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문화다] ⑩ 영상 전문가 모임 '미디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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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 위해 미디어로 매개자 역할해요"

'미디토리' 제작 부서 직원들이 새로운 방송 기자재 사용법을 배우기 위해 워크숍을 열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이 동네 뭐 볼 거 있다고 자꾸 사진 찍으러 오노?" "구질구질한 동네를 찍어서 뭐 하노? 보여 주고 싶지도 않구먼!"

부산 동구 범일5동 매축지 마을의 어르신들은 오래되고 낡은 동네를 찍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과 자주 싸웠다. 철도와 컨테이너 차들이 다니는 큰 도로에 둘러싸여 세상과 단절된 것처럼 보이는 이 마을은 사진을 찍는 이들에겐 매력적인 피사체였지만 마을 사람들은 지질한 삶의 무게가 담긴 일상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독립영화·미디어 운동 20 ~ 30대 9명
매축지 마을 어르신에게 사진 가르쳐

"미디어 활용하고픈 누구에게나 도움"
인디밴드 인터넷 라디오 홍보 '한몫'
"아직 젊기에 새로운 시도로 영역 넓혀"

지긋지긋하게 사진가들과 싸우던 매축지 마을 어르신들은 지난해 자신들이 직접 사진작가로 데뷔했다. 어르신들이 카메라를 들고 마을 곳곳을 찍어 사진 전시회를 연 것이다. 주름진 이웃의 얼굴과 낡은 담벼락, 오래된 장독대는 어르신들의 카메라에 담겨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변했다. "매일 다니던 길인데 카메라로 보니 새롭더라고" "우리 동네가 이렇게 예쁜 곳이었나!" "인생은 70부터라는데 70에 사진 배우니 진짜 살맛 난다"며 어르신들은 아이처럼 좋아했다.



■미디어는 즐겁게 대화하기 위한 도구!

매축지 마을 어르신들에게 살맛 나는 법을 가르쳐 준 젊은 선생님들이 있다. 미디어 사회적 기업 '미디토리' 직원들이다. 영상 전문가인 '미디토리' 직원들은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의 장비를 지원받아 매축지 마을 어르신들에게 사진 찍는 법을 가르치고 전시회까지 일구어 냈다.

'미디토리'는 2010년 지역의 독립영화 일꾼과 미디어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이 힘을 합쳐 출발했다. "미디어는 사람들이 즐겁게 대화하고 소통하게 하는 도구일 뿐이죠. 특정한 기업이나 방송사의 것이 아니고요. 누구라도 미디어를 활용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미디어가 올바른 역할을 하고 저희는 매개체가 되는 거죠." '미디토리' 운영 전반을 담당하는 박지선 팀장의 설명이다.

20~30대 젊은 직원 8명으로 시작한 미디토리는 영상콘텐츠 제작과 지역 공동체 대상 미디어 교육, 웹 커뮤니티 기획, 지역 문화 활성화 활동을 하고 있다. 기업과 단체 홍보 영상이나 행사 기록 영상을 통해 이익을 얻지만 '미디토리' 직원이 가장 신이 날 때는 지역 공동체나 소외 계층에 미디어 교육을 할 때이다.

"우리가 내는 방송 수신료에는 시민이 직접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송에 나갈 수 있는 '퍼블릭 액세스' 권한이 포함돼 있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방송을 통해 말할 수 있다는 뜻이죠. 그렇게 미디어를 보통 사람에게 돌려주는 것이 미디어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미디토리' 직원 대부분이 오래전부터 다양한 시민 단체에서 미디어 교육을 하거나 재능 봉사를 해 온 이들이다. 그렇다 보니 미디어 교육에 대해 누구보다 애착이 많다. 지난해만 5천여 명의 사람들이 '미디토리'를 통해 미디어 교육을 받고 사진, 영상물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중 저소득층과 고령자, 장애인, 이주여성도 상당수를 차지한다. 대부분의 교육은 전액 무료로 진행하거나 저가로 봉사하는 수준이다. "보수요? 저희에게 배운 이들이 만든 영상이 TV에 나올 때나 사진 전시회를 할 때, 혹은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장 큰 대가죠.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 수 있나?"



■지역의 문화가 살아야 힘이 납니다!

'미디토리'가 제작한 인터넷 방송 프로그램 '인디야' 제작 모습. 미디토리 제공
'미디토리'의 활동 영역 중 중요한 분야가 '지역 문화 활성화'이다. 부산 지역의 인디밴드 음악을 알리는 인터넷 라디오 프로그램 '인디야'는 음악 분야 다운로드 횟수 5위를 차지할 만큼 인기를 얻었다.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서울에 진출한 부산의 인디 밴드들 소식을 들을 때면 보람이 크다. 열악한 지역 환경에서 좌절하던 인디 밴드는 '미디토리'의 '인디야'가 만든 활로를 따라 새로운 날갯짓을 하고 있다.

인디야에 소개된 밴드를 모아 2011년엔 '인디야 피크닉'이라는 공연 기획도 성공적으로 해 냈다. 지난해는 인디 밴드 작업실을 예고 없이 방문하는 '인디야 어텍'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했다. 박지선 팀장은 "아직 젊기에 새로운 시도들을 많이 한다. '미디토리'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소개했다. 지역의 독립영화를 많은 이들에게 소개하기 위한 공동체 상영회도 준비하고 있다.

"더 나은 세상으로 변화하기 위해서 미디어라는 도구를 택한 거죠." '미디토리' 직원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꿈이자 목표이다. 비영리 시민단체 활동가 수준의 열악한 월급이지만 이들이 힘을 내서 카메라를 잡을 수 있는 건 이 같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참! '미디토리'가 제작한 영상물은 감각적인 영상과 뛰어난 스토리로 전국에서 인정받고 있단다. '미디토리'가 꿈을 이루기 위해선 일단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미디토리'의 영상물 자랑을 한 줄이라도 넣어야 할 것 같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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