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더덕 한 입 '콱' 주홍빛 봄을 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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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더덕회를 처음 씹으면 쓴 듯해서 침샘을 자극하는데 씹을 수록 단맛으로 변하고 향기의 여운이 입안에 오래 남는다. 사진=김경현 기자 view

어릴 적 동네 담벼락이 낮았을 때의 추억입니다. 옆집에선 저녁에 무슨 국을 끓이는지, 어떤 생선을 굽는지 냄새만으로 대강 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약간 쿰쿰한 것 같기도 하고, 구수한 듯하기도 한 냄새가 나는데, 대체 이게 뭐지? 담벼락을 넘어 골목길을 휘감던 그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냄새에 코를 킁킁 거렸던 때가 있었습니다. 가장 강렬한 냄새의 기억을 남긴 건 바로 미더덕을 넣은 된장찌개였습니다. 그때의 느낌은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생생합니다.

막 끓인 된장찌개 속 미더덕을 입안에서 터뜨렸다가 뜨겁게 데워진 속물이 터져나와 그만 입속을 데고 만 적은 없으신가요?

하여간 미더덕은 한번 맛 들이면 웬만해선 잊히지 않는 자극적이고 중독성이 있는 별미로 남아 있고, 그와 관련된 추억 역시 몸에 밴 질긴 체취처럼 떠나질 않습니다.

"에이, 오버 아니신가요? 된장찌개 안에서 오도독 씹히던 그 해물이 뭐 그리 대단해서!" 혹시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필시 미더덕의 사촌지간인 오만둥이를 미더덕으로 착각하고 계십니다. 모양이 흡사한 '오만둥이'는 경상도 사투리로 '오만데 다 붙는다'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미더덕의 독특한 향기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된장찌개는 물론 아귀찜에도 대체재로 들어가긴 하지만 가짜 미더덕인 셈입니다.

남해안에서 주로 양식되는 미더덕은 수온에 민감합니다. 수온이 10도 전후일 때인 4∼5월에 유리아미노산의 함량이 가장 높아지면서 맛과 향이 절정에 이르지요. 생굴이 끝날 즈음에 등장했다가 수온이 높아지면 멍게에 바통을 전해 주고 들어갑니다. 하여튼 온 천지에 봄의 기운이 충만하기 시작할 때인 바로 지금이 미더덕의 제철입니다.

그런데 찰떡궁합 콩나물과 함께 만드는 미더덕찜 정도를 제외하면 미더덕을 주재료로 한 음식을 접하는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미더덕을 전문으로 다루는 요리점도 없습니다. 하나, 부산과 가까운 창원시 진동면 고현리 앞바다는 전국 최대의 미더덕 산지이고, 여기를 비롯해 미더덕이 나는 갯가에서는 미더덕덮밥, 미더덕회, 미더덕젓갈, 미더덕전, 미더덕회무침 등 다양한 요리를 즐겨왔습니다.

지금까지 미더덕은 요리에 있어 조연 역할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명품 조연은 주연 못지않은 존재감을 발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미더덕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미더덕을 주연으로 내세운 정식 밥상을 차려봤습니다. 동구 범일동의 동아요리학원(cook3000.co.kr) 김경옥 원장의 안내를 받아 봄 향기 그윽한 미더덕 상차림을 받아보실까요?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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