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정치 후진국' 일본에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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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진 편집국 부국장

8월 6일은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이다. 이를 되돌아보는 행사가 한·일 양국에서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경남 합천에서는 제2회 비핵·평화대회가 5, 6일 양일간 열리고 있다. 합천은 '한국의 히로시마'라고 불릴 정도로 원폭 피해자가 많은 곳이다. 대다수가 히로시마 군수공장 등에서 노역하다 피폭됐다.

'8월'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68년 전 이때 제국주의 일본이 무너지고, 우리는 치욕스러운 식민지배에서 벗어났다. 긴 세월이 흘렀건만, 매년 이맘때만 되면 우리는 일본의 망령을 목격한다.

동아시안컵 축구 한·일전에 등장한 걸개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구가 발단이다. 교과서적인 이 한마디에 일본 정부가 들고 일어났다. 순수해야 할 스포츠에 정치가 개입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기자회견까지 열어가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역사를 잊지 않았고, 우리에겐 미래가 있다'는 반박처럼 보였다.

그러나 당일 아소 다로 부총리는 '독일 나치 정권이 헌법을 무력화시킨 수법을 배우자'는 망언을 쏟아냈다. 그의 증조부 아소 다키치는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을 착취해 악명을 떨친 아소탄광의 창업주다. 그의 외조부와 장인은 총리까지 지냈다. 이런 배경을 지닌 아소가 제국주의·군국주의로의 회귀를 갈망하는 야욕을 드러낸 것이다. 걸개 문제로 양국 간에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그가, 보란 듯이 역사를 부정했다.

한술 더 떠, 바로 다음날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상은 한국의 '민도(民度)'를 운운했다. '일본과 달리 한국은 민도가 낮아 그런 짓을 했다'는 비판이었다. 역사적 인식이 아무리 다르다 하더라도, 상대국 국민 전체를 모독하는 이런 발언은 정상적인 국가 관계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치를 본받자는 아소나, 유태인을 박해한 나치처럼 상대국 국민 전체를 비하한 문부상의 망언은, 그들 뼛속 깊이 제국주의의 망령이 도사리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아소는 국제 사회의 비난이 거세지자 발언을 철회했지만, 사죄 없는 마지못한 철회였다.

이런 국가를 이웃으로 두고 있다는 건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침략전쟁을 일삼고,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그도 모자라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고 끊임없이 과거로 회귀하려는 이런 국가는, 결코 환영받는 존재가 될 수 없다.

일본 정권은 한국 응원단을 비난하기에 앞서, 걸개 내용이 뭐가 잘못된 것인지부터 밝혀야 한다. '역사'는 그들이 저지른 야만적 폭력을 뜻하는 것이고, '미래'는 화해와 공생·번영을 뜻하는데, 뭐가 틀렸는지 설명해야 한다. 폭력적인 힘만 앞세운 국가는 강국(强國)은 될 수 있을지언정 결코 대국(大國)이 될 수 없다. 그 힘도 머지않아 무서운 징벌이 돼 되돌아온다는 사실은 역사는 수없이 증명하고 있다.

지난 5월 부산 민주공원에서는 원폭2세 환우 고(故) 김형률을 기리는 추모제가 있었다. 이 행사에 많은 일본인이 참석했다. 그들은 김형률이 잠들어 있는 영락공원까지 찾아가 그의 영정 앞에 머리 숙였다.

필자는 지난해 원폭 피해자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히로시마를 방문했을 때 아침마다 밥을 챙겨 왔던 일본인 할머니를 잊지 못한다. 교외에 살고 있는 그는 한국 기자에게 아침밥을 먹이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호텔로 찾아왔고, 기자가 잠자리에서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면부지의 한국인에게 이런 정성을 쏟은 것은 역사에 대한 진심 어린 사죄였다. 필자는 그에게서 일본의 희망을 보았었다.

아소 등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이 일본인 전체의 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 정치가 이런 저급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미래가 없는 것은 자명하다. 그들이 배워야 할 것은 나치가 아니라 나치의 만행을 참회하고 전범을 응징하고 있는 지금의 독일이다.

kkj99@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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