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독오도독, 입안 가득 터져 나오는 싱그러운 바다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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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더덕 한 입 '콱'

비빔밥

미더덕은 '물에서 나는 더덕'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붙었다. 옛말에서 '미'는 물을 의미하는데 미나리, 미숫가루, 미리내 등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울퉁불퉁하고 거무튀튀한 자루 같은 겉껍질이 붙어 있을 때의 모습이 더덕을 닮았고, 톡 쏘는 강렬한 향기도 비슷하다.

미더덕은 우리나라와 동아시아 일부에서 서식하고 있는데, 이를 먹는 건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한다.

겨우내 찬물 속에서 웅크렸던 미더덕은 봄 기운이 완연한 4∼5월이면 성큼 커서 단맛과 향기가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봄철 먹거리의 주인공으로서 미더덕의 진가를 알아보고자 부산 동구 범일동 동아요리학원 김경옥 원장(영양학 박사)에게 조언을 구했다.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자리매김이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자극적인 향기와 중독성이 있는 단맛으로 봄철의 구미를 돋우는 미더덕을 주연으로 한 상차림을 만나 보자.

울퉁불퉁 거무튀튀 껍질
우리나라에서만 먹는다는
'물에서 나는 더덕'
4~5월이면 단맛·향기 최고조
비빔밥·무침·전·젓갈·회…
'조연' 아닌 '주연' 대변신

■봄의 미각 미더덕 맛보기에 앞서


먼저 섬유질의 미더덕 겉껍질을 벗겨내야 한다. 우리가 시장에서 구입하는 단계는 보통 겉껍질은 밑에만 남아있고 윗부분은 해수가 탱글탱글 들어찬 투명 속껍질 상태로 되어 있다.

미더덕을 날 것으로 먹으려면 짜고 쓴 해수를 버려야 하니 속껍질을 툭 찢어서 해수를 빼낸다. 된장찌개에 넣어 끓일 때는 그냥 둬도 좋겠다.

미더덕 아랫부분의 껍질은 씹을 때 오도독오도독 소리가 나면서 씹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미더덕 회로 먹을 때는 밑동이 붙어 있는 채로 그릇에 내놔도 무방하지만 밥과 채소, 전 등 다른 재료와 함께 씹어야 하는 요리에 밑동이 남아 있으면 서로 섞여 씹는 맛이 좋지 않으니 밑동까지 제거하고 살만 쓰는 게 좋다.

김 원장은 자갈치시장에서 직접 구입한 신선 미더덕을 손질해 덮밥, 젓갈, 전, 회무침, 회 등 모두 5가지 봄마중 요리로 풍성한 봄식탁을 마련해 보였다. 

비빔밥

■멍게비빔밥, 저리 가!

뜨거운 밥 위에 손질한 미더덕 속살을 올리고 참기름, 깨소금, 김가루 정도만 얹은 미더덕 덮밥이 나왔다. 흰 밥알 위에 오도카니 앉은 살색의 미더덕은 교태를 부리는 것처럼도 보이고 다소곳한 것처럼도 보였다. 하여간 보기만 해도 군침이 흘렀다.

한 술 떠 입에 넣으니 밥알과 미더덕살이 함께 으깨지면서 터져나오는 고소한 육즙이 입안 가득 밀려들었다. 약간의 참기름은 미더덕 향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상승시켰다.

밥 한 숟가락에 미더덕 속살 하나 얹는 식으로 먹다 보니 찬 생선살과 따끈한(?) 밥알이 어우러져 맛을 내는 생선회 초밥의 궁합이 언뜻 떠올랐다. 향기와 단맛이 강렬한 미더덕과 밥알의 조합은 회초밥에 뒤지지 않는 단연 독보적인 맛이라 할 수 있겠다. 제 나름의 단맛으로 존재감을 지키고 있는 멍게 비빔밥과 비교할 때 미더덕의 손을 들어주고 싶었다.

또 비빔밥에 흔히 쓰이는 고추장은 물론, 새싹채소, 계란 같은 게 전혀 필요없을 정도로 미더덕 자체의 존재감으로 비빔밥이 완성되는 것도 신기했다. 구수한 미더덕된장찌개를 곁들이면 미더덕 덮밥(혹은 비빔밥)은 한 끼의 단품 식사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제철 미더덕을 재료로 한 덮밥을 계절 별미로 내놓는 식당은 미더덕 양식장이 몰려 있는 창원시 진동에는 있지만, 아쉽게도 부산에선 찾기가 어렵다. 그러니 직접 만들어 먹는 수밖에 없겠다.
젓갈
무침
■젓갈, 전,무침…. 안되는 게 없네

김 원장이 미더덕을 주연으로 내세운 밥상을 차리려면 반찬이 필요하다면서 미더덕 젓갈을 내왔다. 난생 처음 보는 것이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오징어나 멍게 젓갈처럼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단다.

발라낸 살을 하루 정도 염장한 것에 고춧가루, 설탕, 물엿, 다진 마늘, 다진 생강, 청양고추, 참기름, 깨소금 등 양념을 버무린 뒤 일정기간 냉장숙성만하면 된다고.

염장숙성한 젓갈이다 보니 짭조름하긴 해도 미더덕 본연의 맛과 향은 그대로 살아 있다. 먹을 때마다 마늘, 무, 풋고추를 얇게 편썰어 섞어 내면 밥도둑이 될 게 분명해 보였다.

미더덕전은 미더덕 살을 다져 넣고, 양파와 당근, 부추 등 채소를 함께 반죽에 넣어 구워낸 것이다. 감자를 강판에 갈아 반죽에 넣어 차진 맛을 살리니 씹는 맛이 좋아졌다.

미더덕 전을 한 점씩 떼어 씹을 때마다 미더덕 향이 그대로 느껴졌다. 바다의 내음, 봄의 미각을 바로 느낄 수 있으니 색다른 맛으로 다가왔다.

김 원장은 "미더덕 살이 적다 싶으면 홍합 살을 약간 다져 넣어도 좋다"고 설명했다. 다만 홍합을 너무 많이 넣으면 미더덕 향을 즐길 수 없게 될 수 있으니 주의.

전과 함께 나온 미더덕 무침은 밑동까지 완전히 발라낸 뒤 속살만을 넣어 야채와 함께 초고추장으로 무친 것이다. 밑동을 떼어내지 않고 무침을 내면 채소가 다 씹히는 동안 밑동은 그대로 입속에 남기 때문에 결국 씹힘성이 나쁘게 된다. 그러니 발라낸 속살만을 가지고 무치는 게 좋겠다.

미더덕 회무침은 밥반찬으로 어울리는 것은 물론이고, 술안주로도 딱일 듯싶다. 밥과 함께 먹을 때 자꾸 젓가락이 갔는데, 덩달아 술 한잔 생각이 자꾸 났다.
미더덕이 주연이 된 식탁은 봄의 성찬이다. 미더덕의 갯내음에 실려온 봄바람이 입안 가득히 춤을 춘다.

■발라 먹는 재미가 있는 미더덕회

미더덕은 싱싱할 때 날것으로 먹는 맛이 가장 좋다. 미더덕의 향취를 가장 원초적으로 느낄 수 있어서 좋은 것이다. 미더덕회는 시장에서 사온 것을 집에서 간단히 장만해서 먹을 수 있는 간편 메뉴다.

우선 미더덕회는 밑동이 달려 있는 채로 내면 된다. 그래서 오도독오도독 껍질 밑동을 씹으면서 입안에서 속살만 발라먹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속살만 씹어도 달콤짭조름해서 어지간히 간이 되어 있지만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좋다. 쌈 채소류까지는 필요없고 생채로 먹을 수 있는 영양부추를 접시바닥에 깔고 그 위에 미더덕회를 올려낸 뒤 함께 곁들여 먹었는데, 그런대로 맛이 어울렸다.

입속에서 툭 터지는 미더덕 속살은 처음엔 쓴 듯해서 침샘을 자극하는데 씹다 보면 이내 단맛으로 변하고 향기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 그 여운은 자꾸 미더덕에 손이 가게 만드는 중독성이 있었다.

미더덕 속살을 얹은 덮밥으로 시작해 젓갈과 전, 회무침, 회를 두루 맛보니 어쭙잖은 조연이 아닌 화려한 주연으로 부상한 미더덕의 진가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미더덕을 주연으로 해서 차려낸 식탁은 봄의 성찬이다. 이렇게 미더덕 요리를 두루 맛보니 갯내음에 살랑살랑 실려 온 봄바람이 입안 가득히 춤을 춘다. 주체할 수 없는 봄기운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 정도면 봄마중이 충분하지 않을까?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사진=김경현 기자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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