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만 갈치 밤낚시] 제 몸 부르르 떨며 은빛 '번쩍'…"용이 승천하네" 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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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치 낚시를 처음 해 보는 '소녀조사' 김채원이 은빛으로 반짝이는 갈치 한 마리를 루어로 걸어냈다. 진해만 밤갈치 낚시는 쉽게 낚시를 접하고 배울 수 있어 초보나 가족 단위로 즐기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낚시를 한 번도 안 해 본 초보들 앞에서 자랑질을 한다. "이만한 고기를 잡았고, 기분은 좋았고, 먹어 보니 맛있었다"라고. 이런 대화의 마무리는 대개 "다음에 한 번 데려가 주세요"다. 그동안 낚시 무용담(?)을 좀 떠벌리고 다녔던지 평소 알고 지내던 몇몇 지인들이 취재에 동참하겠다고 한다. 모델이 많으면 취재 내용이 다양해지니 그러자고 했다. 어종을 고르는 게 문제. 진해만에 풀치(갈치 새끼)가 붙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초보라도 무난하게 낚을 수 있다기에 덜컥 예약했다.


■초보들의 잔치

대여섯 명의 출조 팀이 꾸려졌다. 갈치(풀치) 낚시는 밤에 집어등을 밝히고 한다. 그래서 더운 여름이지만 쌀쌀할 수 있다는 통지를 미리 참가자들에게 했다. 긴옷을 여분으로 가져 오라고 하고, 혹여 구두를 신고 올 사람이 있을까 싶어 잘 미끄러지지 않는 운동화를 착용하라고 문자를 날렸다.

우리요양병원 최옥동 이사장은 운동화를 신고 왔고, 부인은 아예 레인 부츠를 신고 왔다. 여행용 트렁크에는 갈아입을 옷이 한 짐. 정작 낚시 도구는 단 하나도 없었다. 대신 대량의 음료수와 간식거리를 가득 가지고 왔다.

방학 중인 딸에게 추억을 선사하러 온 한국자연환경복원기술연구소 김정오 소장은 갈치를 못 잡으면 먹어야 한다며 양념 통닭을 사들고 왔다. 김 소장은 몇 번이고 기자에게 문자를 보내 "저는 안 해도 좋으니 딸만은 꼭 낚시 체험을 시켜야 한다"며 낚싯대 한 벌을 빌려 달라고 부탁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부경조구협회 김선관 회장은 중학교 3학년인 김 소장의 딸 채원(16)이에게 낚시를 직접 가르치겠다고 약속했다. 출조지인 진해에서는 국립수과원 성기백 박사와 아들 다슬(22)이가 합류했다. 두 사람도 초보이기는 마찬가지. 해양경찰학과에 다니는 다슬이는 앞으로 원양상선을 탈 예정인데 미리 낚싯배를 타 보는 거라고 했다.

올초에 진수한 7.93t급의 블랙드래곤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원은 18명이나 돼 공간이 넉넉했다.


■소녀조사 등극

낚시 장비가 없는 4명은 블랙드래곤호의 선장이자 진해 포인트낚시 사장인 조재필 선장이 바다낚시용 민장대 채비 4개를 빌려 주었다. 민장대는 가장 기본적인 낚시 채비인데 집어등을 보고 갈치가 떠오르기 때문에 4~5m 수심층에서도 입질을 잘한다고 했다. 낚싯바늘은 세트 묶음이 된 것이다. 갈치의 이빨이 강해 굵은 나일론 줄도 단박에 끊어 버리기 때문에 바늘과 연결된 부분은 와이어로 돼 있었다. 바늘 위에는 2개 정도의 케미라이트를 달아 물속에서도 집어 효과를 줬다.

채원이는 김 회장의 코치를 받아 루어 채비를 했다. 축광 효과가 있는 분홍색 웜을 지그헤드 채비에 달았다. 갈치 지그헤드는 특이하다. 보통 지그헤드의 바늘은 위로 향하는데 갈치는 바늘이 밑을 향한다. 이것은 갈치가 수직으로 먹이 활동을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민장대 낚시의 미끼는 꽁치살. 꽁치의 살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 뱃살 부위를 낚시에 꿰어 쓴다.

항구에서 10분 정도 나갔을까. 주변에 다른 배들이 많다. 온 바다가 환하다. 눈앞에 해안선이 보이니 먼바다가 아니다. 초보들의 채비를 봐 주느라 뱃전을 뛰어다니다 보니 더웠다. 이때, 최 이사장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왔다~!" 첫 고기가 문 것이다. 올라온 것은 두지(손가락 두 개 굵기)가 채 안 되는 '은갈치'. 갈치는 물 밖에 나오자 제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것이 집어등 조명에 비쳐 용이 승천하는 듯한 모양새로 번쩍거렸다. 하지만 최 이사장의 조과는 장대한 시작과 달리 허무했다. 이날 복어 한 마리와, 전갱이 한 마리만 더 잡았을 뿐이다.

정작 의외의 결과는 채원이의 '소녀조사' 등극이었다. 릴 캐스팅도 어설프던 채원이는 시간이 갈수록 혼자서 캐스팅과 릴링을 반복하더니 계속 은갈치를 쑥쑥 뽑아올렸다. 그것도 생미끼에도 잘 안 무는 예민한 갈치를 말이다. 모두들 감탄했다.


■맛들이면 안 돼

채원이의 분발과는 달리 연어 박사인 성 박사는 무진 애를 쓰는 것 같았지만 조과는 신통찮았다. 오히려 아들 다슬이가 아버지의 코를 납작하게 했다. 다슬이는 전갱이 몇 마리를 걸어올리더니 드디어 은갈치를 낚아냈다. 이에 질세라 성 박사도 갈치를 낚아, 부자는 대상어를 동시에 걸어내는 데 성공했다.

낚시 자리에 도착하자마자 저녁 간식 삼아 조개를 넣은 라면을 거방지게 내놓았던 조 선장은 내내 부엌에서 뚝딱거리더니 낚은 갈치 10여 마리를 거둬갔다. 그러고는 또 선실 부엌에서 나오지 않았다.

갈치는 집어등을 보고 몰려들어 수면에서 노닐었지만 웬일인지 미끼를 물지 않았다. 물더라도 조금 흔들더니 그냥 가 버렸다. 이날 조과는 가장 안 좋은 수준이라고 했다.

낚시를 시작할 때 조 선장이 말했다. "갈치 낚시는 신중해야 합니다. 입질이 왔다고 바로 챔질은 하면 모두 달아납니다." 느긋하게 기다렸다가 낚싯대를 늦추고 재차 입질이 오면 잡아채라는 것이었다.

이 타이밍을 못 맞춰 애를 태우던 최 이사장의 부인은 낚시가 끝나갈 무렵에야 겨우 몇 마리를 잡았다. 소녀조사 채원이는 모두가 침묵할 때 혼자 또 갈치를 낚아냈다. 낚시 스승인 김 회장의 입가에 미소가 절로 피었다.

조 선장이 성의껏 마련한 음식을 내놓았다. 한밤이었지만 날씨가 무더웠는데 나온 메뉴는 물회. 그것도 살얼음이 살아 있다. 오직 신선할 때만 먹을 수 있다는 갈치회는 하얀 속살을 뽐내고 있었다. 귀한 갈치회를 물회 양념에 넣어 먹으니 별미였다. 돼지고기 두루치기는 나중에 오히려 남았다.

초보나 베테랑이거나, 블랙드래곤호 갑판 위의 평상에 놓인 화려한 음식에 모두가 흡족해했다. 채원이 아빠인 김 소장이 말했다. "정말 재미있네요. 이런 낚시를 하려면 어떤 채비를 갖춰야 하죠?"

정작 갈치를 많이 잡은 딸보다 아빠가 더 낚시에 매료된 것이다. 화려한 한밤의 만찬은 허술한 조과를 풍성하게 만들어 내는 진해 포인트 낚시(055-544-2735) 조 선장의 솜씨였는데도 말이다.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TIP

손가락 측정 단위


갈치는 길이가 중요하지 않다. 굳이 말하자면 덜 중요하다. 새끼 갈치를 풀치라 부르는데 풀치도 길이는 30㎝가 훌쩍 넘는다. 민물고기로 치면 월척 수준이다. 하지만 체고는 지느러미를 합쳐봐야 채 5㎝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갈치의 크기를 손가락 굵기로 가늠했다. 진해만에서 주로 잡히는 갈치는 이 지에서 삼 지 수준. 손가락 두 개나 세 개를 합한 정도의 체고를 가졌다는 것이다.

제주도 근해나 남해 먼바다에서 잡히는 큰 갈치는 오 지나 된다. 성인 남자가 손가락을 가지런히 모아 봤을 때의 모양새이니 오 지 갈치는 한 마리의 가격만 해도 몇 만 원이다.

진해만의 갈치는 여름과 가을 내내 왕성한 먹이 활동을 해서 11월까지 낚시가 가능하다고 한다. 매달 크기가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 여름이 지나고 찬 바람이 불면 갈치의 굵기도 덩달아 커지니 조사들의 마음도 바빠진다.

갈치는 두께가 조금만 굵어져도 낚시 손맛이 확 달라진다. 하물며 풀치도 당기는 힘이 장난이 아닌데 삼 지만 넘어가면 채비나 낚싯대를 제대로 갖춰야 한다.

누구나 큰 물고기를 잡고 싶다. 작은 놈을 잡아도 큰 놈을 잡았다고 자랑하고 싶다. 그렇지만 큰 갈치를 잡고 싶은 욕망이 넘쳐 이 지를 잡아 놓고 손가락을 살짝 벌려도 삼 지 갈치가 아니다. 물고기의 크기는 그대로인데 사람의 공명심이 허투루 크기를 키운다.

이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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