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험에 산다 - 꿈을 좇아 떠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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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망이 두려움을 이기는 순간, 당신의 모험은 시작된 것입니다

남극의 유빙 위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는 바다표범. 신발끈여행사 제공

직업 탐험가가 아닌 현대인들의 모험은 부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굳은 일상을 흔들고 더 의미 있는 일상을 개척하기 위한 지극히 사적인 여정이 되었다. 지구의 꼭대기나 땅의 끝이 아니라도 좋다. 목표 달성 여부도 중요하지 않다. 모험에 대한 열망이 위험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모험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기 시작했다면, 당신의 모험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인간은 왜 모험에 매혹되는가

"모험은 단지 나쁜 계획일 뿐이다."

남극점과 북극점을 최초로 밟은 로알 아문센의 말이다. 아문센으로 하여금 '나쁜 계획'에 도전하게 만든 것이 탐험가의 야망이었다면, 송동환 씨의 사막 레이스 도전은 울산에서 의무소방대원으로 복무할 때 겪은 죽음 때문이었다.

"하루에도 네다섯 명이 사고로 죽거나 자살하는 걸 보면서, 내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면 죽기 전에 세상의 끝 사막에 한 번은 가 보고 싶었어요." 그는 그 꿈을 위해 금쪽 같은 휴가 때마다 국내 마라톤 대회에 출전했고, 꼬박 48시간을 달려 7일간 250㎞를 달리는 모험에 도전했다.

수산물 유통회사에서 일하는 송건호(37) 씨가 보다 더 깊은 바다를 꿈꾸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한 번 체험해 보려고 다이빙을 시작했다가 5년 전, 경남 홍도 앞에서 황홀한 해저 풍경을 만났다. "자리돔떼가 눈앞으로 쏟아지는데, 그 속을 마음껏 날아다닌다고 상상해보세요." 2010년, 제주도의 문섬 새끼섬을 돌면서 보았던 연산호 군락의 절경도 잊지 못한다. "그 광경을 한 번 맛보고 나면, 누구나 좀 더 깊이, 좀 더 오래 바닷속을 느끼고 싶을 거예요." 그 뒤 그는 업무 시간 이외의 시간을 모조리 바다에 쏟아부었다. "퇴근 뒤 낮보다 더 화려한 밤바다에 다녀오면 하루의 스트레스가 다 풀립니다."

제주도의 깊은 바닷속을 유영하고 있는 스쿠버다이버.  태종대스쿠버 제공물론 바다에 오래 머물기 위해서는 감수해야 할 것들이 많다. 레크리에이션 다이빙의 경계를 넘어 수심 40m 이하로 가려면 테크니컬 다이빙을 해야 하는데, 이와 관련된 교육을 받고 장비를 모두 갖추려면 1천만 원 이상의 돈이 든다. 송 씨는 '사부'인 태종대스쿠버 이재호(36) 강사의 도움으로 이 단계를 차근차근 밟고 있다. 지금 송 씨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내년 3월 필리핀 아포섬 바다에서 만날 열대 바다생물과 난파선 잔해들이다.


■탐험가들의 모험과 당신의 모험

모험을 위해서는 체력 관리와 경비, 그리고 기회가 오면 곧바로 떠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지난 2009년 남극 여행을 했던 내과의사 김미선(50) 씨의 이야기다.

"갑자기 한 달 휴가가 생겼는데, 그 다음 날인 화요일에 남극여행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돈이 얼마가 되든, 이번 달에 남극에 가게 해 달라고 졸랐지요. 수요일 오후에 그해 남극의 여름 시즌 마지막 크루즈 상품에 한 자리를 확보했다는 연락을 받았고, 목요일 서울에 가서 그 주 일요일 비행기를 탔어요. 늘 마음에 품고 있었으니까 가능했지요.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 보고 싶었거든요."

양산등산교실 선임강사이자 경주의 가스회사에서 근무하는 김경한(43) 씨는 실제로 다른 원정 등반대 훈련에도 참가했지만 두 달간의 일정 앞에 번번이 돌아서야 했다. "한라산 동계훈련만 가도 두세 달 전부터 휴가 일정을 조율하느라 진을 빼니까요. 가족들도 위험하다고 걱정하고요."

부산에서 컨테이너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민평식(45) 씨도 남들의 등반 성공 소식을 들을 때마다 '저기 내가 있어야 하는데' 하고 생각한다. "3년 안에는 반드시 갈 겁니다." 양산등산교실 이상배 학감은 "우리 강사들 수준이라면 기후 조건이 괜찮다고 볼 때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미선 씨와 양산등산교실의 암벽 등반가들이 남극와 알프스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은 그 길을 먼저 걸어간 탐험가들 덕분이다. 물론 한 번의 성공을 위해 무수한 실패들이 있었다. 간발의 차이로 남극점 최초 도달의 영예를 아문센에게 돌리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더 쓸 수 없을 것 같다"라는 문장을 끝으로 끝내 돌아오지 못한 로버트 팔콘 스콧의 일기는 언제 읽어도 가슴을 울린다. 

갈라파고스는 이구아나를 비롯한 파충류의 천국이다. 이창우 씨 제공에베레스트를 마지막으로 지구상의 극점들이 모두 정복되고, 고전적인 의미의 모험과 탐험의 시대는 끝이 났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탐험은 인간의 맨몸이 아니라 장비의 문제가 되었다. 스폰서가 좌우하는 등반 경쟁과 돈만 주면 누구든 가능한 상업 등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젊은 박물학자 찰스 다윈이 1835년 생명의 비밀을 탐험한 갈라파고스 제도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관광객들의 벤치를 차지하고 있는 갈라파고스의 바다사자들. 이창우 씨 제공부산외대 스페인어과 3학년 이창우(24) 씨는 동기 신바람(23) 씨와 지난 1월 22일 갈라파고스 제도에 도착했다. '지속 가능한 생태 관광'을 주제로 이 대학 중남미지역원의 중남미체험단에 선발돼 떠난 여행이었다. "선착장 벤치는 바다사자들 차지였고, 어시장에서는 어부들이 펠리컨에게 생선을 던져 줬어요. 야생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거죠."

갈라파고스 코끼리거북을 멸종 위기에서 구한 찰스 다윈 연구소의 활동과 파란발부비새와 바다이구아나가 나란히 앉아 있는 광경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생태 관광은 지역 주민의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대형 크루즈 선사의 초호화 상품은 지역 주민에게 아무런 이익도 돌려주지 않거든요." 그는 오늘의 갈라파고스는 자연 앞에 인간의 겸허함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알려준 탐험지였다고 말했다.


■폴레 폴레, 그리고 굿 럭

트레킹 전문 여행사 뚜벅뚜벅트레킹의 김영철 대표는 트레커들의 마지막 로망인 킬리만자로산의 5,895m 정상 우후루에 도합 여덟 번을 갔다. 아마추어도 특별한 장비 없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유일한 대륙 최고봉이지만, 정상 등정 성공률이 15%에 불과한 험준한 산이다. "4박 5일간 하루에 4~14시간씩 걸어야 합니다. 가뿐하게 출발했다가 셋째 날부터 고산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해 넷째 날에는 새벽 2시 반에 일정을 시작합니다. 랜턴에 의지해 급경사면을 오르다보면 길만스포인트에서 해가 뜹니다. 마지막 고도 200m 구간을 올라 정상에 오르는 데 2시간이 또 걸리지요."

김 대표는 40대 중후반부터 최고령 72세 노인까지 인솔했다. 그 자신이 처음 정상에 올라 엉엉 울었고, 어느 대기업 중역들은 서로 얼굴을 보며 "미쳤다"고들 했다. 정상에서 가이드와 포터들은 '하쿠나마타타(문제 없어)'라는 축가를 불러준다. 그리고 하산할 때, 올라오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을 이제는 당신이 사람들에게 들려줄 차례다. "폴레 폴레(천천히 천천히)"와 "굿 럭(행운을 빕니다)". 

펭귄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 남극 해변에 관광객들이 탄 보트가 다가가고 있다. 김미선 씨 제공아마추어들이 내 두 다리로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는 것, 같은 모험에 도전한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염려와 응원을 보내는 것, 꼭 정상에 오르지 못해도 산에 오르는 과정을 즐기는 것. 사람들과 더불어 무엇보다도 안전하게 돌아와야 하는 것. 김 대표는 오늘날의 모험을 이렇게 정리했다. 오는 8월 15일 출발하는 킬리만자로행 모험에는 아직 자리가 남아 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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