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 썰물] 차세대 콘돔
'여기에 우리 왕이 잠들다. 그의 말을 신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노라. 그는 어리석은 말을 한 적도 없었고, 현명한 말을 한 적도 없었노라.' 17세기 영국 왕 찰스 2세의 묘비명이다. 그는 크롬웰의 청교도 혁명으로 프랑스로 쫓겨 가 망명 생활을 하다가 왕정복고로 영국에 돌아갔다. 쓰라린 경험을 했던 그는 적당히 정치적 안정을 추구하면서 누릴 것은 확실히 누렸다. "쾌락을 좀 추구했다고 해서 신이 그 사람을 파멸시키지 않는다"며 수십 명의 애인과 자녀를 두었다. 이 바람둥이 왕을 위해 궁정 주치의가 어린 양의 맹장으로 만든 것이 콘돔이었다. 콘돔을 두고 영국인들은 찰스 2세가 프랑스에서 온 것을 빗대 '프랑스 편지'라 불렀고, 프랑스인들은 '영국 외투'라고 놀렸다.
'왕의 물건'은 수 세기를 거치면서 '대중의 물건'이 되었다. 1930년대 고무 콘돔이 대량 생산됐다. 콘돔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연간 150억 개를 사용한단다. 과연 '세상을 바꾼 위대한 발명품'에 값한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왕의 욕망이 결국 이 세상을 바꾼 계기가 됐다고 할까. 욕망하라, 이 세계가 바뀔 수 있다. 그런데 콘돔은 이중적이다. 쾌락의 도구이면서 '쾌락에 대해서는 갑옷'이라고도 한다. 콘돔 사용을 꺼려 아프리카 지역에 에이즈가 널리 확산되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설립한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10만 달러를 내걸고 차세대 콘돔 아이디어 공모에 나섰다. 차세대 콘돔은 신소재를 사용해도 좋고, 마음의 막을 걷어낼 수 있는 가장 얇은 막을 고안해도 좋고, 여하튼 쾌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콘돔이다. '현대판 흑사병'이라는 에이즈의 유일한 천적이자 가장 뛰어난 예방 수단인 콘돔을 더 많이 사용하게 하자는 의도이다. 그것은 '눈에는 눈, 쾌락에는 쾌락'의 전략이다. 인간은 욕망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 욕망이 인간의 가장 단단한 막이면서 가장 얇은 막이다. 최학림 논설위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