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불평등'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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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층 빌딩은 개발이 가져다준 풍요를 상징한다. 하지만 개발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살던 곳을 떠나야 하는 이도 있다. 개발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책 '거대한 역설'이 던지는 질문이다. 부산일보 DB

개발은 '잘사는 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데 수백 년간 세계가 개발에 몰두한 결과는 어떤가? 수치상으로 성장은 이뤘지만, 부작용도 매우 크다. 심각한 경제 불평등이 그것이다. 지구촌 상위 20%가 전 세계 상품과 용역의 86%를 소비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거대한 역설'은 그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저자는 "'개발'이란 개념이 식민 지배 시기에 처음 나타났다"고 말한다. 당시 서구권은 비서구권을 미개하다고 봤다. 먹을 만큼 생산하는 방식, 자연 중심의 세계관 같은 비서구권 문화를 폄하했다. 식민지를 지배한 서구권은 개발로 사회를 성장시켜야 한다고 여겼다.

상위 20%가
86%를 소비하는 세계

불평등한 개발 강요
서구 식민지 정책이 그 시작
2차 세계대전 등 거치며
지구촌 전역으로 확산

환경주의·식량주권 등 주목
복리 지향으로 탈출구 찾아야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개발 방식이 불공정했다. 저자는 "'식민 지배의 분업 구도'가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식민지는 공산품 원재료인 1차 상품만 생산하도록 강요당했다. 본국은 부가가치가 발생하는 공산품을 생산해 이익을 독차지했다.

이 과정에서 식민지 농업은 붕괴된다. 서구권 소비에 필요한 단일 작물만 대량 생산해서다. 휴식 없는 땅은 피폐해졌고 생태계는 파괴됐다. 땅을 잃은 농부는 도시로 흘러가 빈민이 된다. "개발은 불평등을 통해 실현됐다"고 저자가 주장하는 이유다. 

거대한 역설 / 필립 맥마이클
저자는 "개발은 경제뿐 아니라 정치가 작용한다"고 말한다. 세계 2차 대전 후 식민지 상당수가 독립한다. 하지만 서구권과의 종속 관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개발로 정권을 유지하려는 신생 독립국 정부는 서구의 지원을 받아야 했다. 이는 서구의 정치적 경제적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음을 뜻한다.

1944년 미국 브레튼우즈에서 열린 44개국 재무장관 회의가 결정한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 설립은 서구과 비서구의 격차를 더 벌리는 일이 됐다.

두 기구는 국제 무역 활성화를 추진했다. 세계 2차대전으로 피폐해진 유럽을 구하기 위해서다. 당연히 서구 위주의 성장 로드맵이 펼쳐졌다. 제1세계 인프라 관련 기술을 제3세계가 수입하도록 재정을 지원했다.

1950년대 제3세계 농업은 또 충격을 받는다. 과잉 생산된 미국 농작물이 '원조'라는 이름으로 값싸게 또는 무료로 제공됐다. 가격 경쟁력에서 밀린 제3세계 농민들은 고향을 떠나 임금이 싼 도시 노동자로 전락했다. 값싼 노동력은 기업의 이목을 끌었고, 다국적 기업이 출현하는 계기가 된다. 기업이 서구를 떠나자 그곳에도 빈곤층이 증가했다. 저자는 "경제적 불균형이 국가를 떠나 세계적으로 확산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저자는 "1980년대 외채 위기는 제3세계를 더 어렵게 했다"고 말한다. 그 위기는 이렇게 왔다. 미국은 1970년대 대출 붐으로 인한 달러의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통화 회수 정책을 취했다. 은행이 달러 확보에 나서면서 이율이 올랐고 원금 상환기간도 단축됐다.

외채 상환 능력이 없는 제3세계는 큰 타격을 입었다. 상환을 유예하는 대신 국제통화기금의 긴축 권고를 받아들여야 했다. 공공 예산과 임금 삭감이 뒤를 이었다. 당시 멕시코 노동자는 임금이 50%나 줄었고 1천700만 명은 극빈 상태로 전락했다.

한편 미국은 자유 경제시장 확대에 나섰다. 각국의 외채 위기를 활용해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소련과 동구권을 무너뜨리려고 했다. 동구권은 생필품 구매를 위해 쓴 외채가 발목을 잡았다. 국제통화기금은 이들 국가에 시장 경제 수용을 요구했고,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더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후 서구권은 비교 우위에 따른 무역 자유화, 즉 신자유주의를 지향한다. 알다시피 그 여파는 컸다. 비교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격화됐고 승자 독식 현상이 일어났다. 계층 간 경제 격차도 갈수록 벌어졌다.

그렇다면 대책은 없을까? 저자는 환경주의, 페미니즘, 식량주권운동 등을 분석하고 "개발 부작용을 줄일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진 못했지만, 목표는 분명했다. "경제 실적만 측정해 순위를 매기는 방식에서 벗어나 복리를 지향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 필립 맥마이클 지음/조효제 옮김/교양인/600쪽/2만 3천 원.

김종균 기자 kjg1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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