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다-대안적 삶을 꿈꾸다] ⑭ 앉은뱅이 토종 우리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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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앉을 뻔한 토종 밀 산업, '앉은뱅이밀'로 일으켜 세운다

'수입 밀 99%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앉은뱅이밀처럼 토종 우리 밀을 지켜내고자 애쓰는 진주 금곡정미소 백관실 대표 같은 사람이 있어서 희망적이다. 어느 네티즌이 지적했듯, "밥상을 빼앗기고는 생명을 이야기 할 수 없다. 지금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아니고 빼앗긴 밥상에도 생명은 있는가"를 물어야 할 때다. 사진은 정미소 뒷편 밀밭에서 포즈를 취한 백 대표.

"부산 덕분에 앉은뱅이 토종 우리 밀이 살았습니다. 그건 분명합니다."

부산 덕분에 '앉은뱅이밀'이 살았다니. 처음엔 인사치레거니 싶었지만 그 자초지종이 궁금했다.

"그러니까 1984년 정부의 밀 수매가 중단된 뒤 많은 농민들이 밀 농사를 포기했을 때 부산 분들이 우리 앉은뱅이밀을 사 주지 않았더라면 저도 포기했을지 모릅니다. 택배가 보급되기 전, 90년대 말까지 앉은뱅이밀의 90% 이상을 소비해 준 곳이 부산이니까요. 그분들 덕분에 판로가 유지되었고,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빌어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경남 진주시 금곡면 두문리에서 금곡정미소를 3대째 운영하며 앉은뱅이밀 생산·보급에 앞장서고 있는 백관실(63·금곡정미소 대표·금곡우리밀작목반 회장) 씨. 지난 11일 정미소를 찾아간 기자를 만나자마자 백 씨가 꺼낸 이야기는 뜻밖에도 부산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였다.

경남 진주 금곡정미소 백관실 씨
우리 밀 지키기 3대째 가업 이어

1984년 정부 밀 수매 중단 위기 땐
부산에서 소비해 준 덕택에 유지

"사 준 사람이 있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몇 번이고 강조한 백 씨의 말은 부산 사람에 대한 고마움으로도 읽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너진 우리 밀 생산기반이 겹쳐져 안타깝기도 했다.

즉, 60년대 해외의 값싼 밀 수입이, 급기야는 1982년 밀 수입 자유화를 가져왔고, 1984년 국산 밀 수매 폐지로 이어지면서 국내 밀 생산 기반은 급격히 무너지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은 쌀에 이어 한국인이 두 번째로 많이 먹는 곡물. 농림축산식품부 '2011년도 양곡 수급 상황'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당 연간 밀 소비량은 35kg. 하지만 밀의 곡물자급률은 1.0%, 식량자급률은 1.9%에 그치고 있다. 또한 2011년 기준으로 한국은 452만2천 톤에 이르는 밀을 수입했고 국내에서 직접 생산한 밀은 4만4천 톤에 그쳤다. 수입산이 국내산의 100배 이상을 차지한 셈이다. 게다가 최근 미국 오리건주에서 발견된 승인되지 않은 유전자변형(GM) 밀의 발견은 수입 밀의 안전성 논란까지 부채질하고 있다. 덕분에 토종 우리 밀 '앉은뱅이밀'에 대한 관심은 한층 높아지고 있다.



-요즘 인기를 실감하시겠네요.

"앉은뱅이밀이 뜨긴 뜬 것 같습니다. 저를 찾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졌어요. 내일도 전북 익산에서 온다고 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 방송에서 전화가 와요."

-관심이 높아진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진 탓이겠죠. 지난해 토종연구가 안완식 박사도 이곳을 다녀갔지만 학계에서도 우리 앉은뱅이밀 성분(표 참조)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어요. 일단 앉은뱅이밀은 단백질의 주성분인 글루텐 함량이 낮아요. 알려졌다시피 글루텐은 아토피와 소화불량 등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되고 있잖아요. 또 앉은뱅이밀은 다른 밀에 비해 당류 함량도 높은 편이에요. 칼로리는 다른 것보다 낮고요."

-한마디로 우리 몸에 더 좋다는 거네요. 맛은 어떤가요?

"앉은뱅이밀을 먹어 본 사람은 계속 이것만 찾아요. 수입 밀이나 개량종 우리 밀에 비해 고소하고 부드러워서 소화가 잘 되는 장점이 있거든요. 전이나 칼국수, 수제비처럼 당장 식탁에 올라가는 건 앉은뱅이밀만 한 것이 없을 겁니다."

-토종 우리 밀엔 앉은뱅이밀만 있나요?

"앉은뱅이밀과 호밀이 있어요. 그리고 '우리밀'이란 이름으로 재배되는 개량종 금강밀이 있고요. 금강밀만 해도 국내에서 재배한다는 맥락에서 우리 밀인 것이지 토종 밀은 아니에요. 하지만 밀 농사 자체를 워낙 찾아보기 힘드니까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만으로도 귀한 것이죠. 앉은뱅이밀은 오랜 세월 우리 기후풍토에 잘 적응해 왔기 때문에 키도 작고 병충해에도 강해서 키우기가 좋아요."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앉은뱅이밀은 왜 전국적인 보급이 안 됐을까? 그리고 백 씨는 어떻게 지금까지 앉은뱅이밀 종자를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와 마주앉았다.

-6월 이맘때면 밀 타작을 할 때 아닌가요?

"앉은뱅이밀은 통상 10월 25일부터 11월 5일까지 열흘 동안 심고, 다음해 6월 10~15일께 수확을 하는데 며칠 비가 예고돼 계속 미뤄지고 있어요. 요즘은 기계가 좋아서 타작하는 데도 이삼 일밖에 안 걸려요."

금곡정미소 제분기에 들어가는 맷돌부품을 설명 중인 백 대표. 이 맷돌부품도 백 대표 할아버지가 직접 고안했다.
-이름이 왜 정미소죠? 제분소가 아니라.

"벼도 찧고, 보리도 찧고, 밀도 빻고, 국수도 뽑고, 떡도 하고 그러니까요. 현재 6대의 제분기를 가동 중인데 한 대는 100년쯤 되었을 겁니다. 맷돌부품은 할아버지께서 직접 고안하신 걸 주문, 제작해서 쓰고 있어요."

-언제부터 이 일을 하게 되셨죠?

"우리 집안에서 정미소를 운영하기는 3대째입니다. 저는 열여섯 살부터 배우기 시작했고요. 아버지께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하시게 되면서 저한테 완전히 물려주셨어요. 당시만 해도 저는 공부도 더 하고 싶고, 먼지 둘러쓰기도 싫었는데 할아버지께서 장손인 제가 고향에서 선산도 지키고 가업을 이어야 된다고 생각하신 거죠. 당시 정미소를 운영했으면 상당한 부자였는데도 학비를 몇 달치씩이나 안 주셨어요. 그 덕분에 중학교만 졸업했고, 앉은뱅이밀은 지킬 수 있었네요."

수입 밀보다 고소하고 소화 잘돼
전화·인터넷 주문 통해서만 판매

지난달 22일 정미소 일부 개조해
맷돌로 빻고 반죽하는 '체험관' 개관


-정미소 일만 해도 바쁠 텐데 밀 농사는 어떻게 짓나요?

"우리 집에서 짓는 양은 20톤밖에 안 돼요. 나머지는 제가 회장으로 있는 '금곡우리밀작목반' 20가구가 30㏊(헥타르), 120톤 정도 하고 있어요. 올해는 재배량을 늘려서 250톤까지 할 계획입니다."

-그렇게 많은 양을 한꺼번에 수매하면 보관할 곳은 있습니까?

"2010년도 정부 보조 사업으로 사일로 2개를 설치했어요. 한 통에 100톤 정도 저장되니까 200톤까지는 가능해요. 앉은뱅이밀은 건조율도 항시 9% 정도에 맞추는데 일반 밀 12%보다는 좀더 말려요. 밀은 제대로 안 말리면 대번에 벌레가 생기거든요. 사일로가 없었을 땐 가마니에 차곡차곡 넣어서 창고에 재어놨지요."

-앉은뱅이밀은 모두 유기농 재배입니까?

"기본적으로 우리 밀은 농약 쓸 일이 별로 없어요. 가을에 기계로 파종해서 덮으면 거기서 씨앗이 올라오고 겨울잠을 잡니다. 3월이 돼 웃비료 한 번만 주면 끝이에요. 농사짓기 아주 편한 게 밀이라니까요."

-하지만 수입 밀은 다르잖아요.

"GMO(유전자변형농산물) 때문이죠. 농사를 대량으로 짓기 위해서 무경운 재배, 갈지 않고 비행기로 씨를 뿌리잖아요. 그러면 풀도 나고 밀도 납니다. 어느 정도 컸을 때 제초제를 치는데 밀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다 죽어야 하니까 제초제를 이겨내는 유전자조작이 생겨난 겁니다. 이게 엄청 몸에 나쁜 거죠. 거기다 수입 밀은 이동 기간을 위해서 방부제 같은 약품을 곡식에 곧바로 살포한다는 거죠.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국내 밀 가공 땐 많이 깎아내야 하고요. 영양분은 껍질에 상당 부분 있는데 말입니다. 그에 비해 앉은뱅이밀은 연질밀이어서 통밀가루도 할 수 있는 장점도 있어요."

-앉은뱅이밀 종자 보전이 어렵진 않았습니까?

"계묘년(1963년) 보리 흉년 때, 아마도 우리 어머니(김현악·88)가 아니었으면 대가 끊겼을지도 몰라요. 실제 보리 종자는 그때 다 썩혔으니까요. 보리가 익어서 타작을 해야 하는데 한 달 내내 비가 온 겁니다. 그나마 밀은 늦게 둬도 되어서 기다리다가 어느 날 비가 오는 데도 불구하고 베어서 집 대청마루에서 방문 다 열어놓고 발로 탈곡기를 돌려가며 훑고 사람이 자는 온돌방에 며칠간 군불을 때서 두 말을 말려낸 겁니다."

-육종(신품종이나 품종 개량)을 시도하진 않았고요?

"조상대대로 내려온 씨앗 그대로에요. 민간에선 드물지만 2㏊ 정도의 채종포(종자를 채취할 목적으로 설치한 밭)도 별도로 계약, 운영하고 있어요. 초기에 삐죽 솟아 나오는 밀이나 변종은 잘라버리고 순수 앉은뱅이밀만 키우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신경을 더 써야 하니까 일반 수매 밀보다 돈 만 원씩 더 쳐주기도 합니다. 종자는 달라는 사람이 있으면 줍니다. 누구의 것도 아니고 나누어 써야 하니까요."

-이렇게 애를 쓰시는데 앉은뱅이밀이 전국적으로 보급되지 않는 이유는 뭡니까?

"대형 제분공장들이 수입 밀에 맞춘 제분기를 쓰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맷돌식 제분기를 쓰는, 앉은뱅이밀 가공은 우리밖에 안 하니까요. 그나마 개량종 금강밀은 수입 밀과 크기가 비슷해서 같은 제분기를 써요. 거기다 앉은뱅이밀가루는 입자가 곱고 가벼워서 같은 양을 제분하더라도 부피가 커서 업체들이 꺼리는 경향도 있죠. 아쉬운 건, 지난 1991년 우리밀살리기 운동을 할 때라도 개량종이 아닌 앉은뱅이 토종밀로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싶네요."

-판로는 괜찮은가요?

"'개미 소비자' 판매가 100톤 이상입니다. 인맥과 입소문입니다. 2000년대 들어 택배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어요. 아직도 부산 비중은 40%에 달해요, 인구도 많은 서울은 5%밖에 안 되지만요. 최근엔 전국 3대 누룩회사 중 하나인 '진주곡자'에서 앉은뱅이밀로 누룩을 만들어 보고 좋다고 가져가요. 또 고추장 담글 때, 크고 작은 빵집에서도 조금씩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부산 판매 비중이 높은 건 이유가 있나요?

"예전엔 당항포에서 쌀과 밀가루를 싣고 영도로 가서 팔고, 거기서 산소나 카바이트 같은 걸 사와서 밀 공장 발통기를 돌리곤 했어요. 명절 때 진주에 오면 한 차 가득 우리 밀가루를 실어가서 파는 분도 계셨고요. 아마도 그때 먹어 본 분들이 계속 찾는 것 같아요."

-마트나 생협 같은 곳에선 요청이 없었나요?

"제가 안 팔아요. 자기 마크를 달고 우리에겐 밀만 갈아달라고 하잖아요. 우리가 뼈 빠지게 농사지은 걸 자기들은 잠깐 팔고 수익을 남기려고 하는데, 그러면 소비자들은 얼마를 더 주고 사먹어야 되는 겁니까!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전화 주문과 택배로 하는 직판을 고수해요. 작목반 이름으로 인터넷 판매도 하지만 판매 비중은 얼마 안 돼요."

그러고보니 백 씨의 아내 김기선 씨는 하루 종일 전화와 씨름 중이었다. 또한 농민장터를 운영 중인 밀알영농조합법인 천병한(43) 대표도 백 씨와 함께 앉은뱅이밀 생산과 보급에 적극 나서고 있었다. 천 대표는 "밀 재배는 작목반에서, 금곡정미소에선 가공·제조를, 그리고 법인에선 새로운 상품 개발과 대외 마케팅, 앉은뱅이밀 체험관 운영을 주로 맡는다"고 설명했다.

지난 11일 오전 금곡정미소 내 '앉은뱅이밀 체험관'을 찾은 (사)진주여성농업인문화복지센터 부설 들꽃어린이집 원아들이 '가루야! 가루야!' 체험을 하면서 즐겁게 놀고 있다.
한편 지난달 22일부터 개관, 운영 중인 '앉은뱅이밀 체험관'은 정미소 일부를 개조해 어린이들이 우리 밀을 직접 만져보고 맷돌로 빻고 반죽도 해 볼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으며 이날도 진주 금산리 들꽃어린이집 원아 20여 명이 즐거운 체험을 하고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두문리를 떠나는 기자를 붙들고 백 씨가 한 마디 덧붙였다. 

"외국 농산물 안 들어오는 게 없는데 밀이라도 이모작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밀과 보리는 탄소동화작용도 해서 공기 정화도 많이 되잖아요. 10%라도 우리 밀로 대체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 농업을 살리고, 식탁을 살리는 게 결국 우리 몸도 살리는 거잖아요."

※문의=금곡정미소(055-756-1156, 010-7156-1156),농민장터(miral1000.com)

진주=글·사진/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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