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도산서원 금송 옮겨야 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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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문 스님 문화재 제자리찾기 대표

학창 시절 도산서원에 간 적이 있었다. 거짓을 행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고자 했던 조선시대 올곧은 선비정신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때 서원 마당에서 천 원짜리 지폐의 뒷면에 그려졌던 나무 '금송'을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표지석에는 '이 나무는 박정희 대통령각하께서 청와대 집무실 앞에 심어 아끼시든 금송으로서 도산서원의 경내를 더욱 빛내기 위해 1970년 12월 8일 손수 옮겨심으신 것입니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 나무를 배경으로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던 추억도 간직하고 있다.

일본 나무가 우리 돈에 그려진 것은 부적절

세월이 흘러 2011년. 국가기록원에 소장된 도산서원 관련 파일을 뒤지다가 그 금송이 가짜가 아닌가 하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결국 문화재청과 안동시에 사실 조회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두 기관으로부터 '현 금송은 1973년 4월 22일 새로 구입한 것을 그 위치에 다시 심은 것'이라는 답변을 받아냈다.

국가기록원 문서에 따르면 1970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심은 금송은 2년 만에 죽었고 현 금송은 안동군이 1973년에 예산 50만 원을 들여 다시 심은 나무로 판명되었다. 아마도 당시 공무원들이 문책을 두려워한 나머지 새 금송을 심은 사실을 은폐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문제의 금송은 우리나라에서는 자생하지 않는 일본 특산종이란 이유로 여러차례 구설에 올랐던 나무다. 금송은 금강송과 같은 우리나라 소나무와는 전혀 다른 낙우송과로 일본에서만 자라는 특산종이었기 때문이다. 도산서원에 심었던 금송은 일제강점기 현 청와대 자리에 조선총독관저를 건립할 때, 총독부 관료들과 일본 군인들이 일본에서 옮겨다가 심은 수종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일본을 대표하는 나무이자 일본 왕실과 사무라이 정신을 상징하는 금송이 전 국민이 사용하는 우리나라 화폐에 그려지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지난 2003년에는 그 금송이 40년간 성장을 거듭해 도산서원의 경관을 가리는 등의 문제까지 생겼다. 고심 끝에 안동시는그 금송을 다른곳으로 이전하기 위해 문화재청에 형상변경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당시 문화재청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대통령 기념식수'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처럼 우여곡절을 겪은 금송이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수십 년간 거짓말을 해 온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2003년 당시 문화재청이 그 금송이 가짜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전에 반대한 이유는 또 무엇일까.

2011년 12월, 문화재청은 그 금송 앞에 세워진 거짓말 표지석을 철거하고, 새로운 표지석을 설치했다. 바뀐 표지석에는 '1970년 12월 8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도산서원 성역화 사업의 준공을 기념하기 위해 청와대의 금송을 옮겨 심었으나 2년만에 말라죽는 바람에 이듬해인 1973년 4월 같은 나무를 다시 심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하지만 거짓 표지석을 철거한 것이 끝이 아니었다. 또 다른 의문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만약 금송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심은 나무가 아니라면, 굳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문화재청은 안동시와 협의해야 한다고 했고, 안동시는 도산서원과 상의해야 한다고 했다. 당사자인 도산서원은 혼자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고 했다. 법원의 결정을 묻는 것 외에는 달리 택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제기된 소송이 오는 13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에서 첫 번째 법정 공방을 벌이게 됐다. 그 금송을 도산서원에 계속 두는 것이 옳으냐를 놓고 한바탕 논쟁이 벌어질 판이다.

대통령 식수 아니면 옮기는 것이 마땅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묻는다. 나무가 무슨 죄냐고. 말 그대로 나무에게 무슨 죄가 있으랴. 하지만 이건 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이다. '군자의 길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대학에 나오는 구절이다. 퇴계 선생은 이 말을 평생 가슴속에 새기고 살았고, 돌아가시는 날까지 벽에 써 놓고 실천하고자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심은 것이 아니라 안동군수가 심은 가짜임이 밝혀진 그 금송을 계속 도산서원에 두어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이제 그들이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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