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TV 뉴스 속 외모지상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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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경 동서대 교수·영어학과

평일 퇴근 후 저녁 시간.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나면 자연스럽게 신문을 읽거나 TV를 보게 된다. TV 시청의 중심은 단연 뉴스. 하루 동안 나라 안팎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마련이다.

저녁 황금시간대 공중파 뉴스들은 대개 진행을 맡은 남자 앵커와 그를 보조하는 여자 아나운서의 공동 진행으로 이루어진다. 필자는 이런 공식적인 조합이 자주 불편하게 느껴진다. 남자 앵커들이 보여 주는 연륜과 전문성과는 대조적으로 옆에 앉은 여자 아나운서는 젊음과 눈부신 아름다움 그 자체뿐이다. 뉴스를 전달해야 하는 '중립적'인 매개체로서의 역할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여자 아나운서는 정보 전달 이전에 오히려 보기에 좋은 '꽃 그림'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드는 것은 나만의 편견일까.

남자 앵커의 연륜과 달리 여자는 '꽃 그림' 역할

일기예보를 맡은 기상 캐스터가 등장하면 이러한 느낌은 더욱 강해진다. 몸 전체가 화면에 잡히는 기상 캐스터의 경우 천편일률적으로 몸에 딱 들어붙는 초미니 스커트를 걸치는 게 다반사이다.

혹자는 그게 어떠냐고? 이왕이면 젊고 예쁜, 그리고 몸매가 좋은 여성이 뉴스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보기에도 좋지 않으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매일 밤 접하는 TV 뉴스 진행 패턴에서 우리 사회의 고착화된 병폐를 재확인한다면 지나친 우려일까?

외모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집착은 병적이다. 각종 매스컴을 통해 전파되는 방송인이나 연예인들의 외모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이미지를 집요하게 재생산하고 있다. 갸름한 얼굴에 큰 눈, 오뚝한 코, 늘씬한 몸매 등 정형화된 이미지들이 도처에 넘쳐난다.

우리나라만큼 편협하고 엄격한 미적 기준을 보유한 나라가 있을까. 그 아름다움의 기준을 충족시키느라 이미 우리나라는 세계 제일의 성형왕국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고 있다.

외형적 아름다움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와 시청자의 시선을 잡아끌기 위해 끝없이 이용되는 '미끼'이다. 상품 광고에서부터 쇼 프로그램, 이젠 방송의 중심인 뉴스 진행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몸 이미지가 넘쳐난다. 상업적인 이윤 추구를 위해 사용되던 몸 이미지들이 어느덧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범람해 버린 것이다.

특히 여성에게 가해지는 미의 기준은 남성에 비해 훨씬 더 가혹하다. 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다소 뚱뚱하고 평범한 외모의 여성은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심심찮게 비하되는 단골 메뉴이다.

외형적 이미지만으로 성급히 판단하고 또 맹목적으로 거기에 매달리는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는 천박한 물신주의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 중심에 미디어, 특히 시각적 이미지를 전파하는 텔레비전 방송이 자리 잡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공중파 방송들이 자정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먼저 뉴스 방송의 밑그림을 바꿔 보는 것이 어떨까 제의해 본다. 남자 앵커와 여자 아나운서의 조합 대신 남녀 앵커가 공동 진행을 맡는다든지, 여자 아나운서의 경우에도 반드시 젊고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 대신 연륜이 묻어나면서도 멋진 전문성을 발휘하는 여성이 진행을 맡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

기상 캐스터 역시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몸의 곡선을 드러내는 인형 같은 모습 대신 자연스럽고 당당한 모습으로 날씨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어떨까?

연륜과 전문성 발휘 가능한 여성 앵커 기대

당장 시청자, 특히 남성들의 반발이 예상되지 않는 바 아니다. 하지만 그런 남성들에게 되묻고 싶다. 여자 아나운서와 기상 캐스터에게 강요되는 획일적인 미의 기준이 부메랑처럼 자신의 부인, 딸, 누이에게 그대로 투사되어도 좋은지, 여성의 외모에 대한 고착화된 이데올로기가 아무런 제지 없이 이대로 계속 반복되어도 좋은지 묻고 싶다.

팔십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방송을 하고 있는 미국 ABC의 바버라 월터스, 평범한 외모에 흑인이라는 핸디캡까지 극복한 오프라 윈프리. 여성 방송인에게 요구되던 젊음과 아름다운 외모를 철저한 프로 정신과 실력으로 물리친 주인공들이다. 그들의 노력만큼이나 오늘날의 그들을 있게 만든 미국 사회의 성숙함도 부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이제 우리의 TV 방송에서도 한국판 바버라 월터스, 오프라 윈프리를 기대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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