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스크린 산책] 킬링 소프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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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국가가 아니다"

킬링 소프틀리. 쇼박스 제공

건조하다. 브래드 피트라는 이름만 보고 만약 이 영화 '킬링 소프틀리'를 선택한다면, 우선 그 건조함에 속이 바싹 말라 들어가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제목과는 달리 이 영화는 부드럽다기보다는 냉소적이며 날카롭다.

두 머저리의 범죄기
2008년 대선 배경
거대한 기업으로 전락한
미국의 현재 풍자


이야기는 두 머저리로부터 시작된다. 비싼 개들을 훔쳐다가 팔면 돈이 될 거라고 이야기하는 녀석은 언뜻 봐도 루저(패배자)이다. 과연 이 머저리들이 범죄에 성공할까? 영화는 이 단순한 호기심으로 끝까지 관객을 끌고 간다.

'킬링 소프틀리'는 1974년에 출간된 조지 하긴스의 소설 '코건의 거래'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베니스영화제에서 브래드 피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 준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을 연출한 앤드류 도미니크 감독이 이번에도 브래드 피트를 기용해 연출했고 직접 원작을 각색했다.

'킬링 소프틀리'의 장르는 굳이 따지자면 갱스터 누아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누아르는 경제 불황과 조직 범죄의 극성에서부터 빚어진 매우 시대적인 장르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영화의 제작을 맡은 브래드 피트와 감독 앤드류 도미니크는 이 누아르의 탄생 배경에 대해 다시 질문을 한다. 21세기 경제의 현 상황이 갱스터와 누아르를 어떤 방식으로 바꾸었는지 보여 주는 셈이다.

가장 달라진 점은 바로 '돈'으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현재 미국의 형편이다. '대부'와 같은 누아르가 범죄와 낭만적 우수를 남성적 매력으로 풀어낸 데 비해 '킬링 소프틀리'에 등장하는 갱스터는 초라하다. 그들은 살인 의뢰 수수료를 한 푼, 두 푼 따지는 쩨쩨한 범죄자들에 불과하다.

남성적 누아르 영화의 조·단역으로 얼굴을 알린 레이 리오타나, 제임스 갠돌피니, 리차드 잰킨스가 각각의 역할을 맡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직 범죄하면 떠오르는 이 얼굴들은 기존 이미지와의 차별성을 통해 변화를 확실히 체감케 한다. 돈에 승부를 걸고 일을 처리하는 해결사도 돈 앞에서 피곤하긴 마찬가지다.

영화의 배경은 2008년 대선. 영화 중간 중간에 부시와 버락 오바마의 대국민 연설이 라디오나 TV를 타고 흐른다. 음악이나 효과음을 대신해서 화면을 횡단하는 이 음성들은 건조한 분위기를 단숨에 축축하게 적신다.

몇 푼 안 되는 돈을 훔치고, 그 돈 때문에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더 건강한 사회, 강력한 국가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역설한다.

하루에도 수차례 총기 사고가 일어나고 마약에 찌든 사람이 사망하지만 그들은 '국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취급받지 못한다. 대통령은 "백인이든, 흑인이든, 히스패닉이든, 아시아인이든, 동성애자든 모든 미국 시민은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극 중 브래트 피트가 맡은 잔혹한 킬러 재키 코건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이 국가라고? 헛소리. 미국에선 모두가 다 혼자지. 미국은 국가가 아니야, 거대한 기업이지"라고 말이다. 과연 이 기업국가로부터 자유로운 자본주의 사회가 있기는 할까. 미국만의 일이라기엔 우리도 결코 자유롭지 않은 현실이다. 4일 개봉.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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