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안리 횟집 '수정궁'에서 열린 블라인드 테스트 참가자들이 멋진 바다 야경을 뒤로 한 채 '맛있는 생선회'를 찾고 있다. 왼쪽부터 블로거 '각얼음' 박성환 씨, 최원준 시인, 이자카 게이 서일본신문 기자, 블로거 '몽' 최홍석 씨, 부경대 조영제 교수, 부산아쿠아리움 이정희 주임. 김병집 기자 bjk@
회를 좋아하세요? 아니, 질문을 수정하겠습니다. 어떤 회를 좋아하시나요?
활어회, 아니면 선어회? 양식산 보다 비싸도 자연산만 고집하신다고요? 초고추장에 마늘 곁들인 채소쌈으로 '우걱우걱' 드시는 게 좋으신가요, 고추냉이 살짝 바르고 간장 조금 찍어 '오물오물' 드시는게 좋으신가요? 캬! 하는 맛이 있는 소주가 회에 어울린다고요? 요즘은 와인이나 사케가 더 끌리다는 분들도 많아졌습니다. 회를 즐기는 법은 더 많습니다. 물회, 숙회, 회비빔밥, 회정식, 초밥….
부산은 명실상부, 팔딱팔딱 살아 뛰는 활어회의 도시입니다. 우리나라가 최대의 활어회 소비 국가이니, 부산은 전 세계에서 활어회를 가장 즐기는 도시입니다. 그런데, 궁금증이 하나 생겼습니다. 다른 도시, 다른 나라와 차별화되는 '부산회'의 특성은 뭘까요? 부산회가 독보적인 것이라면, 부산식 회 문화도 세계화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부산회의 정체성', 이 화두를 붙잡았습니다. 쫄깃한 부산회를 음미하는 즐거운 심정으로, 알고도 먹고, 모르고도 먹던 부산회 이야기 속으로 격주마다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볼 작정입니다.
숙성·양식·자연산 등 조건 달리해 실험 선어는 감칠맛이 으뜸, 쫄깃함은 떨어져 참가자 대부분 냉장 숙성회 선호 신선도·먹는 분위기도 회 맛에 큰 영향
출처:책 '생선회 100배 즐기기'
국민 생선의 하나인 넙치(광어) 회 네 접시가 식탁에 오르는 순간 적막감이 감돌았다. 세 접시는 양식산이고 다른 한 접시는 자연산(4시간 숙성)이었다. 양식산은 다시 갓 잡아낸 생선회와 10시간 숙성한 것, 24시간 숙성한 것 등 3종류로 나눴다.
어떤 이는 침을 꿀꺽 삼켰고, 눈을 지긋이 감은 채 정신집중 모드에 들어가 있는 이들도 보였다. 이 중에서 가장 맛있는 회를 고르라니! 어느 것이 숙성된 것인지, 또 자연산인지 맞힐 수 있을까? 자타공인 회 전문가들의 자존심이 걸린 블라인드 테스트장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지난 4일 오후 6시 광안리 해변가 민락회센터에 위치한 활어횟집 '수정궁'에서는 '혀'와 '어금니'의 섬세함이 시험대에 올랐다. '생선회박사' 부경대 조영제 교수(식품공학과)를 비롯해 미각 기행에 발군인 최원준 시인, 웬만큼 회를 먹었지만 한국에선 처음인 이자카 게이(井崎圭) 서일본신문 기자, 생선회 전문 블로거 '몽' 최홍석 씨, 파워블로거 '각얼음' 박성환 씨, 부산아쿠아리움 이정희 주임이 실험에 참여할 주인공들.
참가자들은 물론 장소를 제공한 '수정궁'의 이승욱 대표도 뚜껑을 열었을 때 결과가 어찌 나올지 자못 궁금한 표정이다. 어떤 회가 가장 맛이 있을지, 지금까지 맛있는 회를 먹어 왔는지 알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일부 뜻밖의 실험 결과로 잠시 갑론을박도 있었지만, 의견을 종합해 보니 대체로 예측 가능하고 상식적인 결론으로 귀결됐다. '부산회'의 정체성을 찾아 보자는 취지로 기획한 이 실험의 결과가 궁금하신가? 맛 있는 회를 먹는 비법 탐구에 나선 'Week&Joy+'와 함께 하시라! 실험 현장의 분위기를 미리 요약해 드리자면 이렇다. 두근두근…오물오물…긴가민가…쨔잔~!…에구머니…왁자지껄…끄덕끄덕….
블라인드 테스트로 올라온 넙치(광어) 횟감. 각 접시의 소라 뚜껑 안에는 숙성시간이 표시되어 있다. 위로부터 ①번=양식산 10시간 숙성, ②번=양식산 24시간 숙성, ③번=갓 잡은 양식산, ④번=자연산 4시간 숙성
■실험의 조건
실험 회접시 ①번은 2.2㎏짜리 양식 넙치를 오전 8시에 잡아 냉장고에서 5도 상태를 유지하며 10시간 숙성한 것이다. 전날 오후 6시에 잡은 뒤 24시간 숙성시킨 횟감은 ②번 접시에 올렸다. 양식산 넙치를 갓 썰어 낸 것은 ③번, 4시간 냉장 숙성한 자연산 넙치(4.5㎏)는 ④번 접시에 담겼다. 참가자들은 세부적인 사실을 모른 채 주어진 간장과 고추냉이(와사비), 쌈장, 초고추장 만으로 최상의 맛을 골라 내야 한다.
조 교수의 연구결과(표 참조)에 따르면 횟감으로 잡은 생선살은 10시간 이내까지는 단단한 육질이 유지되다가 점차 물러지면서 씹는 맛이 나빠진다. 반면 감칠맛(이노신산)은 반비례해 늘어난다. 짧은 시간 숙성한 것까지는 활어에 포함되고, 24시간 이상은 선어로 구분한다. 다만, 회 맛은 개인 취향, 생선의 신선도, 계절과 어종의 차이 등 복합적인 요인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번 실험이 절대적인 잣대가 될 수는 없다는 점에 참가자 전원이 동의하고 참여했다.
■절대미각은 존재할까?
10여분 남짓 조심스레 회 맛을 보던 블로거 '각얼음'이 침묵을 깼다. "감칠맛은 있는데 씹힘성이 없다"는 이유로 ②번이 24시간 숙성회라고 지목했다. 육질은 퍼석하지만 구미를 당기는 맛은 있다는 뜻이다. 또 "씹는 맛과 감칠맛이 알맞아 가장 좋다"면서 ①번이 10시간일 것으로 추정해 모두 적중시켰다.
간단하게 보이는 실험이었지만 의외로 '각얼음'을 제외한 나머지 참가자들은 바로 썰어 낸 생선회와 냉장 숙성회를 감별해내지 못했다. 갓 잡아 낸 생선회를 전문가 대다수가 맞히지 못한 탓에 뚜껑이 열렸을 때 모두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고 웅성거렸다. 급기야 주방장을 불러 진위를 파악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조 교수는 2∼3일 숙성하는 일본식 선어와 이번 실험에 쓰인 숙성회가 다르다는 전제하에 "씹는 맛도 좋고 감찰맛이 있어서 먹기 좋았다"면서 숙성된 ①, ②번이 좋았고, 그중 24시간 숙성한 ②번을 으뜸으로 꼽았다.
참가자 6명 중 2명이 양식 10시간, 2명은 양식 24시간, 나머지 2명은 자연산 4시간 숙성회가 맛 있다고 지목한 것으로 미뤄 볼 때 냉장 숙성한 활어회(싱싱회)를 선호하는 경향은 두드러졌다. 다만 짧은 시간 숙성했을 때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절대적인 맛 차이보다는 개인의 취향에 좌우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는 단서에 모두들 동의했다.
자연산은 엇갈렸다. 블로거 '몽'과 최 시인은 산란이 지난 봄철이라 육질이 퍼석거리고 기름기도 빠진 상태라 "밋밋했다"고 했지만, 이자카 기자와 이 주임은 자연산이 신선미와 씹힘성이 좋았다고 했다. 역시 맛은 개인 취향이 주 변수가 될 수 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맛있는 회를 먹고 싶어요
이번 실험에서 바로 살을 발라낸 양식산(③번)은 단 한 명의 선택도 받지 못한 반면 저온숙성된 횟감은 골고루 입에 맞는 회로 꼽혔다. 전문가들은 이를 당연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조 교수는 "실온(보통 15도)의 수조에 있던 생선을 잡아 포를 뜬 뒤 저온숙성하면 냉기를 만난 생선살에 수축이 일어나 쫄깃함이 더해진다"고 설명했다. 혀로 느끼는 감칠맛을 중시하는 일본 선어와 달리 어금니로 씹을 때 느끼는 쫄깃함을 중시하는 한국 활어 문화에 비춰볼 때 짧은 시간이라도 냉기를 쐬어 숙성하는 편이 낫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참가자들은 "더 맛 있는 회를 먹기 위해서는 예약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미리 주문을 넣으면 횟집이 숙성해 놓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수정궁의 이 대표는 "같은 이유로 손님상에 내놓기 전 4시간 숙성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참가자 전원은 숙성 여부보다 회 맛의 절대변수로 생선의 신선도를 꼽는 데 이견이 없었다. 예컨대 좁은 물차 탱크에 한나절 갇힌 생선은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아 활력이 떨어지고 품질이 저하될 것은 분명하다. 오염된 수조에서 장시간 갇힌 생선 맛이 좋을 리도 없다. 불로거 '몽'은 이런 경우를 두고 "겉으론 활어지만 좀비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신선함과 함께 분위기도 큰 영향을 미친다. 낚시로 낚았거나 혹은 해녀가 갓 잡아온 생선을 바로 회 쳤을 때, 혹은 멋진 바다풍광을 볼 때 느낄 수 있는 기막힌 회 맛은 숙성과는 다른 차원에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다행히 부산 광안리나 자갈치 등은 24시간 신선한 해수가 공급돼 횟감의 신선도가 유지되는 한편 바다에 접한 천혜의 자연환경이 갖춰져 있다. 이 같은 '부산회'의 조건을 잘 살리면 세계에 내놔도 손색없는 활어회 상품이 될 것이라는게 참석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어 참가자들은 회를 맛있게 즐기는 저마다의 비법을 털어놓거나 개선과제도 제시했다. 활어회에 어울리는 주류는? 양식산의 흙냄새 정체는? 수조의 위생, 문제 없나? 쌈장에 초고추장이냐, 간장에 고추냉이냐? 등등. 쫄깃한 회 스토리, 다음 회부터 차근차근 이야기 보따리를 풀 예정이니 기대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