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문화다] ③ 복합문화공간 '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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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 한자리에서 소통하는 풀뿌리 문화 쉼터

복합문화공간 '움'은 매주 목요일 음악회 및 전시회를 가진다. 지난 7일 100회 음악회를 맞아 피아노 트리오 '노타'가 초청됐다. 강선배 기자 ksun@

'움'은 커피를 파는 카페다. 그런데 카페의 주방 뒤편에 20여 평의 텅 빈 공간이 나타난다. 벽에는 미술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검은 피아노가 앉아 있다. 카페 안에 존재하는 전시 및 공연 공간, 바로 복합문화공간 '움'이다.

음악과 미술 감상을 좋아하는 시민 K씨. 지난 7일 K씨는 KT 동래지점 근처의 복합문화공간 '움'에 도착했다. 이곳에선 매주 목요일 저녁이면 음악회가 열린다. 이날은 음악회가 100회째를 맞는 날이었다.

K씨는 아마추어다. 시립미술관, 부산문화회관을 1년에 한 번 찾을까 말까 하는 순수한 아마추어다. K씨는 어느 날 "문화회관과 미술관은 교통도 불편하고, 내용도 딱딱하던데 우리 동네에 작은 문화공간은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움'이었다.

동네 카페 활용 전시·공연장으로
매주 목요일 개최 음악회 100회 맞아
미술품 해설·피아노 트리오 '노타' 공연

관 주도보다 주민 참여 문화 필요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변신 기대


오늘 K씨는 왠지 기분이 좋다. 맨 앞줄에 앉는 행운을 잡았기 때문이다. 관객용 의자가 70여 개다. 커피를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인 게 이곳의 룰이다.

오후 8시가 되자 기획자가 등장해 벽에 걸린 미술작품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이어 화가가 등장해 직접 자신의 작품에 대한 소개를 곁들였다.

김수민(29) 작가는 주방도구 등 일상생활의 소도구에 의미를 부여했다. 리얼리즘 계열의 서양화로 착각할 수 있지만 실은 전통 채화 방식의 동양화라고 한다. 작가의 설명을 듣고 보니 색깔과 기호로만 여겨지던 작품이 각별한 인연을 가진 생명체처럼 다가왔다. 신진 작가들이어서 가격이 그리 높지 않다고 했다. 한 편을 사 거실에 걸어 볼까 하고 K씨는 잠깐 고민에 잠긴다.

다음은 피아노 트리오 '노타'의 무대. 바이올리니스트 김성은, 첼리스트 박현영, 피아니스트 최정윤이 등장했다.

박현영이 바흐의 무반주 첼로모음곡 1번을, 최정윤이 쇼팽의 스케르쪼 작품39를 연주했다. 바흐의 묵직한 저음과 쇼팽의 쾌활한 고음이 번갈아 가며 귀를 즐겁게 했다. 시민 K씨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한 걸음 앞에서 첼로가, 두 걸음 앞에서 바이올린이, 세 걸음 앞에서 피아노가 연주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연주자들의 거친 숨소리가 객석에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독주곡에 이어 멘델스존의 피아노 트리오 작품49가 연주되자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마지막 곡은 피아졸라의 탱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 중 '봄'. 시민 K씨는 탱고를 추는 상상 속을 헤매다 고함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관객들이 앙코르를 외치고 있었다.

'움'의 대표 김은숙(43) 씨, 김 씨의 올케인 이은희(48) 전시관장의 얼굴에도 만족의 웃음이 번졌다.

'움'은 지난 2011년 4월에 문을 열었다. 처음 김 대표는 많이 울었다. 매주, 매월 연주가와 작가들을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경제적으로도 힘에 부쳤다. 매주 행사에 돈을 쏟아 부어도 카페의 매출은 오르지 않았다. 개점 1년 만에 문을 닫을 위기에 도달하였다.

그때 김 대표는 포기 대신 일을 더 크게 벌이는 강수를 택하였다. 지난해 10월 예비 사회적 기업에 선정돼 주식회사 '움'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움'이 움을 활짝 틔울지 여부는 향후 1년 내에 결정된다. 예비 사회적 기업에 선정되면 2년 내에 자생적 활로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술인과 일반인의 간극이 좁혀질 때 사회의 긴장이 해소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 주도의 대형 문화공간보다는 주민 속에 파고드는 문화, 동등하게 만나는 문화, 참여하는 문화가 필요한 거죠." 김은숙 대표는 '움'을 지역 토착형 풀뿌리 문화의 가능성에 대한 실험으로 보고 있다. 그 실험이 성공하면 수익성도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피아니스트 최정윤은 "무대가 편하고, 관객이 편하고, 기획자가 편하고, 카페 분위기가 편하니까 연주가 신이 났다. 음악이라는 게 정색을 하고 감상하기보다는 생활 속에서 향유될 때 진정한 음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움' 공연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기회가 되면 다시 서고 싶다"고 말했다. 화가 김수민도 "젊은 작가에게 발표의 장을 마련해 주고, 관람객에게 내 작품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도록 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도시철도 동래역 주변은 밤이면 시끌벅적하다. 인파 사이에 시민 K씨도 보인다. 문화 시민 K씨의 걸음이 가볍다. 이상민 선임기자 ye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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