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 <395> 문경 공덕산
기세 좋은 암릉길 오르니 저 멀리 자연이 선물한 피라미드가…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햇볕조차 들지 않는 심산유곡에서 낙엽 스치는 발걸음 소리를 길벗 삼아 산을 오른다거나, 더 오를 곳 없는 산 정상에서 발아래 세속을 굽어보며 흘러가는 한 줌 구름에 헛헛한 마음을 실어 보낸 경험이 있는 산꾼들이라면 한 번쯤 읊조려봤음직한 시 구절이다. 이 선시(禪詩)는 조선의 기틀을 세운 무학 대사의 스승인 나옹 화상의 작품이다. 절친했던 친구가 죽자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이냐'며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으나 모두 '모른다'고 하자 괴로워하며 경북 문경의 공덕산 묘적암으로 요연 선사를 찾아가서 머리를 깎고 불교에 귀의했다고 한다.
공덕산(功德山·913m)은 경북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와 동로면 노은리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지형도에는 공덕산이라고 표기돼 있지만, 불교계에서는 사불산(四佛山)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이 산 기슭에 자리한 일명 '사불암'이라 불리는 천강석조사불상(天降石造四佛像)에서 사불산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신라 진평왕 때인 587년에 하늘에서 한 길이나 되는, 반듯한 사면체 바위가 붉은 비단에 싸여 이곳에 내려졌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왕이 이곳까지 찾아와 예배하고, 이 바위 옆에 대승사를 지었다고 하니 그 유래가 아득하다.
나옹화상 출가·전설 깃든 곳
쭉쭉 뻗은 전나무 숲·기암괴석
분재 같은 노송 사이 전망 일품
대승사와 여러 암자들을 품고 있는 공덕산은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전나무와 갖가지 활엽수들이 청명한 기운을 자아내는 산사길도 고즈넉한 운치가 일품이지만, 정상에 이르기 전 암릉지대에서 마주하는 기암괴석의 향연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등산로는 대승사를 기점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가 일반적이지만 '산&산'은 접근성을 고려해 대승사 초입의 공덕산 주차장을 기점으로 삼았다. 구체적인 등로는 '공덕산 주차장~윤필암~안장바위~묘봉~전망바위~쌍연봉~대승봉~옛고개~공덕산 정상~방광재~대승사~공덕산 주차장'이다. 총길이 8.5㎞로 휴식시간을 포함해 5시간 30분가량 걸린다.
들머리는 공덕산 주차장이다. 안내판 앞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은 대승사 가는 길인데, 왼쪽 윤필암 방면 임도를 탄다. 비좁은 아스팔트길이지만, 좌우로 우거진 소나무 숲이 정취를 살려준다. 5분가량 걸으면 음각으로 묘적암·윤필암 방향을 바위에 새겨놓은 갈림길에 이른다. 100m가량 더 걸어 윤필암으로 간다. 비구니들만 사는 절이라 방금 싸리비질을 끝낸 듯한 기분이 나는, 고즈넉하고 정갈한 청정도량이다. 이 절 한쪽 절벽에는 불상이 따로 없는 법당인 사불전이 있다. 사불전 한 면의 대형 유리문이 사불암 쪽을 향해 나 있어 이를 모신다고 한다. 사불암은 1천400여 년이 넘는 세월을 비바람에 깎여 마모가 심하고 윤곽만 희미하게 남아 있어 다소 초라해 보인다. 사불암에 이르려면 윤필암 밑으로 난 오른쪽 가파른 산길을 40분가량 올라야 한다.
윤필암 바로 앞 삼거리에서 맨 흙이 살아 있는 왼쪽 산길을 따라 묘적암 방면으로 향한다. 5분쯤 걷다보면 오른편 바위 위로 묘적암 입구라고 쓰인 표지목이 보인다. 맞은편 전신주 옆 샛길을 타고 능선을 치고 올라가야 하는데 임산특용작물 집단재배지로 관계자 외 출입을 금지한다는 영농조합법인 명의의 경고판이 턱하니 가로막고 있다. 낭패감이 번졌다. 대승사에서 운영하고 있다는 영농법인에 문의했다. 등산객들이 공들여 키운 도라지나 버섯을 캐 가거나 훼손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서 경고판을 세웠다고 한다. 산이 좋아 산을 찾는 순수 산꾼들의 발길까지 막지는 않겠다며, 특용작물 보호를 위해 펜스가 둘러쳐진 곳은 들어가지 말라는 당부를 보탰다.
오르막 산길을 따라 5분쯤 오르면 오른편 전나무 숲 사이로 묘적암이 내려다보인다. 나옹 선사가 출가한 곳이다. 흙담에 소박한 대문까지 갖춰 암자라기보다 시골 고택에 가깝다. 구태여 산사의 정적을 깨 스님의 참선정진을 방해할까 두려워 가던 길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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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한 명이 족히 앉을 정도로 가운데가 움푹 패인 안장바위. 나옹화상의 도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전설이 얽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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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 공덕산 고도표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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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 공덕산 구글 어스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