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칼럼 '판'] 연주가의 한 단면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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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은 해금 연주가

굵고 무겁게 움직이는 음, 꾹꾹 짓이겨 내는 음, 빠르고 정신없이 흔들리는 음,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낚아 올렸다가 땅 깊은 곳으로 떨어지는 음, 나뭇잎이 흔들리듯, 호수의 수면에 파동이 일듯 잔잔한 음…. 현에 손을 얹고, 활을 그어 음을 만들다 보면 가끔 세상을 유랑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의 필자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은 해금이란 악기이다. 해금을 매개 삼아 많은 것을 조우하고 꿈꾼다. 그리고 그 상상들을 다시 현실로 이루어지도록 구체화하는 과정과 그 결과물은 실로 대단한 즐거움을 준다.

연주가와 예술가는 다른 개념으로, 예술이란 개념이 생기기 전부터 음악과 이에 따른 연주가의 영역이 존재해 왔다. 배부른 시대가 도래하여 새삼스럽게 행하는 짓이 아닌 것이다.

연주가는 나름 기술직 노동자이다. 그런데 현물로 생산해 내는 것은 전혀 없다. 먹고사는 데 필요 없는 10분간의 어떤 이상적인 리듬과 음의 구현을 위해 10년 이상을 바친다.

모든 연주가가 음악의 기능에 목적을 두고 연주하지는 않으며, 모두에게 사상, 철학, 작가정신 등 의식적인 면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놀랍도록 단순하다. 그런데 이와는 별개로 그들의 소리가, 그러니까 음악이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것을 떠올리게 한다.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고, 무엇이 이를 가능케 할까. 음, 답은 저마다 제각각이겠지.

그럼에도 필자가 발견한 '모든 연주가'의 공통점은 무대 위의 화려함만을 좇는 것이 아닌 거울 앞의 자신과 마주 앉아 악기와 대화를 나누며 수련을 쌓는-때론 지루하고 답답한-시간까지도 '순수하게 즐길 줄 안다'는 점이다.

악기를 다루기 위해서는 여타의 예술 분야보다 더 기계적 훈련이 필요하다. 음악적 재능 위에 기술을 습득하고, 다시 예술적 감수성을 더하고, 다시 기술을 섬세하게 더해간다. 그 과정의 반복을 반복함으로써 결국 무형의 소리로 환상의 세계를 보여 주는 사람이 바로 연주가이다. 감히 단언컨대 악기를 다룬다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위대한 일 중 하나이다.

아, 오늘도 음과 음 사이에서, 악보와 악기와 자아의 괴리 속에서 고민하는 사랑스러운 영혼들에게 응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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