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나의 삶] 사회적기업 '함께사는세상' 양주일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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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교통사고 장애 딛고 옷수선업의 '미다스 손' 재활

양주일 씨가 사회적기업인 '함께사는세상'이 운영하는 부산 해운대구의 의류 수선 전문점에서 재봉틀 작업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강원태 기자 wkang@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 센텀IS타워 건물 지하 3층 주차장의 한 귀퉁이에는 '리포미'라는 간판을 단 자그마한 점포가 자리하고 있다. 사회적기업인 '함께사는세상'이 운영하는 의류 수선 전문점이다.

양주일(63) 주임은 이곳에서 유행이 지난 중고 의류를 새것처럼 다시 수선하는 일을 맡고 있다. 아무리 헌 옷이라도 그의 손을 거치면 말끔하게 다시 태어난다. 맡겨지는 중고 의류들의 대부분은 기부되거나 재활용분리수거 의류함을 통해 수거된 옷들이다. 지난 2011년 설립된 '함께사는세상'은 이곳에서 수선된 옷을 반여동 롯데마트 인근의 매장에서 판매한다. 수익의 대부분을 장애인들을 위한 재활사업 등에 사용한다.

양 주임은 왼쪽 다리에 중증 장애를 갖고 있다. 20대 초반 교통사고 때문에 다리를 다치면서 그는 후천성 장애를 갖게 됐다. 하지만 그는 장애를 딛고 일어서 국내 최고 수준의 양복 기술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20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다리 장애
호구지책으로 양복 만드는 기술 배워
경남장애인기능대회 5연패 '전무후무'

양복점 폐업·교통사고 등 불운 겪고
사회적기업서 옷 리폼하며 '제2의 인생'

"장애인과 서민 위해 재능 사용 보람,
양로원 노인들 낡은 옷 수선 봉사 계획"

그는 지난 1999년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주최로 열린 경남도장애인기능대회 양복 종목에 양산시 대표로 출전해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2003년까지 그는 5년 연속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의 기록은 지금도 깨어지지 않고 있다.

"대회에 처음으로 나갔을 때가 49세였습니다. 단지 내가 가진 기술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아보기 위해 출전했습니다. 주변의 권유도 있었지요. 그런데 덜컥 1등을 하고보니 정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동안 정말 힘들게 기술을 배워온 데 대한 보람도 느꼈습니다."

양 주임이 처음 양복 만드는 기술을 배운 것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2년 뒤부터. 사고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게 되면서 호구지책으로 양복 만드는 기술을 배우게 된 것이다. "기술을 배워야 홀로 설 수 있다"는 부모의 조언도 진로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제가 일을 배우던 1970년대 초만 하더라도 모두가 양복을 맞춰 입었습니다. 요즘처럼 기성복이 나오지 않았을 때죠. 양복 만드는 직업은 인기가 매우 좋았습니다. 하지만 기술을 배우는 것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기술 전수가 도제식으로 이뤄지다보니 텃세가 심했고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수년간 잡일만 하다가 그만 두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저는 운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양 주임은 그의 성실함과 남다른 손재주를 눈여겨본 한 양복 장인의 도움으로 남들보다 비교적 빨리 양복 기술을 습득했다고. 이후 그는 양산에 자기 가게를 열었다. 손님들의 호평이 이어지면서 단골도 늘고, 돈도 제법 많이 벌었다.

하지만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맞춤 양복은 본격적인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공장에서 만든 브랜드 양복들이 시장을 점령하면서 맞춤 양복을 찾는 고객들이 급감했다.

"거의 대부분의 양복점들이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공장 작업복 주문까지 받으면서 버텼는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우환이 겹치면서 결국 저도 문을 닫았습니다. 천직인 양복 일을 못하게 되자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지금은 전국을 통틀어 맞춤 양복을 제대로 만드는 사람이 50여 명밖에 남아있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양복 기능사의 맥이 끊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양 주임은 그 뒤 공사장에서 일을 하거나 임시로 의류 수선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갔다. 하지만 불운은 계속됐다. 7년여 전에 다시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건강도 더욱 나빠졌다.

"정말 힘든 세월이었습니다. 그래도 다시 일어서야겠다는 생각으로 장애인채용박람회에 갔다가 함께사는세상㈜ 장진순 대표를 만났습니다. 장 대표는 휠체어를 타야하는 중증장애인입니다. 기왕이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장 대표의 권유를 받아들였습니다. 비록 양복 만드는 일은 아니지만 장애인이나 서민들을 위해 내가 가진 기술을 사용할 수 있어 무척 기쁘고 보람 있습니다."

양 주임은 이어 "이제는 중고 의류 수선업을 제2의 천직으로 생각한다"며 "기회가 된다면 양로원 등을 돌며 노인들의 낡은 옷을 무료로 수선해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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