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지는 횟감이 아이라예, 왜냐고예? 지는 예 '애완어' 혹돔이라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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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광안리 진로아파트 뒤 방파제횟집에서 5년째 '애완어'로 키우고 있는 자연산 혹돔. 손으로 머리를 만지면 가만히 있고 먹이를 던져주면 냉큼 헤엄쳐 와서 먹는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잘 따르니 인기가 많다. 정종회 기자 jjh@

광안리 진로아파트 뒤 방파제횟집에 들어서면 흠칫 놀랄 만한 광경이 펼쳐진다. 실내에 설치된 대형 수조 수면 위로 생뚱맞은 얼굴을 내밀고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물고기 때문이다. 길이 50㎝의 제법 큰 자연산 혹돔이 그 주인공. 이마는 툭 튀어 나오고 주둥이는 긴 편인데 큰 몸집에 비해 눈은 단추구멍같이 작다. 그래서 몰골이 좀 우습다. 못 생겨도 너∼무 못 생겼다!

그런데 이놈이 '물건'이다. 사람이 다가가면 달아나기는커녕 물위로 떠올라 유유자적하는 품새가 예사롭지 않다.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도 의젓하게 가만히 있다. 먹이를 던져주면 기다렸다는 듯 냉큼 헤엄쳐 와 받아먹는다. 잘 훈련된 돌고래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먹이를 주지 않고 자꾸 건드리기만 하면 '씩씩' 하는 소리를 내며 물총을 쏘는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그물에 걸려 횟집에 팔려왔지만 횟감용 수조에 함께 넣어져 애완용으로 키운 지 벌써 5년째다. '혹순이'라는 애칭까지 얻어 손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독특한 외모 때문에 관상용으로 키우는 경우는 있어도 사람과 교감하는 애완용이 된 건 드문 사례다.

대체 자연산 생선이 횟집 수조에서 이토록 장기간 버텨온 생명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또 사람 손을 무서워하지 않고 살갑게 지내게 된 건 무슨 까닭일까? 못생겼지만 귀여운 '혹순이' 스토리를 들어보자.

"광안리 방파제횟집서 5년째 살고
귀여운 '혹순이'로 유명해요
이마에 혹 삐죽한 못난이지만
사람들 모두가 좋아해요
목욕탕식 수조서 호사 생활하며
혹시 쓰다듬어 줘도 괜찮아요"

■'나는 못난이다' 경연대회 나갈 정도

혹돔의 이마는 불룩하게 튀어나와 혹처럼 보인다. 그래서 혹돔으로 불린다. 이름과는 달리 '돔'은 아니고 농어목 놀래깃과에 속한다. 주로 암초지대에 산다. 튼튼한 이빨로 게와 새우 등 갑각류를 깨뜨려 먹기를 좋아한다. 다 자라면 몸 길이 1m에 무게가 15㎏ 정도가 되니 관상용이라해도 가정에서 키우기는 어렵고 아쿠아리움의 수족관 같은 데서 키운다.

지난 2011년 7월 부산아쿠리움은 못 생긴 어류 13종을 들여와 '가장 못 생긴' 고기를 뽑는 온라인 투표를 실시한 적이 있다. 이때 혹돔은 나폴레옹 피시, 삼세기, 괴도라치 등과 당당히 겨뤘지만 아쉽게도 지존에 등극하지는 못했다. 대신 '슈렉 물고기'라는 별명으로 이름을 떨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여하튼 못 생긴 건 분명하다. 당시 들여온 혹돔 세 마리는 아직도 부산아쿠아리움에 전시되어 관람객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다.

부산아쿠아리움에 사는 혹돔들은 암초 틈에 들어가 꼼짝 않는 시간이 많다. 이 혹돔들을 돌보고 있는 양근복 아쿠아리스트는 "먹이를 주는 것 이외에는 혹돔들과 인위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있고, 혹돔들도 대부분의 시간을 암초에 기대어 쉬기 때문에 사람과 직접 접촉하는 경우는 없다"고 설명했다. 부산아쿠아리움과 방파제횟집 수조에 사는 혹돔들이 사람을 대하는 행태가 대조적이다. 그 까닭은 뭘까?

방파제횟집의 홍종관 사장이 실내 수조에서 유영하고 있는 혹돔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어? 이 놈 아직 살아있네!

'혹순이'는 지난 2009년 그물에 잡혀 방파제횟집에 팔려 왔다. 횟집과 낚시꾼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육질이 퍼석해서 횟감으로는 인기가 없는 모양이다. 대신 찜으로 먹기는 한단다.

방파제횟집 홍종관 사장과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혹순이'는 손님상에 오르지 않고 '애완어'가 되어 수조에서 5년째 살고 있다. 올 초에는 그물에 잡힌 새끼 혹돔 한 마리가 더 들어와 식구가 늘었다. 그래서 방파제횟집의 수조에는 횟감으로 들어온 광어떼 사이를 불그스름한 혹돔 두 마리가 휘젓고 다니는 진기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번에 있던 이 고기 아직도 살아 있네!'하면서 손님들이 신기해하고, 일부러 '혹순이'를 보러 가게에 오는 분들까지 생겼습니다."

홍 사장은 '혹순이'와 정이 깊이 들었고, 손님들에게도 인기가 있는 만큼 앞으로도 팔지 않고 계속 키울 작정이란다.


■신선한 해수와 쾌적한 환경이 장수 비결

'혹순이'가 살고 있는 곳은 횟감으로 나가기 전 활어를 잠시 보관하는 수조다. 그런데 흔한 외부 노출형 초록색 FRP 소재가 아니라 실내의 타일 수조다. 얼핏 목욕탕 욕조처럼 보인다.

실내식이라 직사광선을 받지 않는 데다 혹돔이 쉬고 싶으면 어두운 구석에 가서 잠자코 웅크리고 있을 수도 있다. 광안리 앞바다에서 공급되는 신선한 해수로 매일 물갈이되고, 수온은 냉각기로 관리한다. 아쿠아리움에 비하기는 어렵지만 횟집 수조치고는 제법 큰 편이라 혹돔이 활개를 치고 돌아다녀도 다른 물고기들과 부대끼지 않을 정도다.

신선한 해수와 쾌적한 환경, 이 두 가지 조건이 혹돔이 횟집 수조에서 장수하고 있는 비결인 것으로 보인다. 같은 이유로 보통 횟집 수조였다면 혹돔이 오래 버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국립수산과학원 전략양식연구소 미래양식연구센터는 지난 2008년부터 제주도에서 혹돔을 사육하면서 서열과 짝짓기 등 생태를 연구하고 있다. 이 센터의 정민민 박사는 "혹돔을 포함해 물고기도 사육되는 과정에서 사람과 친해질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혹순이'가 주인의 보살핌에 익숙해져 있는 상황에서 낯선 사람이 주인과 같은 행동을 하면 이를 거부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고 덧붙였다.

양 아쿠아리스트도 비슷한 분석을 내렸다. "주인의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 교감을 하게 된 것 같고, 그래서 낯선 사람까지도 무서워하지 않고 따르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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