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원전 사태, 지금 터져 오히려 다행이다
/김기진 편집국 부국장
우리 원전 기술이 이 정도였는지 몰랐다. 가히 세계 최고라 할 만하다. 이명박 정권이 원전을 '미래의 핵심 성장동력'이라 역설할 때, 믿지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세계가 탈(脫)원전을 외칠 때, 우리는 원전 확대에 박차를 가했다. 이 대통령은 '원전 전도사'를 자처하며 세계를 누볐다. 그땐 '왜 저러지?' 했다. 뭘 믿고 그러는지 궁금했다.
돌아보니, 제 나름대로 근거가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만의 독보적인 기술력이다. 짝퉁 부품 활용술이다. 세계 어딜 봐도 짝퉁 부품으로 원전을 이렇게 잘 운용한 국가는 없다. 수십 년 동안, 수십 기를 짝퉁으로 끼워 맞춰 이토록 안전하게 가동한 국가는 한국뿐이다.
시험성적서까지 위조한 그 발상은 창조적이기까지 하다. 그런 방식으로 전력수요의 30%를 충당했다니, '창조경제'가 바로 이거다 싶다.
원전 23기 중 10기가 가동을 멈췄다. 부산 고리원자력본부의 6기 중 4기가 가동 정지된 상태다. 연일 전력 경보가 울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원전비리를 두고 "용서 받지 못할 일"이라고 했다. 정홍원 총리는 "천인공노할 일"이라고 했다. 격앙된 걸 보니 사태의 심각성은 파악한 것 같은데, 듣기에 불편하다. 원전비리 수사가 시작된 건 2011년 중순께다. 2년이 지났다. 수사하고, 감사하고, 또 수사단이 가동됐다. 대통령과 총리는 처음 접한 듯 말한다. 사실이라면 평소 국가 안위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고, 알고 있었다면 그동안 남의 일로 여겼다는 뜻이다.
청와대는 "이명박 정권이 적발하고도 공개하지 않았다"고 했다. 집권세력으로 5년 동안 한 지붕 아래 살아 놓고 갑자기 이러니 '자아비판'인지, '선 긋기'인지 해석이 필요해 보인다.
현 사태는 예정됐던 일이다. 뻔한 소리 같지만, 알람 시계는 돌아가고 있었다. 수많은 전문가와 시민단체의 경고를 무시하던 정부가 대통령이 바뀌면서 더 이상 원전비리를 묻어둘 수 없자 드러내놓은 것이다. 박 대통령은 원전비리 근절책을 주문하며 "신뢰는 큰 사회적 자본"이라고 지적했다. 유독 '신뢰'를 강조하는 이유는, 그만큼 원전이 안고 있는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뢰는 검찰 수사로 생기는 게 아니다. 수사는 비리를 밝혀내지만, 안전까지 담보하지는 못한다. 수사가 되풀이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신뢰는 사람과 시스템의 문제다. 이는 정부 몫이다. 원전에 대한 신뢰는 결국 정부에 대한 신뢰다. 원전 격납고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국민은 정부 말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전혀 신뢰를 주지 못했다.
원전비리 수사는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지척에 '잠재적 핵폭탄'을 두고 살아 왔다는 충격적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막연했던 불안감이 실체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 정부는 원전 주변 방파제를 높였다. 쓰나미가 닥쳐도 우리 원전은 안전하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듯, 원전의 위험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 원전에 대한 불신은 부품을 교체한다고, 납품비리의 연결고리를 끊는다고 해소될 사안이 아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숨겨진 원전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다. 정부는 "원전을 해체해서라도 모든 부품을 조사하겠다"고 했지만, 시급한 건 단순한 부품 조사가 아니라 원전 전체에 대한 철저한 점검이다. 원전에 치명적인 내진안전성은 정말 확보돼 있는지, 폐연료봉 등은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 집중 조사해야 한다.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대책을 내놔야 한다.
아울러 에너지정책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원전이 과연 국가의 존망을 걸고 의존할 에너지원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대참사가 벌어지기 전에 짝퉁 부품 사건이 터진 건 정말 다행이다. 이번 사태가 전화위복이 될지 여부는 정부 대처에 달렸다.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원전 가동을 중단한다면 그 불편이 아무리 크다 해도 반대할 국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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