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옥의 시네마 패션 스토리] ④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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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색상·치마폭 보면 여인의 성격도 보인다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에서 배우 이미숙이 분한 조씨 부인. 호화로운 가체에 폭 좁은 소매의 짧은 저고리에서 자유와 욕망, 에로틱한 여성미가 묻어난다.

지난 2003년 개봉된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조선시대 양반가의 은밀한 사랑게임을 코믹하게 다룬 영화다. 그러나 영화 내용과 상관없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 컬러풀한 한복 의상은 한복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바꿀 정도로 강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른바 조선 후기 한복의 미적 이미지를 극대화시킨 코스튬으로 사극을 한 차원 격상시킨 것이다.

원작은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1782년 프랑스 소설 '위험한 관계'인데, 프랑스혁명 이전의 문란하고 퇴폐적인 상류사회를 다뤘다. 영화는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배경은 달리했다. 18세기 프랑스 상류사회를 같은 시대의 조선 양반사회로 공간이동시킨 것이다.

영화는 특히 사랑게임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화려한 색감과 고급스러운 장식으로 한복을 변용시켜 스크린을 아름답게 채색했다. 영화 제작비도 총 50억 원 중 40% 이상을 디자인 부문에 투자했다는 후문이 있다.

'정사' '텔 미 썸딩' '황진이' 등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들며 영화의상을 만들어 온 디자이너 정구호가 이 영화에서 아트 디렉터를 맡아 의상은 물론이고 세트와 소품까지 비주얼을 극대화했다. 특히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십분 발휘해 전통미를 현대미로 승화시키는 데 성공했고, 이런 노력은 2004년 대종상 의상상과 대한민국영화대상 미술상으로 이어졌다.

영화 의상은 가장 동양적인 오방색을 기초로 삼았다. 그러나 스토리 전개와 등장인물의 성격에 따라 각기 다른 상징색을 부여했다. 정숙한 여인과 요부의 이중적 성격을 가진 조씨 부인(이미숙 분)에 대해서는 기존의 10폭 치마를 12폭으로 넓혀 우아하면서도 에로틱한 여성미를 강조했다. 또 호화로운 가체를 쓰고 폭 좁은 소매의 짧은 저고리를 걸치도록 했다. 색채학에서 욕망과 자유를 상징하는 보라색도 그의 저고리에 적용돼 요염한 자태가 더욱 강렬하게 드러나도록 했다. 서양 색 체계도 많이 차용됐다. 보색 관계인 노랑과 보라, 빨강과 청록을 서로 대비시켜 대범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연출했다.

사대부 부인으로 열녀문을 받은 숙부인(전도연 분)은 넉넉한 품의 저고리로 유행과 무관한, 조숙한 분위기의 여인으로 연출했고, 가체를 얹지 않은 쪽머리, 10폭 치마 등도 이런 이미지를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서양 색 체계상 유사색과 조화색 배색은 배우의 안정감을 유도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 흰색 저고리에 빨강 치마, 빨강 목도리로 분장해 강한 색 대비를 이룬 것도 눈길을 끌었다.

영화 '스캔들'은 한국적 디자인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전통 복식에 대한 긍지를 높였다는 점에서 일단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영화의 의상은 '불꽃처럼 나비처럼' '황진이' 등의 영화 제작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후 누빔이나 금박과 같은, 디테일한 전통미의 연출이 늘어난 것도 이 영화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된다.

동명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 kojin123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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