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와 마니아 사이] 날 새고 해가 중천? '문명'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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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빠져들면 헤어나올 수 없어 '악마의 게임'으로 불리는 '문명5'에 등장하는 대한민국의 지도자 세종대왕.

대학 신입생 시절 금요일 오후만 되면 콜라와 컵라면, 과자 등 비상식량(?)을 챙겨들고 컴퓨터 앞에 앉는 게 일과였다. 턴제 전략시뮬레이션인 '삼국지2'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서였다.

조악한 그래픽에 8비트 사운드, 요즘 웬만한 게임의 1만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용량의 게임이었지만, 삼국지 속 군주가 되어 중원을 통일하는 재미에 푹 빠져 이틀 밤을 꼬박 새기 일쑤였다. 웬만큼 실력이 붙자 나중에는 '장로', '이각' 같은 '잉여 군주'들로도 천하를 발 아래 두었다.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이 사회문제화하면서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같은 극약 처방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정말로 중독성 높은 게임은 따로 있다. '타임머신', '과부제조기'로 불리며 '세계 3대 악마 게임'으로 꼽히는 '풋볼매니저',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문명'이 그것이다. 이들 게임은 컴퓨터를 상대로 하는 싱글플레이 방식이어서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로 막을 수도 없다.

턴제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은 바둑을 두는 것처럼 내 차례에 건물을 짓고, 군대를 양성하는 등 명령을 내리고 상대방(컴퓨터)에게 턴을 넘기는 식으로 진행된다. '스타크래프트'나 '리그 오브 레전드'처럼 재빠른 손놀림이 필요하지 않고, 느긋하게 한수 한수 진행할 수 있어 아저씨 게이머들도 쉽게 즐길 수 있다.

얼핏 지루해 보이지만 한번 플레이해보면 그 마력에서 좀처럼 헤어날 수 없다. 특히 '문명하셨습니다(죽은 것을 뜻하는 '운명하셨습니다'와 게임 시리즈인 '문명'의 합성어로, 문명에 빠진 사람들이 집에만 쳐박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빗댄 말)'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낸 문명 시리즈는 그 심오한 게임성과 극악의 중독성으로 이름 높다.

게임계의 스티븐 스필버그 쯤 되는 시드 마이어가 개발한 이 게임은 1991년 첫 시리즈가 발매된 이후 현재 5편까지 나와 있다. 간디가 이끄는 인도나 나폴레옹의 프랑스, 세종대왕의 대한민국 등 20여 개의 문명 가운데 하나를 골라 기원전 4000년 석기시대에서 시작해 21세기 우주시대까지 도시를 건설하고 국가를 성장시키는 내용이 주 골자다. 기술을 발전시켜 가장 먼저 우주로 진출하거나, 군사력을 키워 세계를 정복하든지, 유엔을 설립해 세계 지도자가 되는 방식으로 경쟁 문명을 압도하는 것이 목표다.

경제 환경 과학 문화 자원 등 국가 관리는 물론, 전제군주제 자유주의 근본주의 등 적절한 정치 체제와 종교의 선택, 강대국의 명분은 세워주고 실리는 챙기는 외교술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문자 발명, 르네상스 운동, 신항로 개척, 노예 해방, 세계 대전, 인터넷 등장 등 게임 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등장하는 이벤트들을 따라가다 보면 역사와 지리, 정치 공부가 절로 된다.

그와 함께 저녁을 먹고 게임을 시작한 뒤 문득 정신을 차리니 해가 중천에 떠 있다거나, 체감상 1시간이 지났는데 실제로는 4시간이 지나버리는 '타임 슬립'을 경험하게 된다.

'문명5'의 새 확장팩 '브레이브 뉴 월드'가 출시됐다. 갑자기 주위 친구들이 안보인다면? 십중 팔구는 '문명'하셨을 거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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