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야간 '알바' 현장에 가보니… 최저 임금도 못 받는 '현대판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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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시급과 열악한 처우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젊은 날의 낭만 대신 씁쓸한 기억만 만드는 장소로 바뀌어 가고 있다. 사진은 해당기사와 관련이 없음. 부산일보DB

26일 오전 2시께 부산 연제구 연산동 연산교차로 A 편의점. 만취한 20대 여성 3명이 들어와 맥주와 소주가 진열된 냉장고로 향했다. 계산대의 정은수(24) 씨가 건넨 비닐봉지가 손님의 손에서 미끌어졌다. 편의점 바닥에 술병이 깨지면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들은 혀가 꼬인 목소리로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편의점을 떠나갔다.

취재진이 머무는 동안 편의점은 만취한 손님들이 남기고 간 컵라면 용기와 맥주캔, 과자 봉지로 난장판이 되어갔다. 정 씨는 "매일 밤이 전쟁이다. 업주가 하루 1천500원도 안되는 야식비라도 빠뜨리는 날이면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 뿐"이라고 털어놨다.

전날 오후 9시께 부산진구 양정동 B 편의점에서는 김유진(22·여) 씨가 계산대 뒤편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화를 풀고 있었다. 며칠 전 심야에 찾아온 40대 남성 손님이 '보고 싶으면 연락하라'며 명함을 건네며 추파를 던진 불쾌한 기억 때문이다. 김 씨는 "돈 좀 편히 벌 수 있다는 말만 믿고 시작했지만 몸도 망가지고 못볼 꼴도 많이 봐 조만간 그만둘 생각"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폐기 직전 삼각김밥 끼니
날마다 술 취한 손님과의 전쟁
열악한 환경에 외국인 증가
노동청 형식적 단속 그쳐




■대학생 아르바이트의 상징은 옛말

계산대 한 구석에 전공 서적을 쌓아두고 늦은 밤 동네 편의점을 지키는 대학생이 '건강한 젊음의 상징'이라 불리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2013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바라보는 시각은 '현대판 노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장시간 선 채로 손님을 맞지만 최저 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급에 처우마저 바닥을 치고 있다. 지급해야 할 식대마저 교묘하게 시급에 반영하는 업소가 늘면서 '편의점 알바의 식사=폐기 직전 삼각김밥'이라는 공식은 굳어진 지 오래. 낮은 처우를 못이겨 인수인계도 없이 연락을 끊은 알바를 수소문하는 '추노(推奴)'라는 은어까지 생겨났다.

젊은이가 떠난 자리는 고령 퇴직자의 몫으로 돌아갔지만 이들도 고개를 흔들기는 매한가지. 퇴직 후 수영구 광안동 C 편의점에 취업한 김종석(66) 씨도 지난해 5월 1년 만에 일을 관뒀다. 그는 "밤 11시부터 오전 8시까지 9시간을 서서 일해도 식대가 없어 공복으로 지냈다. 아들뻘의 손님이 술에 취해 들어와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훔치는 모습에 종종 신변의 위협마저 느꼈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실정에 대학가 편의점 계산대는 중국인 유학생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들은 낮은 시급과 처우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에 업주들이 선호하고 있다는 것. 중소기업 현장에 이어 편의점 등 사회 곳곳을 외국인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최저임금도 안되는 시급에 단속도 미미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열악한 현실은 이달 부산 알바연대가 서면에서 실시된 실태조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부산 알바연대는 도시철도 서면역 인근 편의점 22개소의 야간 아르바이트생을 상대로 실태조사를 벌였다. 시내 번화가 중에서도 근무강도가 높기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조사가 이뤄진 서면의 22개 업소 중 13개소(59%)가 야간수당은 커녕 법정 최저임금인 4천860원 이하의 시급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르바이트 시작 때 근로계약서 작성 의무를 지킨 업소는 단 1곳도 없었다.

감독기관인 부산지방노동청의 단속은 연 2회 형식적인 수준에 그칠 뿐이다. 올해 연 4회까지 늘릴 계획이라지만 지난해 감독관 1명이 1개소씩 미성년자가 근무 중인 업소를 찾아 74개소를 단속한 게 전부다. 그나마도 편의점 뿐만 아니라 각종 빵집이나 패스트푸드점까지 합산한 수치. 사실상 피해자 신고가 없으면 단속조차 안되는 구조인 셈이다.

상황이 이러니 편의점 업주로는 아르바이트생 처우 개선에 둔감할 수밖에 없다. 3년째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근추(37·가명) 씨는 "요즘에야 아르바이트생이 신고하는 일이 잦아 업주들도 예민해졌다지만 당장 나부터 장사하면서 단속 한 번 받아본 적 없는데 어느 누가 신경을 쓰겠느냐"며 "결국 업주의 재량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르바이트생 시급 뿐이라 이 같은 현상이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편의점 실태조사를 기획한 부산 알바연대 배성민 기획팀장은 "현장에 나가보니 법정 최저임금조차 지키지 않는 편의점이 생각보다 많아 놀랐다"며 "노동환경 개선도 중요하지만 정부는 현실과 턱없이 괴리되어 있는 법정 최저임금을 최저 1만 원대까지 끌어올리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상국·김한수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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