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군 척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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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 오늘부터 일요일까지 대변은 멸치축제 기간이다. 대변에 가게 되면 이것만은 꼭 보자. 대원군 척화비다. 대변초등 정문에서 두리번거리면 보인다.

척화비는 고종 아버지 흥선대원군 명으로 세운 돌비로 '서양 오랑캐'와 벌인 두 차례 격전의 소산이다. 프랑스와 싸운 병인양요(1866년)와 미국과 싸운 신미양요(1871)가 그것이다.

척화비는 일종의 승전 기념비. 양대 양요에 승리하면서 전국 각지에 척화비가 세워졌다. 그러나 대원군이 실권하면서 척화비는 뽑히거나 깨어지는 수난을 겪는다. 남아 있는 건 전국적으로 33기. 부산에는 3기가 있다. 대변과 가덕도, 부산박물관에 있다. 하지만 제자리에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부산 척화비 내력이다. 일제가 바다에 내다 버린 걸 광복 후 대변 청년들이 인양한 것이 대변 척화비다. 가덕도 척화비는 공사장에서 발견돼 천가초등으로 옮긴 것. 부산박물관 척화비는 원래 좌천동 부산진성에 세웠던 걸 용두산공원을 거쳐 박물관으로 옮긴 것이다.

모든 척화비는 내용이 똑같다. 비석에 새긴 글자는 모두 24자. 큰 글자도 12자이고 작은 글자도 12자이다. 큰 글자는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이고 작은 글자는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계아만년자손 병인작 신미립)'이다. 큰 글자 뜻을 두세 마디 요즘 말로 압축하자면 외국과 섞이지 말라는 것. 쇄국정책을 편 절대권력 대원군 뚝심이 척화비다. 동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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