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치·무늬오징어 낚시] 묵직한 입질에 '찍~' 고약한 먹물 신고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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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루어클럽 회원 강성무 씨가 제주 서귀포 섶섬 앞바다에서 새끼 무늬오징어를 에기로 걸었다. 제주 오징어낚시는 지금부터 시작되어 내년 2월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먼바다에서 집어등을 밝히고, 갈고리가 달린 가짜 미끼로 오징어를 잡아내는 장면을 TV에서 봤다. 그래서 오징어는 울릉도 근방에서만 잡히는 줄 알았다. 우리나라 오징어는 10여 종 정도 되는데 말려서 먹는 대표적인 오징어는 살오징어이고, 하얀 뼈가 있는 몽땅하게 생긴 오징어가 서해에서 주로 나는 갑오징어이다. 그런데 무늬오징어라는 놈이 있다고 했다. 맛이 좋기로 유명한 한치오징어도 있다고 했다. 제주도였다. 제주도 사람들은 한치를 오징어라 부르고, 무늬오징어를 무늬라 불렀다. 한국 연안 오징어 루어 낚시의 시발지라 할 수 있는 제주에 다녀왔다.


■오징어 원정대 발족

제주도는 오징어 연안 루어낚시가 처음 시작된 곳이라고 한다. 바다 환경이 일본과 비슷해 연안 두족류인 무늬오징어와 한치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제주에서는 용치놀래기를 잡아 산 채로 무늬오징어를 노리는 생미끼 낚시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하지만 가짜 미끼인 에기를 이용해서 오징어를 낚아내는 루어낚시가 10여 년 전 도입돼 동호회가 생기는 등 관련 낚시도 활발하다.

무늬오징어는 바다 환경 변화에 따라 몇 년 전부터 남해 연안에서도 잘 잡히지만, 한치와 동시에 노릴 수 있는 곳은 아직 제주도뿐. 원조지에서의 낚시를 체험해 보기로 했다.

현지에서 안내를 해 주기로 한 단체는 제주루어클럽. 포털 네이버에서 카페로 뭉친 이들은 제주 현지의 정회원만 60명인 대표적인 제주 루어낚시인 클럽 가운데 하나이다. 강승권(43·제주시) 회장이 모임을 이끌고 있다.

직전 회장을 지낸 전순희(48·제주시) 씨도 무늬오징어 베테랑 낚시인이다. 전 씨는 매년 열리는 제주 에깅대회를 주관해서 제주 구석구석의 오징어 포인트를 잘 알고 있다.

오징어 낚시는 거제앞바다에서 살오징어 배낚시밖에 해 본 적이 없어 초보인 기자는 오직 이들 현지인의 실력만 믿고 제주행 서경페리 호에 올랐다.

올 5월부터 다시 운항이 시작된 부산~제주 간 서경페리는 9천t 급의 여객선으로 속초에서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가던 배였단다. 본격 휴가철이 시작되기 전이지만 배낭여행족, 자전거여행족이 많이 있었다. 특히 자전거는 별도 운임 없이 무료로 갖고 갈 수 있어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제주도 하면 한치

낚시가방을 맨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물었다. "낚시 가시나 보죠? 뭐 잡으러 가십니까?" "예, 오징어 잡으러 갑니다." "예? 오징어요?" 사람들은 오징어를 낚시로 잡는다는 말을 생소하게 생각했다. 아직까지 이런 어종을 낚시로 낚는다는 사실은 낚시인들만 알고 있는 비밀인가 보다.

한치는 한치꼴뚜기가 본래 이름이다. 살오징어보다 부드럽고 맛이 훨씬 좋아 인기가 많다. 제주도에서는 한치라 하지 않고 그냥 '오징어'라고 불렀다. 특히 수산자원으로도 가치가 높아 제주 어선들은 제철 한치 잡기에 열중이다.

현지에서 들은 얘기로는 한치 조황이 좋지 않아 갈치로 바꿔 조업을 하는 배들도 많단다. 제주루어클럽 전순희 씨가 추천한 낚시 장소인 성산포 방파제에 도착했다. 바다에는 집어등을 밝힌 배들로 불야성을 이뤘다.

조황이 좋을 땐 방파제 안쪽에서도 한치가 잘 낚이지만, 최근에는 바깥쪽만 잘 된단다. 방파제의 길이는 어림잡아 100m는 돼 보였는데 끝까지 한치를 낚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조류가 좀 센편이었다. 어둠 속에서 안내를 하는 분들과 통성명을 할 새도 없이 낚시를 시작했다. 3.5g 에기를 추 삼아 달고, 그 위에 한치 전용 루어를 달았다. 물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렀다. 수심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상황. 루어를 던진 후 천천히 감는데 뭔가 툭 당겼다. 달려 온 것은 해초. 다시 루어를 던졌다. 또 해초 같은 입질이 왔다. 어라, 줄을 당기는 것이 아닌가. 릴링이 빨랐는데도 무늬오징어가 달라붙었다. 탐식성 좋은 오징어가 발밑에서 에기를 잡아챈 것이다. 하긴 오징어는 옛 이름이 오적어인데 까마귀를 잡아채서 그리 불렀단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포항 방파제에서 준수한 씨알의 월남 한치를 낚은 제주루어클럽 장진성 씨.
제주 현지 루어인 장진성(45·제주시) 씨가 큰 놈을 잡아 어둠 속에서 달려왔다. 대포동으로 불리는 월남 한치라고 했다. 폭발적인 조황은 아니었지만 성산포 방파제는 여전히 한치 메카였다.


■몬스터 급은 어디

밤 12시 30분까지 한치를 잡았다. 날물이 계속돼 방파제 테트라포드가 많이 드러나자 낚시를 하기가 불편해 철수했다. 육지 원정대 일원인 부경조구협회 김선관 회장은 야광 에기로 막판에 씨알 좋은 한치를 연거푸 3마리나 낚아냈다. 하지만 다음 날 무늬오징어 탐색을 해야겠다며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는 서귀포항에서 10분 거리인 위미항 '바다에 누워' 펜션. 제주 지인에게 숙소를 문자로 알려줬더니 캠핑을 하는 줄 알았단다. 몸은 피곤했지만 알람 소리에 잠이 깼다. 서귀포항에는 무한루어클럽 회원인 강성무(45·서귀포시 동흥동) 씨가 나와 있었다. 강 씨는 미르마루라는 닉네임으로 더 잘 알려진 제주 지역 전문 루어인이었다.

강 씨 지인의 작은 보트 '라바라바 호'를 타고 서귀포 앞바다에 있는 섶섬으로 갔다.

무늬오징어는 화려한 무늬가 수시로 변색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일본에서는 미즈이까(물오징어)라고 하기도 하고, 지역에 따라 아오리이까(아오리오징어)라고도 부른단다. 연안에만 살기에 어부들이 잘 잡을 수 없다. 오직 낚시를 통해서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얼마나 식욕이 왕성한지 큰 놈은 5㎏이 넘는다고 한다. 이른바 몬스터 급이다.

내심 기대를 하며 에기를 흘렸다. 천천히 미끼를 들었다놨다 하는데 묵직한 입질이 왔다. 500g 정도의 '무늬'였다. 그런데 기분 좋게 올린 놈을 물간에 넣으려는 순간, 찍~하고 먹물을 내뿜었다. 얼굴과 뱃전에 먹물이 온통 퍼졌다. 첫 무늬 신고식 치고는 고약했다.

섶섬은 제주 특유의 햇살을 받아 눈부신 녹색이었고, 섶섬 바다는 에메랄드빛이었다. 해초가 훤히 보이는 곳에서 무늬가 웅크리고 있다가 에기를 덥썩 당겼다. 이후에 잡히는 놈들은 씨알이 다소 작았다. 몬스터급은 만나지 못했지만, 많은 먹물을 가진 무늬를 10여 마리 낚을 수 있었다. 햇살이 너무 뜨거워 오전 9시에 철수했다.

강 씨가 말했다. "무늬는 지금부터 본격 시즌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이 놈들이 성장하니까요." 몬스터를 만나려면 또 한번 제주도에 가야겠다.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TIP

바닥층


어떤 수심에나 바닥층이 있다. 수심 10m라고 하면 바닥층은 9.5∼10m가 된다. 바닥층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늬오징어의 습성 때문이다. 무늬오징어는 해초가 많은 지역에 산란을 하고 일정 정도 알자리를 지킨다. 제 몸 크기의 다른 물고기도 잡아먹는 등 매우 공격적이지만, 자신도 자기보다 더 큰 물고기의 먹이이기 때문에 낮에는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다. 그래서 낮에 에깅 낚시를 할 때는 무조건 바닥층을 찍고 시작해야 한다. 아무리 숨어 있는 무늬오징어라도 머리 위에서 먹잇감이 '날 잡아잡숴' 하고 유혹하는데 촉수를 뻗지 않을 놈이 없다. 무늬오징어 낚시는 그래서 부지런히 오징어의 머리맡을 찾아다녀야 한다.

하지만 밤에는 다르다. 적극적으로 사냥에 나서기 때문에 중층에서도 물고, 물에 떨어지는 에기에도 달라붙는다. 밤낚시가 낮보다 다소 조황이 좋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이때도 기본은 바닥층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바닥에 미끼가 떨어지면 그때부터 릴을 감아 대를 세웠다 내렸다 하는 동작을 해서 오징어를 유혹한다. 제아무리 깊은 바다라도 바닥은 있고, 이때부터는 기분 좋은 상승만 남는다. 내 삶이 지금 밑바닥에 있다고 자책하지 말자. 이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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