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슈즈 브랜드 '아크로밧' 임재연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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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고 아름다운 신발 고집, 소비자가 알아주니 뿌듯"

'아크로밧' 임재연 디자이너가 부산 중구 신창동 국제시장 빈티지숍 '재동씨' 매장 한쪽에 전시된 '아크로밧' 제품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열아홉 살에 구제 노점으로 패션 경력을 시작한 그는 10여 년 만에 국내 톱모델들이 사랑하는 슈즈, 세계적인 규모의 패션쇼 무대에 오른 슈즈의 디자이너가 됐다. 강원태 기자 wkang@

지난 1월 29일, 한국 패션업계에는 스웨덴 발 낭보가 날아들었다. 세계적인 SPA(기획·제작·유통 일체형) 브랜드 에이치앤엠(H&M)이 개최한 '2013 H&M 디자인 어워드'에서 벨기에 안트베르펜(앤트워프) 왕립 아카데미 패션학과의 한국인 유학생 김민주 씨가 1등을 수상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날 김 씨가 우승자의 자격으로 메르세데스 벤츠 스톡홀름 패션위크에서 선보인 단독 쇼 무대 뒤편에서는 또 한 명의 디자이너가 가슴 벅차하고 있었다. 슈즈 브랜드 '아크로밧'의 디자인 디렉터, 임재연(30) 디자이너였다. 캣워크에 오른 모든 구두는 김 씨와 '아크로밧'이 컬래버레이션(협업)한 작품들이었다.

지난 13일, 부산 중구 신창동, 국제시장 내 '아크로밧' 사무실에서 임재연 디자이너를 만났다. 패션 업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스톡홀름 쇼 현장의 흥분이 가라앉기도 전, 부산사무실과 서울 판매매장, 서울 성수동에 있는 수제화 장인들의 작업 현장을 오가느라 바쁜 일정을 쪼갰다. '아크로밧'은 그가 동생 임종헌 대표와 함께 12년째 운영 중인 빈티지숍 '재동씨' 바로 위층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다.

가정 형편으로 미대 입시 포기
서면서 빈티지제품 노점 시작

2011년 브랜드 국내 정식 출시
10~60대 폭넓은 연령대 찾아

올해 'H&M 디자인 어워드'
우승 디자이너와 협업

내년 봄 단독 매장 오픈 계획
해외 진출도 적극 추진


-H&M 디자인 어워드 우승 무대에서 김민주 디자이너와 협업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김민주 디자이너와는 홍대 '재동씨' 매장의 손님으로 시작해 가까운 친구가 됐다. 아크로밧 신발을 많이 구입한 마니아이자, 이번 시즌 아크로밧 화보를 찍을 때 벨기에 현지에서 모델 섭외와 스타일링을 도맡아 할 정도로 아크로밧 브랜드를 지지하는 동료이기도 하다. 서로 피드백을 주고 받으면서 컬래버레이션에 대해 협의하고 있던 차에 H&M 디자인 어워드 우승 무대를 함께 준비하게 됐다." 

-슈즈 브랜드 '아크로밧'은 언제 어떻게 론칭하게 됐나?

"빈티지숍 재동씨를 운영하면서 전 세계 다양한 시대에 생산된 신발들을 수없이 구매하고 신어보게 됐다. 특히 다소 정형화된 동양의 신발들과 달리 형태가 특이한 유럽 신발들에 호기심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편안한 신발과 불편한 신발에 대한 내 나름의 규칙들을 만들어 나갔다. 2004년부터 중국 OEM으로 자체 디자인 구두를 만들면서 만듦새에 대한 욕구도 있었다. 서울 성수동 수제화 장인들을 찾아가 설득했고, 2011년 '아크로밧'을 론칭했다."

-론칭을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서울 성수동 수제화 공장을 개척하기가 힘들었다. 성수동은 수십 년 동안 한 우물을 판 장인들이 모여 있지만 여전히 열악한 동네라 젊은 여자가 혼자 돌아다니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봤다. 공이 많이 들어가는 디자인 콘셉트를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6개월 동안 찾아가고 또 찾아가면서 아크로밧의 철학을 설명하고, 기업의 이윤만 생각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장인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지금도 "아크로밧 신발은 너무 만들기 힘들다"고 귀찮아하지만,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겠다는 약속을 기특하게 본 것 같다."

-'아크로밧' 브랜드에 대해 설명한다면?

"아크로밧의 슬로건은 '발의 해방'이다. 기존 신발 시장은 스틸레토 힐(뒷굽이 아찔하게 높은 구두)로 대표되는 살롱화 아니면 아예 캐주얼화로 양분돼 중간을 찾기 힘들었다. 아크로밧을 설명하는 세 단어는 편안함, 실용성, 그리고 독특함이다. 발이 편하되 봤을 때 아름다워야 한다. 굽이 있는 펌프스(발등이 팬 여성 구두)라도 워커에 주로 쓰는 고무창을 비롯해 독특한 모양의 밑창을 사용해 외형적으로 아름다우면서도 신었을 때 편안한 실용적인 신발을 만든다."

-론칭 이후 유통 경로와 시장의 반응은 어땠나?

"처음에는 유럽 론칭을 계획했지만 수제화 제작 소요 시간 등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해 국내 시장을 먼저 다지기로 했다. 오프라인에서는 서울 가로수길과 명동 등의 편집 매장 '플로어' '에이랜드'와 현대백화점 부천점에, 온라인에서는 일모스트릿, W컨셉, 위즈위드, 29㎝, 힙합퍼 등 주요 편집 온라인몰에 순차적으로 입점했다. 자체 온라인몰(http://www.acrobate.kr)도 운영한다. 주요 백화점에서 팝업(한시 운영) 매장을 자주 선보였는데, 10대부터 50, 60대까지 폭넓은 연령대가 찾는 것에 놀랐다. 특히 어머니들이 "편하다"고 재구매해 줄 때에는 론칭 당시 목표가 명중한 것 같아 기뻤다."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

"여행과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다양한 나라의 문화와 자연의 색채 속에서 아크로밧 신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색감과 재질의 소재를 찾는다. 남극이나 아프리카, 밀림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도 즐겨 본다. 올해 S/S 컬렉션으로 선보인 캘리포니아 라인, 아프리카 라인 등도 캘리포니아의 바다와 바람, 아프리카의 경이로운 대자연과 색채를 떠올리면서 디자인했다."

-제작 과정을 설명해달라.

"아크로밧 신발은 주문할 때 별다른 요청 사항이 없더라도 무조건 고객에게 전화를 한다. 1 대 1 연락을 통해 정확한 사이즈를 체크하고 생산에 들어가는 맞춤형 생산 방식이다. 200㎜부터 300㎜까지 발 사이즈를 선택할 수 있어 발이 크거나 작아서 걱정인 고객들도 별도 슈트리(구두골) 비용에 대한 부담 없이 아크로밧 신발을 신을 수 있다. 가죽 공급의 문제가 없다면 주문에서 배송까지 1주일에서 열흘 정도가 걸린다."

-부산에서는 빈티지숍 '재동씨'의 운영자로 더 알려져 있다. '재동씨'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미대 입시를 준비하다가 가정 형편으로 대학 진학을 접고, 수능 바로 다음 날 서면 롯데백화점 맞은편에서 빈티지 제품 노점을 시작했다. 1년 뒤인 2001년 국제시장에 정식 매장을 열었다. 재동씨가 전국 매스컴의 관심을 받으면서 2008년 홍대3호점까지 열었고, 2010년에는 부산 프레타 포르테에 초청돼 부스를 운영하면서 빈티지 제품을 리폼한 자체 디자인 상품들이 호평을 받는 것을 보고 자체 브랜드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어릴 때부터 국제시장을 놀이터 삼아 들락거리면서 놀았고, 데레사여고 시절에는 구제숍에서 옷을 사다가 친구에게 입혀서 내 나름의 카달로그를 만들어 친구들로부터 주문을 받기도 했다. 빈티지 제품들은 다양한 시대와 나라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내게는 훌륭한 교과서였던 셈이다."

-아크로밧 2013년 이번 시즌 컬렉션의 특징은?

"겨울이 지나고 봄과 여름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아름다운 꽃, 시원한 바다 등을 기대한다. 사람들의 설렘과 낭만에 대한 이미지와 색채를 신발에 풀어보고 싶었다. 파랑과 빨강, 핑크와 검정처럼 다양한 색감의 가죽을 활용한 색상 배치와 신비한 광물의 질감이나 그물(메시) 등 이탈리아 고급 가죽 소재를 눈여겨보았으면 좋겠다."

-H&M 어워드 이후 아크로밧의 다음 계획은?

"김민주 디자이너와 또 다른 형태의 컬래버레이션을 구상하고 있다. H&M 어워드 무대를 통해 호평을 보내 준 패션업계의 바이어와 언론 등과 계속해서 관계를 맺으면서 계획했던 해외 진출도 진행하고 싶다. 그에 앞서 내년 봄 정도에 아크로밧 단독 매장도 낼 계획이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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