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空間)… 그곳에 가고 싶다] ③ 부산 기장군 장안읍 월내리 '반쪽집'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도로 확장에 반쪽 난 집 '그림'이 되다

부산 기장군 장안읍 월내리 바닷가 도로와 맞붙은 '반쪽집'. 집이 철거돼 자칫 방치되었을지 모를 자투리땅에 들어서 마을에 활기를 더하고 있다. 건축사진가 윤준환 제공

부산 기장군 바닷가 마을. 집이 반쪽이 났단다! 그놈의 도로 확장 때문이다. 보상은 받았지만, 마을을 벗어나기에 턱도 없었다. 홀로 살던 여주인은 망연자실했다.

지난해 봄, 터는 반밖에 남지 않았어도 집을 지어 보자 마음먹었다. "터가 좁아 건물 못 지어요." 모두 혀를 찼다. 컨테이너 주택도 알아보았지만, 영 아니었다. 그러다 운 좋게도 만난 인심 좋은 건축가가 "최선을 다해 보겠다"고 주먹을 쥐어 보였다.

6개월의 기다림 끝에 지난해 11월에 완성된 작고 하얀 이층집. 동네 사람들이 '예쁘다'며 부러워했다. 동네 은행 아가씨, 심지어 외지에서 집 구경하러 오는 게 아닌가. 그렇게 '반쪽집'이 탄생한 것이다.

바람·소음 고려 시스템 창호 채택
좁은 거실 창엔 바다가 가득
외관도 보는 각도 따라 다른 모습
화려함과 거리 멀지만 '건축미' 돋봬


재개발, 뉴타운이다 해서 주민을 쫓아내기 바쁜 마당에 '작은 건축'으로 철거민이 새 희망을 찾게 됐다니, 반쪽집으로 향하는 길 내내 마음이 훈훈하다.

지난 15일 오후, 기장군 장안읍 월내리. 바람은 꽤 세찼지만 완연한 봄기운을 막을 수 없다. 월내역에 닿기 전 만난 반쪽집은 그리스 바닷가 마을의 집처럼 온통 하얗다. 소문처럼 바다와 가까운 도로와 맞닿아 있다. 신기하게도 철거된 땅만큼 집을 지어 턱 얹어 놓은 모양새다. 더구나 어긋나게 붕 떠 있는 2층은 묘한 긴장감을 준다.

집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한마디로 마을의 '군계일학'. 날렵한 직선으로 빠진 박스형 집이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전혀 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집주인 변재순 씨가 가게에서 한달음에 와서 문을 열어 준다. 월내 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한단다. "1984년부터 이 동네 살아요. 아유, 딸들이 사흘이 멀다 하고 와요. 예전에 단층집일 때는 두 달에 한 번 올까 했는데. 둘째는 내 취향은 묻지도 않고 집을 단장하느라 난리네요. 그래도 좋~지요, 뭐. 방에 누우면 별도 보여요."

해 질 녘 2층 모서리에 난 창으로 보이는 바다
커다란 장식벽이 조형물처럼 배치된 입구는 꼭대기까지 높다랗게 뚫어 답답한 느낌을 없앴다. '아! 바다가….' 좁은 거실에 들어섰는데, 창에 가득 바다가 펼쳐진다. 갈매기가 눈앞에 날아다닌다. 1층에는 거실과 작은 부엌, 안방, 화장실이 있고 계단으로 2층에 오르면 넓은 거실과 발코니가 나타난다. 2층은 변 씨와 상의해 딸네 가족이 오면 편히 쉴 수 있게 배려한 '사랑방'을 만들었다.

집 아래쪽에서 바라본 '반쪽집'
건축 면적은 53㎡, 2층까지 전체 면적은 75㎡에 불과했지만 계단 입구며 현관까지 어느 방향으로 보아도 곳곳에 창이 크게 뚫려 있어 답답한 느낌이 전혀 없다. 그냥 이대로 카페를 해도 좋겠다.

눈에 띄는 건 튼튼하고 유리가 두꺼운 시스템 창호를 채택한 점이다. 건축사사무소 '라움' 오신욱 소장이 설명한다. "저렴한 테라코트 외장 등으로 3.3㎡당 300만 원대로 건축비를 낮추면서도 풍족한 공간을 주기 위해 수도 없이 스케치를 했어요. 그래도 태풍처럼 센바람이 많고 도로 소음이 심한 특성상 창에는 신경을 많이 썼지요. 주문한 창을 기다리느라 공사가 한때 중단됐는데, '업체가 망했다'는 등 별별 소문이 다 났습디다." 허가 과정에서 난데없는 주민 서명까지 받았다 한다. 설계상 확장될 도로가 기존보다 2층에 닿을 정도로 높게 치솟아 있는 걸 발견하고는 행정기관을 상대로 민원까지 제기해 높이를 낮춘 것이다.

동행한 부산건축가회 강기표(아체ANP 대표) 부회장은 "예산이 적어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건축적으로 훌륭한 집이 만들어졌다. 창으로 보이는 풍경도 압권"이라고 평했다.

"심심하면 집에서 낚시도 할 거예요. 그만큼 경치가 그만이라예." 반쪽집을 떠나는 객에게 연신 손을 흔든다. 이날 공간 투어에 동행한 이들은 "작은 건축이 제대로 활성화되어야 도시 재생의 밑거름이 된다"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느라 해 저무는 줄 몰랐다.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영상제작=박기범·이소영 대학생인턴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