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등대는 먼바다에서 뭍으로 다가오는 배가 처음 인지하는 유인등대다. 멀리서도 잘 보여야 하기에 등대 색도 희고 높이도 35m나 된다. 충실한 등대이며, 혹시 하는 어른들의 걱정도 담겼다. 하지만 순진한 초등학생의 말은 이런 어른들의 불안을 한순간 허물어 버린다. "등대가 막대사탕을 닮았어요. 배에 탄 사람들이 사탕을 먹으러 등대로 올 것 같아요." 사진=박정화 사진가
영도등대는
수평선을 바라보는 등대
다가가면
다가간 만큼 멀어지는 수평선
영도등대는
다가간 만큼 멀어지는 사람
하염없이 바라보는 등대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그냥 굳어버린 등대
- 동길산 시 '영도등대'
등대는 불꽃이다. 열애다.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뜨거운 사랑이다. 그 사랑이 등대를 견디게 한다. 혼자라는 외로움을 견디게 하고 기댈 어깨 없는 외로움을 견디게 한다. 외로움은 등대를 빛나게 하는 담금질. 외롭기에 등대는 꽃처럼 영롱하고 별처럼 찬란하다.
등대는 불꽃이다. 타오르는 불꽃이고 뛰는 가슴에 핀 불꽃 한 송이다. 손을 대면 손이 데일 것 같고 마음을 대면 마음이 데일 것 같은 등대. 그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등대 가까이 간다. 가까이 가서 가슴에 불꽃 한 송이 피던 날을 떠올린다. 가슴에 불꽃 한 송이 필 날을 기다린다.
등대가 바라보는 곳은 수평선. 선이 여러 가닥이 아니라서 외롭기는 수평선도 마찬가지다. 외로운 등대와 외로운 수평선. 다가갈 수 없어 마음이 힘들겠다. 다가갈 수 없으면 단념하고 물러나기라도 하련만 차마 그러지 못한다. 상대가 물러나기를 기다릴 뿐 등대도 수평선도 먼저 물러나지 못해 저렇게 꾸물댄다. 저렇게 평생을 마주 본다.
'함께한 100년! 희망의 불꽃!'. 영도등대 역시 불꽃 같은 등대. 입구에 부착한 동판에 제 스스로 불꽃임을 밝힌다. 스스로 불꽃이라고 밝히는 게 좀 멋쩍기는 하겠지만 사실이 그러니 그럴밖에. 동판을 부착한 해는 2006년. 그 해가 100년 되는 해였으니 역산하면 1906년이 영도등대 생년이다. 부산 최초 유인등대이고 한국에선 열 번째 등대다.
유인등대는 모두 희다. 영도등대도 유인등대라서 희다. 부산에 있는 유인등대는 모두 셋. 영도등대를 비롯해 오륙도등대와 가덕도등대다. 오륙도등대를 소개하면서 언급했지만 유인등대는 육지초인 등대. 배가 먼바다에서 뭍으로 다가올 때 처음 인지하게 되고 처음 보게 되는 등대란 의미다. 멀리서도 잘 보여야 하기에 희다.
유인등대는 등대도 희고 등불도 희다. 영도등대의 경우 백색 불빛을 18초에 3회 깜박인다. Fl(3)W18s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을 깜박이는 건 그만큼 눈에 잘 띄라는 애틋한 마음이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는 마음이 애틋함이듯 오가는 배가 잘 보이게 세 번을 달아서 깜박이는 등대의 마음도 애틋함이다.
영도등대는 높다. 애틋한 마음을 멀리까지 보이려면 그럴밖에. 무려 35m다. 원형 콘크리트 구조이며 불빛은 24마일 44km까지 나아간다. 영도등대는 순정파. 애틋한 마음이 남달라서 안개에 가리거나 비나 눈에 가려 불빛이 보이지 않으면 속 깊은 데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낸다. 묵직한 전기혼 소리를 45초마다 5초 동안 낸다. 속 깊은 데서 우러나오는 저음이 5마일까지 퍼진다. 소리마저 들리지 않을까 불안하여 전파를 내보내기도 한다. 정을 쉽게 주고 쉽게 거둬들이는 요즘 세상에 저런 순정파가 또 있을까 싶다.
등대는 3개 동으로 구성돼 있다. 등대시설이 있고 갤러리가 있고 박물관이 있다. 그 사이사이에 노천광장이 있고 쉼터가 있고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는 곳곳에 있다. 영도등대가 있는 태종대는 국가명승지. 부산에 빼어난 풍광은 많지만 국가명승지는 오륙도와 함께 두 군데뿐. 그만큼 풍광이 빼어나기에 전망대마다 속 깊은 데서 감탄이 우러나온다.
곳곳 전망대 가운데 풍광이 가장 빼어난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등대 전망대. 원형 등대는 일반인 출입이 가능해서 꼭대기 유리창 전망대는 인기 '짱'이다. 입구에서 전망대까지는 소라형이랄지 나선형이랄지 빙빙 돌아가는 철제 계단이 멋스럽다. 계단 벽면에 배의 역사랄지 종류랄지 전시액자를 훑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된다.
등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수평선은 종잡기 난감하다. 직선인가 하면 곡선이고 곡선인가 하면 직선이다. 직선은 인간이 만든 선이고 곡선은 신이 만든 선이라는 경구를 수용한다면 영도등대 수평선은 인간과 신이 합작해 만든 선. 인간이 만든 선을 따라 화물선이 오간다. 화물선이 아무리 오가도 수평선은 결코 허물어지지 않는다. 신이 만든 선인 까닭이다.
"지금부터 농무깁니다." 영도등대 근무자 서정일 주무관은 등대장. 더불어 사는 부부가 닮듯 바다와 더불어 살아 그런지 바다를 닮아 있다. 너른 바다를 닮은 너른 인품이 표정에 묻어난다. 4월 중하순부터 8월 중순까지는 안개가 짙어 수평선 선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태풍 철에는 파도가 치솟아 선이 들쭉날쭉 허물어지더란 목격담도 들려준다. 신이 만들어 인간은 허물지 못하는 선을 또 다른 신 '태풍의 신'은 허무는 것이다. 인간 세계처럼 신의 세계에도 맞수가 있는 법이다.
등대가 선 곳은 암벽. 등대에서 내려다보면 '천길만길' 낭떠러지다. 낭떠러지 외벽을 따라 계단이 있고 난간이 있다. 계단은 두 갈래. 오른편으로 내려가면 신선이 놀았다는 신선대다. 운동장처럼 넓고 펑퍼짐해 인간도 놀기 좋다. 왼편으로 내려가면 해녀촌. 해녀들이 내다 파는 해산물은 인간이 만든 게 아니라서 죄다 곡선이다. 해산물 안주에 얼큰해지면 암벽 계단을 오르기가 버겁다. 해녀촌 선착장에서 태종대 일주 유람선을 타 보는 것도 추억담이 되겠다. 어른 1만 원, 아이 5천 원.
"막대사탕 같아요." 등대는 생긴 게 막대기 사탕 같기도 하다. 오성민 군은 경북 구미 상모초등 2학년. 학교운동회 400m 계주 학급 대표다. 한문 5급을 따 놓고 4급 시험을 볼 참이다. 부모와 함께 휴일 나들이로 부산 바다를 찾았는데 그다음 말이 걸작이다. "배에 탄 사람들이 사탕을 먹으러 등대로 올 것 같아요." 유람선이 사탕을 먹으러 등대 선착장에 머물다간 떠나가고 모래를 싣는 바지선이 사탕을 먹으러 다가왔다간 지나간다.
'희망의 빛 영도등대'. 등대에서 박물관으로 내려가는 길. 청동 인어상이 청순하다. 인어상 아래 '희망의 빛'이란 동판이 보이고 동판엔 날짜가 보인다. 2004년 8월이다. 2004년은 영도등대가 해양문화공간으로 거듭난 해. 35m짜리 지금 등대도 그해 세운 것이다. 100년 된 원래 등대는 포항 국립등대박물관에서 보존한다는 게 김명환 등대원 전언이다. 가는 길. 영도다리 입구에서 태종대 가는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된다. 기차를 타고 온 외지인이라면 부산역에서 출발하는 시내투어 2층 버스 이용을 권한다. 좀 비싸지만 환승이 가능해 여러 군데 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