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최악 도시' 부산…공공보건의료 바꾸자] 1부) 통계로 본 부산의 건강 수준 ③ 부산, 피할 수 있는 사망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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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가능한 암·심장질환 사망률 높아…공공보건의료 시스템 바꿔야

부산 동구 수정동 산복도로 주택가에 살고 있는 A 씨. 60대 초반인 그는 2층짜리 낡은 주택의 방 한 칸을 월세로 얻어 혼자 살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건설노동자로 30여 년을 일해왔지만 변변치 않은 소득 탓에 자주 가정불화를 겪어왔고, 아내와 자식들은 10여 년 전부터 소식이 끊겼다.

A 씨는 혼자 사는 노인, 이른바 독거노인이다. 20대부터 가까이 해온 술과 담배는 그의 건강을 지속적으로 악화시켜 왔다. 살기에 바빠 건강검진은 1년 전 방문복지사의 권유로 받은 게 전부다.

'피할 수 있는 사망' 수치
낮을수록 보건 의료 효과적
부산은 조기발견·예방 안 돼
7대 대도시 중 가장 높아
암 발생 평균,사망률 최고
관리·치료 노력 부족 드러나
7대 대도시 평균만 되면
부산서 매년 1천154명 살아

검진 결과, 고혈압은 심각한 상태여서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고, 약간의 영양실조 증세도 있었다. 이후 A 씨는 한 달에 한번 꼴로 보건소에 가서 혈압약을 처방받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A 씨는 잠을 자다가 새벽에 너무 가슴이 답답해 고통 속에서 잠을 깼다. 몸을 가누기 힘들었지만 겨우 전화기로 119 신고를 하고 구급차를 기다렸다.

얼마 후 구급대원이 A 씨 집 문을 두드렸다. 어지러움과 통증을 참아내고 있던 A 씨는 구급차에 실려갔지만, 응급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숨을 거뒀다.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A 씨의 고혈압은 동맥경화로 심화됐고, 혈전이 다량 발생하면서 관상동맥을 막아 심근경색을 일으킨 것이다. 산복도로에 위치한 A 씨 집까지 구급차량이 접근하지 못해 구조에 시간이 지체된 것도 사망원인이 됐다.

허무하고 안타까운 A 씨의 죽음은 가상의 사례다. 하지만 어쩌면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일 수도 있다.

A 씨 같은 사망을 학계에서는 '피할 수 있는 사망'이라고 정의한다.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보건의료서비스를 받을 경우,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사망. 그것이 '피할 수 있는 사망'이다.

'피할 수 있는 사망' 지표는 유럽과 미국 등에서 국가별 또는 지역별 보건의료서비스가 건강에 기여하는 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심뇌혈관질환이나 위암, 대장암, 유방암처럼 대표적인 사망원인 질환이지만 적기에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면 치료할 수 있는 질환에 걸려 75세 이전에 사망한 경우, 그리고 금연이나 절주, 교통안전 조치 등과 같은 예방활동을 통해 사망을 막을 수 있는 경우를 모두 더한 복합지표를 인구 10만 명당 사망자 수로 표시한다.


'피할 수 있는 사망'의 수치가 낮을수록 보건의료체계가 효과적으로 운용돼 시민 건강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본보와 사회복지연대 보건의료특별위원회는 부산의 '피할 수 있는 사망' 지표 분석에 나섰다.

지난 20여 년 간 '최악의 건강지표'를 유지하고 있는 부산의 경우,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받았을 때 시민들의 사망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이번 분석에는 1997~2011년 15년치 통계청 사망자료와 사망원인 통계, 국립암센터 중앙암등록본부가 2010년 발표한 암등록 자료, 병원기반 심뇌혈관질환 등록감시체계 보고서 등이 활용됐다.

분석 결과, 부산은 전체적으로 '피할 수 있는 사망' 수치가 높았으며, 우리나라 3대 사망원인에 속하는 암과 심뇌혈관질환의 '피할 수 있는 사망' 수치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전체 암 발생률과 위암·대장암·유방암 등 치료가능한 암의 발생률을 보면, 부산은 각각 인구 10만 명 당 294명과 112.6명으로 모두 7대 대도시 평균 수준(316·111)을 보였다.

하지만 암 사망률은 10만 명 당 127명으로 울산(128)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예방이나 치료로 피할 수 있는 암의 사망률도 부산은 10만 명 당 37.7명으로 7대 대도시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암 발생률은 비슷하지만 암 사망률이 최고치라는 것은 암에 대한 관리나 치료 노력이 부족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부산은 허혈성 심장질환과 뇌졸중을 포함한 심뇌혈관질환 통계 분석에서도 이들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타 대도시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특히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은 부산이 10만 명 당 18.9명으로 7대 대도시 중 가장 지표가 좋았던 광주(5.2)에 비해 3.7배나 사망이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허혈성 심장질환은 심뇌혈관질환 중에서도 심장에 혈액을 공급해주는 관상동맥이 좁아지거나 막혀 충분한 혈액공급이 이뤄지지 못할 때 생기는 협심증, 심근경색증, 심장돌연사 같은 질환을 말한다.

더욱이 심뇌혈관질환은 응급의료 서비스가 신속하게 이뤄지고, 환자가 필요한 치료를 받아 잘 관리하면 80% 가까이 사망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공공 보건의료정책의 변화가 절실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렇다면 부산시가 효과적인 보건의료정책을 펼쳐 부산의 '피할 수 있는 사망'을 줄일 수 있다면 어떨까.

부산의 '피할 수 있는 사망'이 7대 대도시 평균 수준으로 줄어든다면, 매년 1천154명의 안타까운 죽음을 되살릴 수 있게 된다. 이는 부산지역 5년 평균 교통사고 사망자 수에 육박하는 규모다. 심뇌혈관질환으로 인한 경우는 매년 590명씩, 치료 가능한 암으로 인한 경우는 매년 93명씩 허망한 죽음을 맞지 않아도 된다.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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