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원의 시네아트] 한국판 '섹스 앤 더 시티' 앵두야, 연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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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야, 연애하자. 마운틴픽쳐스 제공

몇 살이면 어른이 되는 걸까. 어떻게 하면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어른이 되기만 하면 골치 아픈 문제들이 단번에 해결될 거란 상상을 한번쯤 해 본 적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바뀌는 건 하루가 다르게 피로해지는 몸과 주변의 따가운 시선뿐, 내일은 여전히 답답하고 오늘은 변함없이 심란하다. '앵두야 연애하자'는 이십대 막바지에 접어든 여자들이 겪는 각기 다른 일상을 통해 '그래도 괜찮다'며 슬쩍 위로를 건네는 타임캡슐 같은 영화다.

바람둥이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선언하고 오는 길, 앵두(류현경)는 로또 1등에 당첨됐다는 부모님의 전화를 받는다. 그 길로 세계일주를 떠나신 부모님을 뒤로 한 채 그녀는 세 친구들을 불러 모아 동거를 시작한다. 그로부터 5년 후 인생역전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변한 건 하나 없다. 작가 지망생인 앵두는 몇 년째 신춘문예에 떨어지는 반 백수 신세에 그동안 남자친구 한번 제대로 사귀어 보지 못했다.

글 쓰는 백수·워커홀릭 등
이십대 막바지 접어든 4명이
연애문제로 울고 웃는
전형적인 캐릭터 영화


화려한 외모의 소영(하시은)은 괜찮은 남자들이 쉴 새 없이 꼬이지만 정작 본인은 딱히 하고 싶은 일 없이 커피 전문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다. 미술관 큐레이터 윤진(강기화)은 워커홀릭으로 사회에서 인정을 받지만 이제 곧 결혼을 앞둔 오랜 친구를 짝사랑하며 지나간 사랑에 가슴앓이를 한다. '모태 솔로' 미술교사 나은(한송희)은 새로 온 외국인 교사와 가까워져 마음 설레는 나날을 보내지만 뜻밖의 사고로 연애전선에 먹구름이 낀다.

각자 다른 처지의 개성 강한 친구들이 가끔 싸우기도 하고 서로를 위로하기도 하며 연애문제로 울고 웃는, 요약하자면 한국판 '섹스 앤 더 시티'다. 글 쓰는 백수, 자유연애주의자, 일만 아는 커리어우먼, '모태 솔로' 순진교사가 모여 벌이는 전형적인 캐릭터 영화란 말이다. 일견 현실적인 일상을 보여 주려는 노력이 엿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이 테두리를 넘어서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리얼리티란 어디까지나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로또라는 설정부터가 어느 정도 현실성을 포기하고 출발하는 셈이다. 예컨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속 깊은 이성친구는 여성들의 환상 속에서나 서식할 법한 생물이다.

'앵두야 연애하자'는 네 여자가 순조롭고 이상적인 연애를 하지 못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훑어 나가는 가운데 언뜻 청춘의 고민 한 가운데로 현미경을 들이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해결된 시점부터 출발하는 달콤한 동화, 무난한 칙릿 영화다. 영화는 연애가 삶의 전부가 아니라며 그녀들의 고민에 쉽게 긍정과 낙관의 열매를 내밀지만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허덕이느라 연애 따위에 눈 돌릴 틈도 없는 주변 청춘들을 생각하면 쉽게 공감이 되진 않는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팍팍한 현실에 지쳐 연애에 눈 돌릴 틈조차 없는 요즘엔 이런 대책 없는 낙관도 그리 나빠 보이진 않는다. 때론 아무 생각 없이 사랑만 고민하고 싶다. 6일 개봉.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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