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35㎝ 왜소증 화가 박동신 "제가 드릴 건 그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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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까지 부산서 첫 개인전

장애를 딛고 30년 가까이 작품 활동을 이어 가는 화가 박동신(가운데)과 '월계관(月鷄冠)' 연작. 갤러리 몽마르트르 제공

딱 한 해만 뜨겁게 살다 가는 붉고 노란 맨드라미 꽃이 황홀하게 피었다. 나비가 하나둘 위로하듯 날아든다. 참 든든하게도, 휘영청 큼직하고 둥근달까지 그 뒤로 척하니 떴다. 달(月)과 맨드라미 꽃(鷄冠花)이 있는 그림 '월계관(月鷄冠)'이다. 아무리 캔버스 속 풍경이라지만, 어찌 이리 비장하고 처연하고 또 사랑스러운지.

광주의 어느 외진 작업실. 평생을 쉬지 않고 붓을 잡은 이가 토해 낸 맨드라미 그림들이 지난 10일 부산을 찾았다. 이름은 박동신. 1960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난 그는 조선대 미술대학을 졸업한 전업 화가다. 양(羊) 모양을 닮은 맨드라미만 그리는 그는 1998년 광주미술상과 2008년 대동미술상을 받는 등 광주권에서 활동해 왔다.

여기까지는 '뭐 그리 특별할 게 없지 않냐'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부산에서 첫 개인전을 열기까지 사연을 알고 난 뒤에도 그럴 수 있을까.

박동신의 키는 135㎝. 가족 중에 아무도 그런 이가 없는데, 그만 왜소증을 타고났다. 하늘이 원망스러웠지만, 이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그림 그리기'를 평생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그러면 암울한 세상을 이겨 내리라 생각하며, 끝없이 그림을 그려 냈다.

2009년 쉰 살이 되어 결혼도 했다. 베트남에서 온 신부와 예쁜 딸도 낳았다. "참 색감이 밝아졌다"는 소릴 들었지만, 좁은 임대주택에 찌든 가난은 떨치기 어려웠다.

2011년, 천금 같던 오른손과 오른쪽 몸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이를 어찌해야 하나. 좌절했지만,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도 왼손이 있었다. 거친 붓 터치로 이전처럼 세밀한 묘사가 힘들긴 했지만 아랑곳 않았다.

지난해 미술 애호가인 죽백인문학연구소 최영권 소장은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만의 작품 세계와 미학을 창조하는 박동신의 작업을 접하고는 솟구치는 감동을 어찌할 바 몰랐다. 곧장 광주행 버스에 올라 냉기가 가득하고 열악하기 짝이 없는 작업실을 둘러보고는 그도 모르게 말했다. "내가 가진 건 없지만, 부산에서 전시회를 열어 드릴게요."

지난 10일 저녁, 해운대구 갤러리 몽마르트르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그가 어눌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아내와 아이, 양가 부모와 함께했다. "이렇게 아무 것도 없는 저를 부산으로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좋은 모습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전시를 후원한 최영권 씨는 그 옆에 서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훔치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박동신 '월계관(月鷄冠)의 마술사' 전=18일까지 갤러리 몽마르트르. 051-746-4202.

박세익 기자 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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