의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프로필 기반 SNS 사용률은 16.5%, 포털 카페 등 커뮤니티 사용률은 72%로 중·고등학생보다 높았다.

부산성폭력상담소의 지난해 전체 상담 중 피해자가 초등학생(7~12세)인 건은 12%. 교육부의 2013년도 학생건강증진 기본방향에 따르면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초등학교는 지난해까지 연간 10시간 이상, 올해부터는 연간 15시간 이상 성교육 수업 실시를 의무화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생물 시간으로 대체하거나 대화나 토론이 불가능한 전교생 방송 수업으로 진행하고 있어 교육 효과를 확신할 수 없다.

"개인차가 있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은 성에 대해 어른과 비슷하게 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성관계나 임신의 원리는 물론이고요." 부산성폭력상담소 김선화 상담원은 말한다. 단, 처음에는 이 주제를 입밖에 꺼내기를 부끄러워하다가 비공개 쪽지로 성에 대한 질문을 받거나 아이들끼리 마인드 맵 지도를 그리게 하면 정확하지 못한 단어들로 성에 대한 지식을 표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대화를 통한 성교육

몸은 자랐고 각종 정보는 알고 있지만 성에 대한 인식은 아직 미숙한 초등학생이라는 위치는 부모를 고민에 빠뜨린다. 초등학생의 성교육을 어디에서부터 시작할지, 어디까지 해야 할지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이때 기억해야 할 것은 첫째, 성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할 것, 둘째, 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부모의 태도이다.

초등학생 저학년일수록 부모 태도가 중요하다. 김선화 상담원은 "아이가 우연히 부모의 성관계를 목격하고 학원 버스에서 이것을 따라해 문제가 된 일이 있었다. 이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성행위가 나쁜 것이 아니라는 태도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학년이라면 팩트보다 오히려 이것을 말하는 부모 태도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부산여성의전화 성교육사업단 '셀파'의 김사라 씨 이야기다. "청소년의 자위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초등학생의 자위는 문제 행동으로 받아들이는 부모가 많다. 이때 다그치거나 혼을 내면 아이는 성 자체에 대해 '나쁜 것, 부모와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집중하는 게 아니라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대화를 시작할 기회로 삼으면 된다."

부산 동래구 명륜동 늘함께청소년성문화센터의 임신 체험 모습. 청소년성문화센터는 다양한 체험 성교육을 제공한다. 늘함께청소년성문화센터 제공
가정에서의 일상 생활 속 대화는 어떤 성교육보다도 효과적이다. 초등학생 자녀가 노골적인 성관계를 암시하는 아이돌 가수의 노래 가사를 무심코 흥얼거린다거나 선정적인 춤을 따라한다고 하면, 좋아하는 감정과 성관계의 의미, 그로 인해 책임져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연예인의 데이트 강간 사건이나 아동 성폭력 뉴스도 대화의 주제가 될 수 있다.

생식기와 남녀의 신체 차이 같은 주제가 껄끄럽다면 게임을 이용해 보는 것도 괜찮다. 교육부가 실시한 학생건강정보센터 교육자료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서울신목초등학교의 보건 교재는 초등학교 5학년을 대상으로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성 건강 미션을 부여해 볼 것을 제안한다. '아이엠그라운드' 게임을 생식기 명칭으로 해서 가정에서 생식기 명칭을 올바로 말하는 훈련을 한다거나, 자녀가 부모님을 대상으로 부모의 월경 또는 몽정 경험을 인터뷰하는 것, 남녀 생식기의 차이와 성건강에 대한 상식으로 카드 게임 놀이를 해 보는 것 등이 포함돼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이용은 이렇게

이 경우도 출발은 자녀에 대한 관심이다. 미국 국립아동지원센터 프로그램(NCAC)은 컴퓨터를 가족의 공동 공간에 설치하고, 자녀의 인터넷 사용을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링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라고 조언한다. '대화를 통해 자녀의 패스워드를 공유하라, 온라인상에서 알게 된 사람은 오프라인에서 만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 주라'는 수칙도 있다.

스마트폰이 성폭력에 악용되는 속성 중 SNS뿐 아니라 카메라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선화 상담원은 "남자 친구들끼리 바지를 내리고 장난처럼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는 것도 성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 누군가가 신체를 찍어서 보내라고 한다면 자신의 몸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과, 사진이 다른 사람에게 유포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일러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성폭력 자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정립해 주는 것도 부모 역할이다. 김 상담원은 "성폭력은 분명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뺑소니 교통사고처럼 개인이 조심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짧은 옷이 성폭력의 원인이라는 식의 접근이나 성폭력이 여자의 인생을 망친다는 식의 인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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