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톡톡] 세 가지 금단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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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 현상. 의존 상태에 있는 특정한 약물이나 물질 또는 활동을 적절하게 공급받지 못하거나 중단함으로써 나타나는 일시적인 고통스러운 신체적 장애 또는 증상. 최초 결핍 상태에서 48시간째에 절정에 달하고 이후 점차 그 강도가 약해진다.

기자가 살아오면서 이 금단 현상이란 걸 느껴본 적이 딱 세 번 있었다. 첫 번째는 대학 때 동기 녀석과 자취를 하던 시절이었다. 세간이라고 해 봐야 이불에 선풍기 한 대가 고작이었다. 하루는 룸메이트와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마침 시트콤('남자 셋 여자 셋'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이 방영되고 있었다. 근 6개월 만에 처음 구경한 TV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지금은 '섹드립의 대가'로 거듭난 신동엽의 '깐죽 연기'에 빠져 밥알이 콧구멍으로 들어갔다. CF조차 죄다 처음 보는 것들이라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날 이후 옆방에서 TV 소리라도 들릴라치면, 국정원 여직원 오피스텔 덮친 야당 정치인처럼 벽에 귀를 바짝 갖다댔고, 대중목욕탕에 가면 옷도 벗지 않고 휴게실에 앉아 하루 종일 TV만 봤다.

두 번째는 막 입대한 때였다. 당시 훈련소 입소 후 2주간은 사회의 물을 빼는 적응 기간이라 해서 흡연이 엄격히 금지됐다. 당연히 매달 15갑씩 흡연자에게 지급되는 '군8'도 나오지 않았고, 입대하면서 가져간 담배는 금방 동이 났다. 1주일쯤 지났을까 금단 증상이 극에 달해 제초 작업 후 베어낸 풀에 불을 붙여 물고 있는데 동기 하나가 구석 자리로 부르더니 주머니에서 꽁초를 꺼내 살갑게 불을 붙여 준다. 이 녀석 알고 보니 연병장에 버려져 있던 담배꽁초를 살뜰히도 주워 모아 놨던 것이다. 88, 디스, 장미에 말보로, 마일드세븐까지 컬렉션도 어디 하나 빠지지 않았다. 최고급 디스만 고집하던 내가 남이 피우다 버린 꽁초 담배 한모금에 영혼을 팔 것인가? 자존이냐 생존이냐 하는 실존적 고민에 빠지다 보니 담배는 더 당겼고, 불만 있는 게 불만이었던 나는 그 길로 그 녀석과 '장초 수색대'를 결성, 한동안 연병장 바닥을 이 잡듯 뒤지고 다녔다.

얼마 전 여름 휴가로 동남아 여행을 갔을 때 잊고 지냈던 금단 증상이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생각지도 못했던 휴대전화 인터넷이 원인이었다. '요금 폭탄'을 피하기 위해 해외 데이터 접속을 아예 차단해 놨더니 차로 이동할 때나 비치 베드에 누워 있어도 스마트폰만 만지작 거릴 뿐 딱히 할 게 없었다. 처음에는 무념, 무상의 무아지경이 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갈망, 긴장, 집중력 저하, 졸림, 수면장애 등 온갖 증상이 나타났다. 말로만 듣던 스마트폰, 인터넷 중독이 이런건가 싶어졌다.

김해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접속부터 했다. 정치, 경제, 사회의 주요 이슈들을 훑어 봤다면 자괴감이나 들지 않았을 텐데 고작 찾아본 기사가 '레드카펫 노출' '아이유, 은혁 사진 해명' 따위다. '공부 오타쿠' 공자는 '종일토록 밥을 먹지 않고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고 생각해 본 일이 있으나, 배우는 것만 못하였다'고 했다. 달리 공자님 말씀이 아닌 것 같다.

박태우 기자 widene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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