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나의 삶] '성냥 공장 여사장' 조창순 경남산업공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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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표·기린표 성냥 사랑해준 고객 생각에 문 닫을 수 없어"

경남산업공사에는 성냥개비를 자동으로 정리하는 기계 등 지금은 좀처럼 볼 수 없는 희귀한 성냥 제조 장비들이 가득하다. 조창순 대표가 성냥개비를 성냥갑에 자동으로 넣은 입갑기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병집 기자 bjk@

경남 김해시 진영읍 내에 가면 한때 지역 특산물인 단감보다 훨씬 유명했던 성냥 공장을 만나볼 수 있다. 공장의 정식 명칭은 경남산업공사. 기린 그림을 넣은 기린표 성냥과 화로 형상을 담은 신흥표 사각 통성냥을 만든다. 지난 1948년부터 올해까지 66년째 쉬임없이 성냥을 제조하고 있다.

하지만 성냥 산업은 라이터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한때 300여 곳에 달했던 전국의 대규모 성냥 공장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현재 경남산업공사와 경북 의성군의 성광성냥공업사 등 2곳만이 남아있다.

가업 계승 66년째 진영서 성냥 제조
사양길 속 국내 두 곳만 명맥 유지
공장 기계 팔아 직원 월급 주기도
"폐업하면 직원들은 어떻게 사나?
나 죽어도 공장은 이어졌으면…"


경남산업공사도 사정은 좋지 않다. 흑자를 낼 때도 있지만 흔한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달은 적자이거나 겨우 적자를 면하는 수준이다. 수익이 거의 없거나 적자가 반복될 경우에는 공장 문을 닫는 것이 일반의 상식. 하지만 이 공장은 이런 상식을 벗어난지 이미 오래다. 무슨 이유가 있을까.

경남산업공사 조창순(75) 대표. 조 대표와의 인터뷰는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2007년 경제부에 근무할 당시 이 공장을 취재하며 조 대표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이 공장의 상징인 성냥 제조 기계 가운데 최고가였던 장비가 해체돼 파키스탄으로 팔려나가는 날이었다. 공장의 모든 직원들이 '통곡'을 하던 날이기도 했다. 6년 만에 다시 찾은 경남산업공사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조 대표의 목소리는 그때보다 더 힘이 넘쳤다.

"그 장비는 1979년에 당시로서는 거액인 1억700만 원을 주고 구입한 전자동 성냥 제조기계였지요. 아마 국내에서 가장 비싸고 가장 좋은 장비였을 겁니다. 하지만 공장 운영이 어려우니까 그때는 할 수 없었어요. 내 살점을 떼어내는 것 같았지만 그 덕분에 직원들 월급 제대로 챙겨줄 수 있었으니 후회는 없습니다."

현재 경남산업공사의 직원은 안종삼(72) 전무와 이석송(71) 공장장을 비롯해 모두 8명. 평균 연령은 60대 후반에서 70대로 노령화되었지만 성냥 제조에 평생을 바친 국내 최고 수준의 기술자들이다.

"그동안 공장 부지를 아파트 건축 부지로 팔아라는 등의 유혹도 많았지만 선친(고 조병철 씨)이 설립한 공장을 반드시 지키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좋은 성냥공장 한두 개쯤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공장 문을 닫으면 직원들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제가 너무 집념이 강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돈을 벌고 못 벌고를 떠나 이 공장은 제가 없어도 영원히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조 대표는 부친과 남편이 잇따라 세상을 떠나면서 1978년부터 회사를 도맡아 운영하고 있다. 경남산업공사는 성냥 수요가 넘쳐나던 1970년대만 하더라도 직원수가 300명에 육박하는 등 호황을 누렸다. 진영읍 주민의 대부분이 이 공장 덕분에 먹고 살았다고 한다. 이 공장은 불우이웃돕기와 장학금 지급 등을 통해 지역 봉사에도 앞장섰던 덕망있는 기업으로 잘 알려졌다. 하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라이터가 유행한데다 최근에는 금연 열풍까지 겹쳐 성냥산업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경남산업공사는 비록 흑자를 내지는 못하지만 최고의 기술력과 오랜 역사 덕분에 수도권과 영남권 등에 단골 고객들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 조 대표는 수십 년 동안 자신들의 성냥을 꾸준히 사랑해준 고객들을 생각해서라도 도저히 공장 문을 닫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공장은 김해지역 1호 공장인데다 새마을운동의 상징인 '새마을 지정 공장'이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개인 공장이 아니라 이제는 문화유산이라고 하는 게 더 적합하겠죠. 진귀한 옛 기계들도 가득하고요. 행정기관에서 이런 시각으로 우리 공장을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혼자 지켜야 할 공장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할 역사적인 자료로 말입니다."

조 대표는 이어 "제가 죽기 전에 이 회사를 반드시 탄탄한 흑자 회사로 만들어 직원들에게 넘겨주고 싶다"며 "그렇게 된다면 이 공장은 아무데서나 볼 수 없는 성냥 제조 공정을 보기 위해 청소년과 관광객들이 견학을 오는 볼거리 명소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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