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옥의 시네마 패션 스토리] ③ 엘리자베스: 더 골든 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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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다양한 의상… 패션 정치 진수 선봬

영화 '엘리자베스: 더 골든 에이지'에서 여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열연한 엘리자베스 여왕.

박근혜 대통령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를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여성지도자라고 말했다. 그 여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가 '엘리자베스'(1998)와 '엘리자베스:더 골든 에이지'(2007)다.

두 영화는 모두 인도 출신의 세자르 카푸르 감독에 의해 제작됐고, 9년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두 영화의 엘리자베스 역은 호주 출신의 케이트 블란쳇에게 맡겨졌다.

영화는 16세기 말 신교도와 구교도의 대립이 극한에 이른 영국을 다루고 있다. 당시 최강국이던 스페인과의 전쟁, 권력 다툼과 종교적 반목, 그리고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성으로서의 여왕이 흥미롭게 묘사됐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 사실과 상관없이 필자를 놀라게 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화려한 궁중의상에 대한 영화적 표현이었다. 특히 여왕의 의상은 잠시도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메시지를 담는 데 성공했다.

오죽했으면 여왕 역을 맡은 여배우 블란쳇이 옷 한 벌을 갈아입고 분장을 마치는데 6시간이나 걸렸다고 하소연했을까.

사실 여왕의 의상은 영화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권위와 카리스마를 나타내고 싶을 땐 어김없이 붉은색 옷을 입고 등장했고, 여성성을 보여줄 때에는 푸른색의 선정적 옷을 입었다. 황금색은 호전미를 드러낼 때, 흰색은 여왕을 신성화시킬 때 활용됐다.

색깔뿐이 아니었다. 옷의 모양과 액세서리도 하나의 메시지였다. 권위를 드러내고 싶을 때에는 V자형 머리장식과 거대한 수레바퀴 형태의 러프옷깃을 선보였고, 강력한 카리스마와 권위를 나타내고 싶을 때에는 붉은색 로브로 치장했다.

또 월터 라일리를 사랑하는 마음을 드러낼 때에는 가슴 윗부분이 많이 노출된 의상에 망사 파플렛을 착용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장면은 성모 마리아 같은 종교적 아이콘으로 형상화시켰다.

영화에서 의상감독을 맡은 이는 알렉산드리아 번이었다. 그는 고증이 가장 중시되는 고전극에서, 고증에 매몰되지 않고, 오히려 이를 뛰어넘어 당대정신을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른바 르네상스 시대에 유행한 '확대복장'에 모더니즘을 접목시켜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여왕복식을 탄생시킨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여왕의 경우 앞이마가 유난히 넓었는데, 당시 귀족부인들은 이를 모방하기 위해 일부러 앞이마의 머리카락을 뽑았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이른바 패션 아이콘이었던 것이다.

영화가 제시한 지도자상은 타인에게 관대하되 자신에게는 누구보다 엄격한 군주의 마음이었다.

이는 영국 사립학교에서 지도자를 육성할 때 지침이 되고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와도 일맥상통한다.

엘리자베스 1세는 위기에 대처하는 지도자의 위엄을 가진 여성이었다. 그런 그를 닮고 싶어 하는 박 대통령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된다. 박 대통령의 '패션정치'가 더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명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 kojin123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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