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원의 시네아트] 코스모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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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가진 줄 알았는데…

코스모폴리스. 더블앤조이 픽쳐스 제공

두 종류의 지식이 있다. 한 쪽에선 지구 반대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세계 경제의 흐름과 주식시장의 현황을 꿰뚫으며 손바닥 위에 모이는 데이터들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만큼의 정보를 모은다. 땅에 발을 디디고 있지 않은 정보의 세상 위에서 그는 신이다.

반면 다른 한 종류의 앎에 있어서 그는 가난하기 그지없다. 아내는 그의 눈동자 색깔에 새삼 신기해하고 함께 일하는 파트너의 서로의 나이도 모르며 섹스 파트너는 그의 결혼 사실을 TV를 통해 접한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를 모르고 그는 자신의 마음도 모른다. 그는 천문학적인 돈을 컨트롤하고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무너트리지만 그에게 허락된 공간은 5평 남짓한 리무진이 전부다.

천재 자산전문가의 몰락 통해
자본주의의 허망함 그려
로버트 패틴슨 연기 압권


직접 체험과 간접 체험 사이의 메울 수 없는 간극. 절름발이나 다름없는 인생. 돈 드릴로는 10년 전 소설 '코스모폴리스'를 통해 오늘의 현실을 예언했고,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영화 '코스모폴리스'로 자본주의의 허망함을 스크린 위에 입혀 놓았다.

'코스모폴리스'는 천재적인 자산전문가 에릭 패커(로버트 패틴슨)가 몰락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속 설정과 전개는 완전한 픽션이지만 놀라울 만큼의 기시감을 안기는 것은 돈 드릴로가 예상한 10년 전의 모습이 오늘날 월스트리트의 몰락과 놀랍도록 닮아 있기 때문이다. 돈이 돈에 투자를 하고 자본주의라는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는 세상. 영화는 그 정점에 앉아 있던 젊은 사업가를 통해 돈의 마력, 허무, 죽음을 거리 곳곳에 흩뿌려 놓는다.

중국 위안화에 대규모 베팅을 한 에릭은 결국 모든 걸 잃고 말지만 결말에 그려지는 그의 파국보다 섬뜩한 건 영화 내내 리무진을 타고 다니며 내뱉는 그의 말, 리무진이라는 그의 성을 방문한 이들이 쏟아낸 말들이다. 비단으로 뒤를 닦는 느낌이 들 만큼 위선적이면서도 우아한, 허무가 그곳에 있다.

'폭력의 역사'의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밀도 높은 긴장을 화면에 녹여 낸다. 죽고 나서 가질 수 있는 것은 몸을 눕힐 한 평의 땅뿐이라는 톨스토이 소설 속 우화처럼 협소한 장소로 제한된 화면은 리무진이라는 공간 자체에 성격을 부여한다. 이는 리무진 창밖 거리의 황폐한 풍경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마치 에릭 파커가 속한 세계가 현실이 아닌 듯한 인상마저 남기는 것이다.

한편 간접 체험 위를 부유하듯 살고 있는 에릭 파커의 삶 그 자체를 묘사한 미장센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그 속살을 채우는 것은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위험한 칼을 쥔 아이 같은 그의 창백하고 비현실적인 표정은 이 영화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버트 패틴슨은 밀납 인형처럼 우두커니 앉아 있거나 소중한 것을 잃은 아이처럼 그 자리를 서성임으로써 이 영화를 완성시켰다. 흥미로운 이야기, 창의적인 연출, 적절한 캐스팅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27일 개봉.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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