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타 내려는 연구가 연구냐? 시간강사 급료부터 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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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침묵의 공장'을 출간한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가 지난 3일 연구실에서 책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원태 기자 wkang@

자본에 종속돼 가고 있는 교수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은 책이 한 권 나왔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는 저서 '침묵의 공장'에서 "돈을 얻기 위해 연구 목적을 분칠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고 연구보다 연구 계획서 작성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 기이한 현상이 대학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연구자들이 내재적 필요에 의해 연구 주제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연구비를 따낼 수 있는 연구, 수월하게 연구비를 따낼 수 있는 주제로 몰리고 있다는 것.

이렇게 된 데는 '학진'(옛 한국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이 BK(두뇌한국)다, HK(인문한국)다 해서 자본에서 나온 돈을 미끼로 인문학을 지원하는 동시에 관리하기 시작한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연구비를 지원할 돈으로 시간강사의 급여부터 올려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명관 부산대 교수
저서 '침묵의 공장'서
자본 종속 교수 사회 비판
대학 서열화에도 '칼날'
대중은 더 높은 수준 원해

두껍지 않은 책에, 불편한 진실들이 엑기스로 녹아 있어 강도가 제법 세다. 강 교수를 지난 3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원래는 인문학담론모임에서 발표한 후 폐기하려고 했는데 인터넷에서 떠돌더니 일이 이렇게 커진 거예요." 일이 커질 법도 하다. 그는 "오직 국가가 던지는 연구비를 열망하면서 감격하는, 혹은 정당화하는 인문학을 인문학이라 부를 수 없다. 그것은 관학(官學)이다", "인문학자는 논문집을 발행하고 학회를 개최할 푼돈을 구걸하기 위해 자신의 존엄과 자유를 팔아먹고 있다" 정도의 강도 높은 비판을 서슴없이 쏟아낸다. "'학진'의 연구비를 받기 위해 연구 신청서를 쓰느라 열을 올리지만 당첨률은 10% 정도예요. 그중 90%는 폐기처분되죠.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중요한 연구라고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주장했다면, 그렇게 중요한 연구였다면 연구비를 받지 않고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강 교수는 또한 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대학 서열화에 대해서도 칼날을 세웠다. "한 신문사가 정한 조건에는 기득권, 서울대, 연·고대의 경우 부산대의 2배가 넘는 예산, 중앙집중 등 이미 출발선부터 다른 상황들이 들어 있어요. 그런데 대학에선 논문 쓰라고 교수들만 닦달하고 있어요. 오죽했으면 교수들이 논문 쓴다고 공부를 못하겠다고 하겠어요."

"인문학의 연구 논문에 왜 연구 결과의 활용 방안이 있어야 하느냐"는 그의 발언. 혹시 인문학의 대중화를 반대하는 건 아닐까. "그게 아니죠. 콘텐츠화를 반대하는 거죠. 인문학이 대중화되려면 먼저 전문화되고 깊이 있게 축적이 돼야 돼요. 그런 다음 자연스럽게 흘러 넘쳐 대중화가 되는 거죠. 최근의 인문학 바람은 계몽적 차원의 대중화가 아니에요. 오로지 이윤, 돈, 경쟁으로 모든 가치가 다 무시당하는 사회가 되고 보니, 개인의 삶이 몰수당했다는 걸 사람들이 느끼게 된 거죠. 사실 대중들은 더 높은 수준을 원하고 있는데 대학이 그 수준은 충족시켜 주지 못하면서 딴 데 가서 헤매며 돈이나 구걸하고 있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얘기만 골라 써 놨으니 책이 팔릴 리가 있나요." 강 교수 표현처럼 '팔리지도(?) 않는 책'을 쓰는 일은 어쩌면 교수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지난 2002년 강 교수는 40대 젊은 나이에 뇌경색에 걸려 1년 넘게 한쪽 몸에 마비가 왔었지만 컴퓨터 자판을 어렵게 쳐 가며 써낸 책 '조선의 뒷골목 풍경'은 결국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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