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칼럼 '판'] 엘 시스테마, 꿈을 연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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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은 해금 연주가

한 아이가 있다. 한 어머니와 네 명의 형제, 그리고 네 명의 아버지를 가진. 늘 가난했고, 늘 가정 폭력에 시달렸다. 8살부터 일했고 강도질과 마약에 손대다 감옥에 갔다. 언제나 지루했으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그 아이, 레나르 호세 아코스타 라미레스는 엘 시스테마를 만나 지금은 클라리넷을 불며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이는 비단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혁명으로 불리며 지난 40년간 30만 명의 아이들을 변화시킨 엘 시스테마는 1975년 음악을 통해 새로운 베네수엘라를 만들겠다는 뜻을 품고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와 8명의 음악가가 만든 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재단이다.

엘 시스테마는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던 빈민가의 아이들에게 무료로 악기를 나눠 주고 가르쳐 줬다. 합주 중심의 음악교육은 질서, 책임, 배려 등의 가치를 익히게 해 건실한 사회 구성원의 틀을 마련해 주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비로소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었으며 가족과 이웃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결국, 엘 시스테마는 누구에게나 가능성을 열어 주고, 정신적으로 깊숙이 관여하여 평화적 참여를 도모한 거대한 사회운동인 것이다.

필자는 지난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이들의 연주를 관람하고 왔다. 이 글은 눈물을 슬쩍 훔치며 본 그때를 잊지 못해 쓴다. 무엇이 감동적이었는지 묻는다면, 베를린 필하모닉의 사이먼 래틀이 지휘봉을 잡은 것, 혹은 250명의 어린이가 꼬물거리는 손으로 말러 교향곡을 멋지게 연주했다는 것을 떠난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답할 수 있다.

음악에서 감동의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 아이들, 이들에게 담긴 이야기의 울림이 크다. 엘 시스테마 교육을 받은 국립 베네수엘라 청소년 오케스트라는 역경의 과정을 음악에 투영시켜 희망으로 바꿔 주었다. 이 공연을 보며 음악은 결코 사치품이 아닌 많은 사람을 구할 힘을 가지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러한 운동이 지속·확산되길 바라며, 삶과 세상에 대한 희망으로 충만해져 극장을 나서게 해 준 아이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엘 시스테마, 꿈을 연주하다'(도서)와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영화)를 독자 여러분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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