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징용 '대가' 꼭 돌려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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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탄광 강제징용 피해자 심재길 씨(오른쪽 사진)와 심 씨가 강제노역했던 일본 규슈 오무타 시의 미쓰이미이케탄광.

"목숨 건 강제 노동의 대가였던 내 돈, 죽기 전에 꼭 돌려받고 싶다."

일본 규슈 구마모토 현 아라오 시에 살고 있는 심재길(93) 씨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다. 경기도 여주군 출신인 심 씨는 1941년 5월 결혼 3개월 만에 영문도 모른 채 일본 홋카이도 구시로 탄전의 하루토리 탄광으로 끌려갔다. 당시 여주에서 그와 함께 강제징용된 사람은 54명, 같은 마을 출신 2명은 힘든 노역을 견디지 못해 모두 사망했다.

4년여 탄광 노동 심재길 옹
애국저금 명목 임금 떼여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제외


1944년 가을 심 씨는 규슈에 있는 미쓰이미이케탄광으로 전출됐다. 새 탄광은 혹한으로 악명높은 홋카이도와 정반대의 환경이었다. 바다 밑으로 연결되는 탄광 안은 찜통이었다. 심 씨는 "무조건 하루 할당량을 채워야 하니까 늘 다음 날 새벽까지 일했다"고 회상했다.

미쓰이 그룹 소유의 미쓰이미이케탄광은 일본 석탄 생산량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의 큰 탄광으로 한국인과 중국인 징용자가 많았다. 요쓰야마갱에서 일했던 심 씨는 당시 함께 일한 노동자 300명 중 200여 명이 한국인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임금은 쥐꼬리 같았지만 작업이 위험한 곳엔 한국인들이 배치됐다. 회사는 '애국저금'이란 명목으로 강제 저금조차 하게 했다. 심 씨가 적어서 보관하고 있는 1944년 6개월치 급여 내역을 보면 배급금·이불값·애국저금·적립금·노동자연금 등 갖은 항목으로 회사는 돈을 꼬박꼬박 떼갔다. "나중에 찾으러 가니까 기록이 없다는 거야. 회사가 자료를 다 불태운거지." 퇴직금 역시 받지 못했다.

지난 2006년 그는 재일한국민단 구마모토지부를 통해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에 보상을 신청했다. 돌아온 답변은 '피해 사실은 인정되지만 지원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심 씨는 "피해가 인정되는데 왜 보상이 안 되는지 기가 막힌다"고 말했다.

심 씨처럼 강제동원에서 살아남아 광복 이후에도 계속 일본에 거주했던 사람들은 강제징용 피해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내용이 법안에 반영돼 일본에서 보상을 받은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 씨를 비롯해 당시 구마모토에서 보상을 신청했던 4명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에서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이희자 공동대표는 "박근혜 새 정부가 출범했으니 전후보상 소송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한·일청구권협정의 문제점을 되짚어 보고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후쿠오카=오금아 기자 ch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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